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시공간을 초월한 홈런경쟁이다.
넥센 박병호의 미친듯한 홈런행진. 30일 목동 LG전서 마침내 20홈런 고지에 올랐다. 박병호는 2위 그룹 강정호(넥센), 나성범(NC)에게 무려 7개 앞섰다. 적수가 없다. 아직 이르지만, 박병호가 이만수(1983년~1985년), 장종훈(1990년~1992년), 이승엽(2001년~2003년)에 이어 홈런왕 3연패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극강의 외국인타자들도 박병호를 견제하지 못하는 게 현실.
박병호는 올 시즌 7.85타수당 1홈런을 때렸다. 올 시즌 경기당 3.3타수를 소화한 박병호가 잔여 81경기에 꾸준히 나설 경우 34홈런을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54홈런 페이스. 상징적 의미가 있다. 박병호가 실제로 54홈런을 때릴 경우 국내야구에 2003년 이승엽(삼성) 이후 11년만에 50홈런 시대가 다시 열린다. 54홈런은 이승엽이 1999년에 기록한 홈런 개수이기도 하다.
▲ 23세-27세 이승엽 쫓는 28세 박병호
박병호는 올해 만 28세다. 1999년 이승엽의 나이는 만 23세. 두 사람의 공통점은 홈런타자로서 최전성기에 막 들어섰다는 점. 이승엽은 1997년과 1998년 32홈런과 38홈런을 치며 홈런에 눈을 떴다. 박병호 역시 2012년과 2013년 31홈런과 37홈런으로 2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박병호가 현재 페이스대로 54홈런을 때릴 경우 홈런왕에 오를 것이 확실시 된다.
이승엽은 만 27세였던 2003년에 홈런왕 3연패를 달성했다. 박병호 역시 올해 홈런왕에 오르면 홈런왕 3연패. 박병호가 이승엽보다 1년 늦게 홈런왕 3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첫 50홈런 돌파의 경우 만 28세의 박병호가 1999년 당시 만 23세였던 이승엽보다 5년 느린 페이스. 박병호가 상대적으로 이승엽보다 홈런에 눈을 늦게 떴다. 그래도 종합적으로는 박병호가 이승엽의 최전성기 때와 비슷한 나이에 홈런왕 3연패와 50홈런에 도전하고 있다.
박병호는 5월에만 14개의 홈런을 때렸다. 31일 목동 LG전서 홈런 1개를 추가하면 1999년 5월과 2003년 5월에 이승엽이 달성한 월간 최다 15홈런과 타이를 이룬다. 만약 박병호가 이날 홈런 2개를 추가하면 이승엽을 넘어 역대 월간 최다 홈런타자로 기록된다. 다만 박병호는 30일 목동 LG전서 47경기만에 20홈런을 기록했는데, 1999년 37경기, 2003년 43경기만에 20홈런을 날린 이승엽에 비하면 20홈런 생산 페이스는 살짝 늦었다. 그래도 2002년 송지만(넥센)과 함께 역대 3위.
▲ 38세 노장의 불꽃투혼
2014년 박병호가 1999년 이승엽과 2003년 이승엽을 쫓는다. 재미있는 건 2014년 이승엽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4년 이승엽은 2003년 이승엽이 아니다. 야구 팬들은 2003년 이승엽 못지 않게 2014년 이승엽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38세의 노장. 그는 지난해 타율 0.253 13홈런으로 1997년 이후 국내에서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사람들은 이승엽이 끝났다고 했다.
이승엽은 38세에 조용히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31일 현재 타율 0.297 9홈런 33타점. 2014년 이승엽은 2014년 박병호보다 파괴력이 떨어진다. 지금 국내 최고 타자는 당연히 박병호. 삼성 류중일 감독은 “승엽이가 부활했지만, 배트스피드가 예전만 못하다”라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올 시즌 이승엽은 기술적으로 강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38세 베테랑 타자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역 황혼기에 들어선 38세 이승엽이 힘이 넘치는 28세 박병호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승엽은 올 시즌 타격할 때 방망이를 눕히면서 임팩트 순간까지의 시간을 줄였다. 느려진 스윙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한 변화다. 분명 박병호는 이승엽처럼 최정상급 타자로 올라섰다. 하지만, 박병호가 이승엽만큼 인정을 받으려면 먼 훗날 최정상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이승엽에게 ‘국민타자’라는 칭호가 그냥 붙여진 건 아니다.
▲ 두 거포의 시공간 초월 홈런 스토리
이승엽이 국민타자로 불리는 건 유독 국민의 기억에 남는 홈런을 많이 때렸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이승엽이 왜 이승엽인줄 아나. 결정적인 홈런을 잘 친다. 지금도 여전하다”라고 했다. 대단히 의미가 크다. 이승엽은 지난 28일 잠실 LG전서 봉중근에게 결승 스리런포를 날렸다. 2-4로 뒤진 8회초 2사 1,2루. 이승엽 하면 떠오르는 약속의 8회에 터트린 거짓말 같은 역전포였다.
20대에도, 40대를 바라보는 황혼기에도 이승엽의 홈런에는 극적인 스토리가 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일본과의 최종전 역전 투런포,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 역전 투런포 모두 8회에 터졌다. 홈런은 아니었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 결승 2타점 2루타도 8회에 터졌다. 2002년 정규시즌 최종전 연장 13회에 극적으로 터진 단일 홈런왕 확정 축포.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1사 1,2루서 터진 동점 스리런포. 2003년 정규시즌 최종전서 터진 단일시즌 아시아 최다 56호 홈런. 그는 예나 지금이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강한 사나이다.
박병호는 올 시즌 각종 수치상으로는 1999년 이승엽과 2003년 이승엽을 쫓고 있다. 박병호가 이승엽의 아우라를 진정으로 쫓으려면 이승엽만큼 극적인 홈런 스토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박병호에겐 자질이 충분하다. 그는 지난 8일 목동 NC전서 비거리 140m 초대형 장외포를 쳤다. 타구가 목동구장 전광판을 때린 뒤 그라운드에 떨어진 게 아니라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뒤로 튕겨나갔다. 충분히 스토리 있고 극적인 홈런이었다.
박병호는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야구를 이끌어가야 할 홈런타자다. 팬들은 그가 좀 더 극적인 상황에서, 좀 더 극적인 스토리를 홈런으로 만들어내길 바란다. 팬들은 이승엽에게도 방망이를 놓는 그 순간까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런 극적인 스토리가 쌓이고 쌓여 한국야구에 추억이 만들어진다. 아주 천천히 이승엽에게서 박병호로. 지금 한국야구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승엽과 박병호(위), 이승엽(가운데), 박병호(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