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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천생 배우가 있다. 하루 종일 작품 생각만 하고 일상에서도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을 연구한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그에겐 깨달음이 되고 디테일로 연결된다. 이같은 집중력이 모여 한 인물이 되고, 나아가 완벽한 작품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천생 배우가 선보이는 공연은 관객들을 감동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뮤지컬배우 이건명(42)이 그렇다. 천생 배우다. 19년간 무대에 서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밑거름이 된 경험은 무대 위의 이건명을 더욱 단단해지게 했다. 부침도 있었고 사랑도 받았다. 항상 치열했고 그래서 더 탄탄했다.
그런 그가 현재 탄탄하게 인물을 다지고 있는 작품은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는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이자 단행본으로 2억부 이상이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장엄한 스케일및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격동기와 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그린다.
이건명은 극중 세상을 비판적이고 염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술을 친구삼아 지내다 처음으로 사랑을 깨닫게 해준 여인을 만나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변호사 시드니 칼튼 역을 맡았다. 이건명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두도시 이야기'와 함께 하는 천생 배우의 인생을 들려줬다.
▲ "저건 나 잘 할 것 같은데"
현재 이건명은 시드니 칼튼의 정당성을 다지고 있다. 디테일을 중요시 하는 그이기에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무의미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삶에 있어서도 무의미한 행동은 단 하나도 없지 않나"라며 "그 삶을 두시간 반 안에 축소시켜 놓은 무대 위에선 단 하나의 움직임에 있어서도 무의미한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 하나에 의미를 두고 그 의미가 정당할 수 있게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을 마친 그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극중 빅터 역 자체의 에너지 소모가 대단해 보였고, 공연과 함께 연습까지 병행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NO'다. 바이러스, 천재지변, 경조사가 아닌 이상 배우에게 '피로'는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배우에게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건명이다. 이에 소리에 지장을 주는 담배도 끊었고, 어느 순간부터 다음날 공연에 지장을 주는 술 역시 공연 전날에는 삼간다. 해 뜰때까지 마시던 술도 이제 기분 좋을 때까지 마시고 절제하게 됐다. 그는 "어른이 됐다는 거다"며 웃었다.
이건명은 지난해 '두도시 이야기'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스케줄상 함께 하지 못했다. 때문에 다시 만난 '두도시 이야기'는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는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던 것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잃어버린 지갑을 찾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배우들한텐 자만심일 수도 있고 촉일 수도 있는데 공연을 보면 '저건 나 잘 할 것 같은데' 하는 배역이 있다. '두도시 이야기' 초연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 표현 나 되게 잘 할 것 같은데' 이런 느낌이 왔었는데 제안이 왔을 때 놓쳐버렸다. 그래서인지 다시 할 수 있다는 기쁨이 크다. 연기를 19년 정도 해오니 조바심보다는 요리할 수 있는 스킬들이 생긴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만나니 '두도시 이야기' 연습 과정이 좋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전작 '프랑켄슈타인'이 모두 쏟아내고 때리며 달리는 것이었다면 '두도시 이야기'는 천천히 끝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라 조금은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그는 "'내가 했던 일 중에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평온한 안식처로 가려고 합니다'라는 대사를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 참 좋다"고 덧붙였다.
▲ "이왕이면 좀 더 치열하게"
이건명은 현재 '두도시 이야기' 속 디테일을 찾는 과정을 치열하게 즐기고 있다. 그는 "작은 동작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런 것들은 굉장한 재미다. 연출, 다른 배우들과 함께 그런 과정을 함께 하면서 하나의 매듭이 풀어지는 재미가 크다"며 "하지만 즐길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지루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근데 쉬운 일을 하면 쾌감은 덜하기 마련이다. 힘든 싸움을 하고 이겼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19년 동안 느껴 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 싸움이 쉬우면 그 뒤에 찾아올 쾌감이 적다는 것을 알아버릴 나이가 됐다. 이왕이면 좀 더 치열하게 준비해서 그 쾌감을 느끼고 싶다. 어려운 역할이 더 좋은 것도 이 때문이다. 원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인생이 그런 것 아니겠나. 모든 순간에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계속 얻는다.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계속 나오니까."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이건명의 시드니 칼튼은 어떨까. 그는 "여자들의 로망이기도 하지만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나만의 왕자님을 꿈꾸는데 남자는 그 왕자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을 꾼다"며 "내 가족 정도는 내가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한다. 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을 내 목숨을 다해 지킬 수 있다면 힘들겠지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을까라는 로망을 꿈꾸는게 남자들인데 시드니 칼튼은 딱 그런 배역이었다"고 말했다.
"사랑을 향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그런 남자. 그게 시작이 됐다. 그러다 보니 앞부분에 다소 거친 남자로 나오는 것까지도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남자가 왜 그렇게 살게 됐을까를 생각하며 이 사람의 순수성을 놓치지 말자 했다. 순수성을 꼭 안고 표현할 것이다. 특히나 시민혁명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분명 박탈감이 있었을 거다. 머릿속 생각은 너무 많은데 힘이 하나도 없었을 때 세상을 탓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변하게 되는 거고 그런 사람일거라고 나는 유추하며 만들어 가는 거다."
한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남자. 지난해 결혼해 신혼을 즐기고 있는 이건명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을까. 그는 "결혼이라는 게 모두가 얘기하듯이 커다란 책임감이 얹혀지는 행복을 선물한다. 그런데 그 행복 옆엔 그만한 책임감까지 얹혀지는 것"이라며 "책임감이라는건 내가 지금 구성된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내 무언가를 바쳐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이는 시드니 칼튼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의미는 같다"고 털어놨다.
▲ "이 모든 것들이 내게 힐링이 된다"
한 작품, 한 인물을 위해 이렇듯 치열하게 분석하는 이건명이 치열해지는 것은 뮤지컬 무대 위 뿐만이 아니다. 그는 문화 예술 지원을 통해 작은 사회 공헌을 실천 하고자 하는 뮤지컬 토크 콘서트 '후 엠 아이(Who am I)' MC를 맡고 있다. "좋은일을 하다 보니까 내가 더 좋다"고 밝힌 이건명은 이제 선배의 위치에서,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게 된 만큼 그만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건명은 "나는 쉬는걸 되게 싫어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 이상하다. 사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노래하고 MC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게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는 사람들도 또한 되게 많다. 근데 '후 엠 아이'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는 관객들은 의미있게 돈을 썼다고 생각하고 또 그 시간 자체도 행복해 한다. 모인 돈은 소년원 친구들에게 가는데 그 친구들이 교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행복하지만 콘서트에서 관객과 함께 하는 것 자체도 행복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콘서트를 통해 행복했다고 한다. 좋은 일은 나비효과와 같은 거다."
이처럼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은 이건명이 많은 것을 직접 겪고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도 조바심을 가졌다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못 했을 거다. 즐길만큼 즐기고 놀만큼 놀아봐서 그보다 다른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인생에 그런 지점들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슬럼프도 있고 깨달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지점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그래프는 올라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며 "나 역시 슬럼프가 있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쓰임새가 없다는 자괴감, 자존감이 작아지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기를 겪고나니 이제 인간은 누구나 그런 굴곡 있는 그래프의 인생을 산다는 것을 알아버렸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이건명은 모든 부침을 겪고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현재 만나게 된 '두도시 이야기'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털어놨다. 그는 "이건명에게 '두도시 이야기'는 힐링일 수 있다. 뭇 남성들의 로망일 수도 있고 나만의 약속의 어떤 검증일 수도 있겠다. 또 하나는 좀 바쁘게 뛰어왔던 나를 좀 더 차분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나를 잠시 한템포 눌러주는 건데 인물 뿐만 아니라 이건명 자체도 눌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모든 것들이 내게 힐링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편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오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이건명. 사진 = 비오엠코리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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