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세대 정재근 감독의 도 넘은 추태. 모처럼 좋은 취지로 진행된 대학농구 국제대회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일단 상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1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연세대-고려대 결승전. 명승부였다. 연장 종료 2분26초전. 고려대가 근소하게 앞섰다. 그러자 연세대 정재근 감독이 갑자기 코트에 난입해 한 심판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손가락질을 했다.
정 감독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황인태 심판이 정 감독을 말렸다. 그러자 정 감독이 이성을 상실했다. 황 심판에게 주먹으로 때리려는 시늉을 한 뒤 머리로 황 심판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그리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황 심판은 즉각 정 감독을 퇴장시켰다. 정 감독도 “니가 나가”라고 실언을 했다. 정 감독은 한참을 버티다 경기장 밖으로 떠났다. 이후 고려대가 페널티에 이은 자유투를 연이어 성공하면서 승부가 갈렸다. 명승부가 정 감독의 추태이자 만행으로 허무하게 변질됐다.
▲ 판정은 문제 없었다
정 감독이 코트에 난입하기 직전, 연세대 박인태가 허훈의 패스를 받아 골밑에서 솟구쳐 올랐다. 박인태가 공을 놓쳤다. 공은 고려대가 빼앗았다. 정황상 정 감독은 이 대목이 수비자 파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심판의 판단이 정확했다. 파울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대부분 농구관계자들은 “심판 판정에 큰 문제는 없었다”라고 했다.
정 감독이 이날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한 적은 없었다. 경기 흐름은 매우 매끄러웠다. 적절히 치고 받는 난타전. 대학농구가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퀄리티. 그럼에도 정 감독은 갑자기 흥분했고, 만행을 벌였다. 정 감독은 “죄송하다”는 말만 남긴 채 경기 후 공식인터뷰도 응하지 않았다. 대한농구협회는 11일 긴급 회의를 열어 상벌위원회 개최 일정을 논의한다. 결승전 직후 만났던 대한농구협회 관계자는 “징계가 불가피하다”라고 했다.
▲ 감독-심판 심각한 불신
국내농구서 감독과 심판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 정 감독의 만행은 그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대목. 일단 일부 문제가 있는 심판은 확실히 있다. KBL과 WKBL의 경우 기본적 자질이 떨어지는 심판이 종종 있다는 게 대부분 농구관계자의 지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질은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판정에 대한 기준과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감독 입장에선 이런 심판들의 판정이 자신의 팀에 불리하게 돌아오면서 불신을 갖게 된다.
문제는 또 있다. 감독들은 단순히 항의 차원이 아니라 판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조차도 거부하는 심판들이 있다는 게 감독들의 하소연이다. 한편으로 노련한 감독들은 항의로 고도의 심리전을 편다. 경기 초반 일부 파울 콜이 불려도, 불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서 강하게 항의해 경기 막판 승부처서 유리한 판정을 받으려는 속셈. 경기 초반부터 조금이라도 불리한 판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 경우 강력한 제스처로 심판들과 기 싸움에 들어간다. 이유는 역시 마찬가지. 이는 감독들의 잘못된 자세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감독들의 이런 전략에 넘어간 심판들 역시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아마농구의 경우 코치와 심판의 불신이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12년 아마농구에 불거진 심판 매수 비리로 대한농구협회 심판부 고위직이 대거 물갈이됐다. 협회 관계자와 심판, 지도자와 심판의 불건전한 유착관계도 있었다. 심판이 외압을 받거나 금품을 수수한 게 드러나면서 심판 자체의 중립성과 권위가 크게 훼손됐다. 이 논리 속에서 지도자와 심판들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불신이 만연하다.
▲ 심판만 문제? 감독도 예의 갖춰야 한다
KBL, WKBL, 대한농구협회, 각 산하 협회 및 연맹 심판들은 확실히 개혁돼야 한다. 이 문제는 한국농구 발전을 가로막는 악재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들 마인드도 바뀌어야 한다. 일부 경력이 많은 지도자들은 심판도 제자인 경우가 있다. 문제는 그런 지도자들이 심판을 자신보다 낮은 위치라고 생각해 반말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감독이 심판들에게 기본적으로 반말을 한다. 심지어 심판과 동년배이거나 오히려 나이가 적은 경우도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를 내세워 심판에게 의도적으로 큰 소리를 치고 반말을 쓰기도 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큰 소리를 치고 폭력을 가한 정 감독 케이스와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심판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전혀 없다. NBA 혹은 유럽리그를 봐도 감독들이 이 정도로 심판에게 막 대하진 않는다.
감독과 심판은 농구로 묶였지만, 사실 다른 직업군이다. 당연히 서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농구 선후배라고 해도 공과 사는 구분돼야 한다. 심판은 공정한 판정을 내리고, 감독은 심판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감독 입장에서 설령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심판에게 폭행이나 반말, 욕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며,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건 스스로 심판에게 존중 받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항의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 물론 심판 역시 감독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오심으로 문제된 심판은 많았지만, 감독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아 문제가 된 심판은 거의 없었다.
정 감독의 추태는 한국농구 감독들과 심판들의 깊은 불신이 만천하에 드러난 단면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일부 감독들이 얼마나 심판들을 막 대하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연히 농구 인기를 갉아먹는 요소다.
[정재근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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