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팬 서비스 차원에서 좋지 않겠어요?”
5월 7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쿠어스 필드. 텍사스 미치 모어랜드가 1-12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대학 시절 투수를 했던 모어랜드는 콜로라도 타선을 상대로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15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다저스타디움서도 LA 다저스 포수 드류 부테라가 3-13으로 뒤진 9회초 마운드에 올라 마이애미 타선을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23일과 25일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텍사스-디트로이트전서도 디트로이트가 1-11, 2-9로 크게 뒤지자 백업 내야수 대니 워스가 연이어 투수로 등판했다.
눈 여겨 볼 부분. 야수가 경기 후반 마운드에 올랐다는 점. 그리고 스코어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승부가 사실상 갈린 경기서 투수 대신 야수가 1이닝을 막았다. 메이저리그서는 이런 케이스가 가끔 나온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그리 낯선 장면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포지션 분업화 이후 이런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 투수 휴식+팬 서비스
극심한 타고투저 시대. 10점을 넘기는 팀이 거의 매일 나온다. 2~3팀이 10점 넘게 득점하는 날도 빈번하다. 핸드볼 스코어란 말이 나오는 실정. 투수가 타자들의 정교함과 파워를 이겨내지 못한다. 선발투수가 조기에 무너질 경우 이런 경기가 나올 확률이 높다. 선발투수가 무너질 경우 그 팀 벤치에선 기량 좋은 투수를 내기가 어렵다. 눈 앞의 1경기가 아닌, 전체 128경기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이길 확률이 낮은 게임에 필승조를 내는 건 사치다.
결국 그럴 경우 추격조가 투입된다. 기량이 다소 떨어지는 투수로 잔여 이닝을 버티면서 다음 경기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도 버텨내지 못할 때가 있다. 타자들이 선발투수를 무너뜨릴 정도로 타격감이 좋고 준비가 잘 된 상태. 선발투수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추격조 불펜 투수들 공략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타고투저가 속출하면서 롱릴리프와 추격조에 불펜에서 대기하는 경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이런 상황에 대비해 간혹 투수 출신 야수를 마운드에 올린다. 추격조 역시 엄연히 보호받을 이유가 있다. 무제한 연장전을 치르는 환경의 특수성 속에서 던질 투수가 없는 상황도 간혹 생긴다. 때문에 메이저리그 감독들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 마운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야수를 미리 선별해놓는다. 팬들도 실제로 야수가 마운드에 오를 경우 흥미롭게 바라본다.
MBC 스포츠플러스 허구연 해설위원은 “야수의 투수 등판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승패가 갈린 경기라면 가끔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괜찮지 않나?”라고 했다. 야구의 근간을 훼손할 정도만 아니라면 충분히 또 다른 볼거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 허 위원은 “감독들이 승리도 중요하지만, 팬 서비스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
국내야구는 1,2군 이동이 자유롭다. 투수들 역시 수시로 엔트리 조정이 가능하다. 때문에 추격조의 에너지를 걱정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 국내에선 더 이상 던질 투수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야수가 마운드에 오를 일은 없다. 실제로 감독들은 핸드볼 스코어 속출 속 크게 뒤진 경기서 추격조의 비중을 더욱 높였다. 야수를 불펜에 대기시키는 일조차 없었다.
또 다른 야구관계자는 “현장에선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라고 했다. 야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자칫하다 상대가 ‘장난 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허 위원 역시 이에 공감하며 “크게 앞선 팀이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면 지고 있는 팀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 있다. 크게 뒤진 팀이 야수의 투수 투입을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했다. 위에 열거한 메이저리그 사례 역시 크게 뒤진 팀이 투수를 아끼려고 경기 막판 야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사실 야수의 보호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야수와 투수가 사용하는 근육은 전혀 다르다. 아무리 투수 경험이 있는 야수라도 하더라도 프로에서 야수가 투수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지 않는 현실상 갑작스러운 마운드 등판은 부상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이 관계자는 “결정적인 이유다. 야수의 투수 등판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감독 입장에선 만약에 대비해 야수의 투수 등판에 대비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실제로 대부분 팀은 포수가 경기 중 바닥날 경우에 대비해 포수 경험이 있는 야수에게 틈틈이 포수 훈련을 시킨다. 이와 비슷한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야수에게 만약을 대비해 마운드 등판을 준비시킬 시간에, 좋은 투수 1명을 확실하게 육성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정황상 국내에서 야수의 투수 등판은 쉽게 구경하지 못할 듯하다. 그럼에도 야수의 투수 등판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팬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잠실구장(위, 아래), 목동구장(가운데).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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