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배우 이민기가 상남자로 돌아왔다. 그동안 연예계 대표 연하남으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누나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던 이민기는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나도 한번쯤은 만나봤을법한 '흔남'(흔한 남자)의 정석을 보여줬다. 이후 영화 '몬스터'에서는 무결점 살인마 태수를 연기했다. 이 세상에 없을법한, 있어서는 안 될 태수를 통해 이민기는 자신의 가죽을 벗기고 나왔다.
과거에는 여자가 보는 남자, 또는 이 세상에 없을법한 허구의 인물을 보여줬던 이민기는,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남자 세계의 남자를 연기했다. 수컷의 본질적인 욕망을 극대화시킨 캐릭터 이환은 이민기를 통해 다시 만들어졌다.
'황제를 위하여'는 부산을 배경으로 이긴 놈만 살아남는 도박판과 같은 세상에서 서로 다른 황제를 꿈꾸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민기는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승부조작에 연루돼 추락한 이환 역을 맡았다. 이환은 남성의 욕망을 극대화 시킨 캐릭터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법한 인물이었다. 다만 '욕망'이라는 틀 안에서만 보여줬을 뿐이다.
황제가 되고 싶은 남자들의 욕망, 30대에 접어든 배우 이민기와 인간 이민기,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이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하 이민기와 나눈 일문일답.
- 전작 '몬스터'에 이어 또 강한 역할이다.
전작에 비해서 힘들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몬스터'가 힘들었다. 태수는 비인간적인 감정들과 표현해야할 것들이 있었다. 이환은 한 가지 감정(욕망)을 극대화 시켜 단면적으로 보여주려 하니 좀 강해보이긴 했지만, 사람 안에 있는 감정들이었다.
- 남자들의 색이 강한 영화는 사실 처음인 것 같은데.
남자들의 이야기를 갈망했다기 보다는 반가웠다. '오싹한 연애'를 찍은 후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이 '연애의 온도'였다. 개인적으로 남자들을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아는 동생과 형, 친구들이 모두 남자다. 여자는 오히려 작품을 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박)성웅 형을 사로잡지 않았나 싶다. 하하.
- 실제로 남자들의 세계에는 환이 같은 욕망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나.
아무래도 있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리더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모임을 할 때 사람들을 모은다거나,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한다거나 착착 진행하는 그럼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겠지만, 리더는 그렇지 않다. 또 뱉은 말은 책임을 져야한다. 수컷의 본질적인 욕망 같다.
- 환이도 그냥 보통의 남자라는 의미인가.
부자관계를 보면 아버지를 엄청 높게 본다. 동경이 대상이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어른 중 가장 큰 어른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점점 작아 보인다. 아버지를 넘어 서고 싶다는 욕망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환이는 어쩌면 가장 연약한 사람일수도 있다. 자기 자신으로는 채울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끝에 허망함을 만났을 때도, 결말을 알고 있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련해 보일 수도 있다.
- '몬스터'에 이어 이번에도 액션이 있다.
힘든 것은 '몬스터'가 더 힘들었다.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인원이 많아서 물리적인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힘들었다. 또 공간적 제약이 있었다. 그것에서 오는 피로감이다. 또 날씨가 너무 추웠다. 촬영에 들어가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가, ok 사인이 떨어지면 오들오들 떨고 그랬다.
- 액션만큼이나 베드신이 꾀나 인상적이었다.
촬영에 들어갈 때부터 연수와의 관계가 사랑일까 욕망일까 생각을 했다. 그 중간지점을 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베드신만 보여서도 안됐고, 그 안에 감정이 보여야 했다. 만약 '황제를 위하여'에서 베드신이 예쁘게 그려졌다면, 그 베드신은 필요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가는 영화였다. 여성 관객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 그렇다면 연수와 환이는 진짜 사랑이었나.
시나리오에서는 누가 봐도 사랑이었다. 남자 주인공에게 칼이 돼 돌아오는 그런. 식상하고 공식적인 느낌이 있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수정이 됐다. 관객들이 보기에 사랑이라고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으면 했다. 분명 사랑이지만, 환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른 뒤 그것 또한 사랑이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 최근 '마녀사냥' 녹화를 했다고 들었다. 직접 가보니 어떤 분위기던가.
수위가 높긴 하다. 높긴 한데 방송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일상생활에서는 수위가 없지 않는가. 그냥 야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 어느 정도 현실에 닿아 있어 적당한 깊이감이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가.
배우로서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부분이다. 30대에는 내 인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에는 작품을 통해 작품으로 날 썼다. 소진된다는 느낌이 뭔지 알겠더라. 내 안에 쌓인 게 있어야 보여줄게 있다. 내가 단단해져야 연기를 할 때도 단단하게 보이고,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럼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는 있나.
일단 연기하지 않는 내 삶 자체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잘 지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취미가 될 수도 있고, 놓지 않는 것도 있다. 익숙함이 생기면 도전하지 않고 포기를 하게 된다. 기본적인 틀 안에서 적절하게 타협을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한다.
-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연기를 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줄만한 행보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칭찬할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일을 막 하진 않았다. 여건이 안 맞으면 작품에 들어가지 않았다. 쉴 거면 그냥 하자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들어가진 않았다. 영화 '해운대' 이후에는 1년 넘게 쉬었다. 일이 있었다. 다음 작품 택하고 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아쉬운 게 있다면 버려져버린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뭔가를 하고 살았으니까 나에게 쌓인 것은 있다.
[배우 이민기.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