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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미술은 고귀하다고? 100년 전부터 배척해 온 방식"
최근 몇 년간 국내 TV 프로그램에는 리얼 예능 속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큰 관심을 받았다. 케이블채널 엠넷 '슈퍼스타K'를 시초로 노래, 춤, 모델 등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줄을 이었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어 지난 3월 첫 방송된 스토리온 채널 '아트스타코리아'(Art Star Korea, 이하 '아스코')는 예술가 15명을 심사대에 올려놓는 국내 최초 현대예술 서바이벌이었다.
예술, 미술, 그리고 예술가를 심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속에 시작한 '아트스타코리아'는 이제 TOP3(신제현, 구혜영, 유병서)로 추려졌고 이제 이들의 마지막 대결만을 앞두고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조화, 그리고 예술을 누구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의견이 분분하며 논쟁 속에 포문을 열었던 '아트스타코리아'는 의외로 시청자들의 높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예술가 15명이, 그리고 이제 결승만을 앞두고 있는 TOP3가 '아트스타코리아'에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주제로 작품이 전시돼있는 곳에서 만난 TOP3는 약 5개월 동안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겪었던 우여곡절과 앞으로의 각오를 전했다.
설치, 미디어작가 신제현(32)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라'는 4회 미션에서 초콜릿으로 시를 쓰고 이를 핥아먹는 영상을 거꾸로 돌려 마치 입에서 글이 나오는 처럼 보이도록 한 '시'(詩)라는 작품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도전자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인 그의 캐릭터는 '예술계의 사이코'였다. 신제현은 '아스코'에 출연하기까지 극명한 주위 반응에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신제현은 "내가 나간다고 하니, 대부분 반응은 '인생접고 싶냐'는 부정적 반응이었다. 한국 현대미술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다. 정부에서 미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지원도 부족하다. 그런데 정부는, '일반 대중들이 얼마나 혜택을 받느냐', '하루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왔느냐'에 대한 카운트다 중요하더라"며 "그래서 어디로든 CJ에서는 내보낼 몇 십 억의 자본을 미술로 돌려서 제작되는 '아스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회의적인 주변 반응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도전했다고 말했다.
예술 서바이벌 '아스코'를 그동안 거쳐오면서, 문제적 아티스트인 신제현은 '아스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개인적으로 사실 '아스코'가 대중과의 큰 접점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한 번의 방송을 통해 현대미술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오히려 거짓말인 것 같다"고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하지만 미술 작품엔 설명을 들어야 아는 작품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다. 구혜영의 '커튼콜' 작업이나 유병서의 '탁구공' 작업들은 미술을 모르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아이디어가 포화상태가 왔을 때 미술이 거기서부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를 다 이해시키지 않더라도 이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예술가 서바이벌 '아스코'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이지만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는 방영된 적이 있는 포맷이다. 미국에서는 '아트스타', '워크 오브 아트'가 방송됐고 영국에서는 광고재벌 찰스 사치의 이름을 내건 BBC '스쿨 오브 사치'가 방송돼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서바이벌 형식으로 예술을 판단하는 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제현은 앞서 밝힌대로 도전에 대한 욕심과 남들이 걸어보지도 않고 걱정하는 시선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영국에서 생방송으로 서바이벌을 했는데 그게 영국 미술계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미술은 고귀하지만, '미술=고귀함'은 이미 100년 전 부터 미술계에서 반대했던 방식이다.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어떤 경계를 갖고 있다면, 흥미를 끄는 방법으로 예술과 접점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스코' TOP3 신제현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유병서, 구혜영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특히 신제현은 영상, 설치, 서적, 홈페이지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장소 특정적인 작업들을 진행해온 작가로 이번에는 근미래에 고리 핵발전소 폭발 사고라는 대형 재난을 맞이한 미술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TRAILING, 50일간의 드로잉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닭 7마리를 닭장 캔버스 안에서 키우고 있으며 그 안에서 캔버스에 핵발전소 반경 30km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마치 분향소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그는 전시가 종료되는 오는 8월 3일까지 캔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 '의식'을 행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썼던 이름은 지워지는 펜의 화학적인 성질을 이용해 '지워지는 것이 오히려 이들을 다시 환생시키는 것'이라는 역발상을 했다. 신제현은 "분향소에 적힌 수 백 명의 이름 기록들은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오히려 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이 지워지는 과정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를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아스코'를 통해 많은 팬이 생겼다는 신제현은 최근 전시회에 온 관람객들의 사인 요청이 많아졌다고 밝히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앞으로 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방송의 영향력으로 유지된다기보다는 개개인이 달려야한다고 생각한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에게 '아트스타'란 무엇일까. 신제현은 "내게 아트스타란,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의 개념에 대해 힘든 상황에서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확고한 잣대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내가 어떻게 살지는 모르지만, 내가 하고 싶어하는 예술을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지금처럼, 그리고 앞으로 그 예술을 하는 것이 아트스타라고 생각한다."
신제현은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3층 전시실에 올라가 자신의 작품을 그려나갔다. "캔버스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이름을 쓰려면 팔이 떨어질 정도로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그 작업을 행복한 표정으로 하고 있는 신제현은 진정 '아트스타'로서 충분했다. 앞으로 '아트스타코리아' 울타리에서 벗어나 하나의 대한민국 아티스트로서 걸어나갈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아트스타코리아' 도전자 신제현. 사진 = CJ E&M 제공]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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