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영화판이 시끄럽다. 변칙개봉에 여러 영화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변칙 개봉 논란을 재점화 시킨 그 영화 역시 들들 볶이고 있다.
지난 4일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2')이 개봉일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당초 16일로 예정됐던 개봉일은 10일로 당긴다는 것.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측은 개봉일 변경 고지와 함께 "한국 관객들에게 좀 더 빨리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미국 개봉일에 맞춰 7월 10일 개봉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논란이 불거졌다. 대략적 라인업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거대 몸집의 '혹성탈출2'가 개봉을 코앞에 두고 개봉일을 변경함에 따라 작은 영화들이 생존을 위협받게 됐기 때문. 이와 관련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관계자는 마이데일리에 "'혹성탈출'이 개봉일을 바꿨을 때 이렇게 큰 반응이 올지는 몰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혹성탈출2'의 개봉일 변경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같은 시기 개봉하는 영화를 수입한 중소영화사가 들고 일어섰으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까지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며 '혹성탈출2' 측을 지탄했다.
같은 날 맞붙게 된 '사보타지'의 수입사 리틀빅픽쳐스의 입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제협이 "국내에서 배급사 및 제작사들은 관례적으로 수개월 또는 1년 전부터 배급하는 영화에 대한 라인업을 공유한다"며 "누군가가 개봉계획을 급작스럽게 변칙적인 방법으로 변경할 경우, 배급계획에 대한 심각한 혼란과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것은 내가 먼저 살고 남을 죽이려 하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난한 것을 감안할 때 국내 영화인들이 느끼는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엔 약간 혹은 아주 많은 사적 감정이 들어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 논쟁에 대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애매모호하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보이는 행위가 공익사업이 아닌 만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측은 심의가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난 상황에서 미국보다 더 늦게 개봉, 불법 파일이 유출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개봉일을 앞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쪽에서는 '혹성탈출2'가 개봉을 앞당겨 버리면 큰 영화를 피해 개봉일을 잡은 중소영화사가 직접적 타격을 입게 되는데, 이건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물론 '혹성탈출2'가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가 생각만큼 흥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노리고 개봉일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뒷주에 개봉하는 '군도:민란의 시대'를 피해보겠다는 꼼수를 부린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여기에 작은 영화를 대상으로 '혹성탈출2' 측이 힘으로 밀어 붙이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실제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사보타지'가 10일에서 24일로, '유오성의 7인의 암살단'이 10일에서 16일로 개봉일을 변경했다. '오드 토머스'는 30일로 개봉이 예정돼 있었지만 8월 23일로 개봉일을 대폭 늦췄다. 이 모두가 '혹성탈출2'의 개봉일 변경이 이뤄진 후 들려온 소식들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어느 쪽 말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 양쪽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좀 더 본질적 문제는 왜 이제야 '혹성탈출2'로 인해 이런 변칙개봉 문제들이 불거졌나 하는 것이다. 분명 그동안 '전야 개봉'이라 쓰고 '실질적 개봉일'로 여겨야 하는 일들이 빈번했고, 개봉일을 앞으로 당기고 뒤로 미루는 일들이 심심치 않았는데 말이다. 개봉 전 시사회 한 번 열었을 뿐인데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안착하는 당혹스러운 일들이 있었는데 왜 그동안 이런 일들이 공론화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혹성탈출2' 사건으로 인해 다시 도마 위에 오르내렸던 '광해:왕이 된 남자' 역시 변칙개봉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그 당시 별다른 해결방안 없이 넘어갔던 일들은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시한폭탄이 돼 항상 우리 옆에 있었다. 그럼에도 폭탄을 해체할 생각을 못했고, 결국 이 시점에서 곪아 터지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 8개 제작사와 씨네 21, 더컨텐츠콤 등 10개 회사가 한국영화 산업의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고 공정한 영화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배급회사 리틀빅픽쳐스를 설립했다. 건강한 영화 시장 조성에 힘쓸 계획이라던 이 배급사 또한 자신들이 투자 배급하는 첫 영화 '소녀괴담'의 전야개봉을 감행했다. 건강하고 공정한 영화 시장을 조성한다는 배급사만이라도 변칙 개봉을 지향했어야 했지만 이들 역시 전야 개봉이라는 꼼수를 내세웠다.
여기에 리틀빅픽쳐스의 주주 회사 중 하나인 주피터필름이 제작한 영화가 '소녀괴담'이고, 과거 논란이 일었을 때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던 제협이 '소녀괴담'이 직접적 타격을 입는 게 뻔한 상황에서 논란 당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혹성탈출2'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것 역시 의외다. 아무리 지탄해야 할 상황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제 발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가 되자 LTEA급 반응 속도를 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찝찝함을 지워버릴 수 없다.
개봉일을 앞당긴 '혹성탈출2'와 이런 '혹성탈출2' 측을 비난하는 쪽 누구에게도 누가 더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둘 다 상대보다 더 잘한 게 없다는 말도 된다. 상도의에 어긋나고, 중소영화사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결단을 감행하는 일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또 누가 누구의 의견을 거부하는지, 서로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 자신들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포스터. 사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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