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한국식 합의판정. 과연 어떨까.
22일부터 시작하는 후반기 레이스. 심판합의판정 제도가 도입되는 게 최대변수다. KBO는 지난 18일 심판합의판정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22일부터 KBO가 주관하는 모든 경기에 적용하기로 했다. 중계방송이 이뤄지지 않는 게임에 대해선 심판의 첫 판정을 최종 판정으로 못박았다. 이럴 경우 누구도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합의판정 항목은 메이저리그(13개)에 비해 적은 5개다. 홈런/파울에 대한 판정, 외야타구의 페어/파울, 포스/태그플레이에서의 아웃/세이프, 야수(파울팁 포함)의 포구, 몸에 맞는 공 여부. 메이저리그는 이밖에 인정 2루타, 팬의 수비방해, 희생플라이 때 3루주자 홈 태그업 시작 시점, 안타/실책에 대한 기록원 판단 등이 추가된다. 그러나 중계방송 카메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현실상 카메라 판독이 쉽지 않은 부분은 제외했다. 이 5개 항목만으로도 팬, 현장, 심판의 불신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항목이 메이저리그서도 비디오 판독으로 가장 많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 KBO, 심판 자존심+책임감 부여
KBO가 심판 자존심을 지켜줬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심판들의 자존심. 핵심은 심판들이 심적으로 위축되면서 논란이 되는 판정이 더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때문에 KBO로선 비디오판독 제도를 신설하면서 심판들의 기를 살려줄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했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중계방송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판정논란에 대해선 전적으로 심판 재량을 인정해줬다.
비디오판독이란 말도 없다. 공식 명칭이 ‘심판합의판정’이다. 이 역시 심판들의 자존심과 함께 책임감을 부여한 흔적이다. 벤치에서 비디오 판독을 제기할 경우 심판들은 중계방송 느린 화면을 확인한다. 최종 판정은 심판 합의로 내려진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뉴욕 메이저리그 사무국 본부서 별도로 대기한 심판들이 자체 카메라가 제작한 느린 화면을 판독해 그 결과를 현장에 통보하지만, 국내의 경우 스포츠 케이블 방송사 화면을 심판이 판독한다. 현장 심판들의 책임감이 더 높아졌다.
▲ 감독과 방송사의 부담
합의판정 횟수는 최대 2회다. 감독만 요청할 수 있다. 감독이 경기 중 처음으로 합의판정을 요청하면, 심판의 합의판정 결과 감독의 뜻대로 판정이 번복될 경우 그 팀은 추가로 1회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심판의 최초판정이 옳았다고 결론이 날 경우 추가 1회 기회는 없다. 단, 기존에 실시했던 홈런에 대한 비디오 판독은 카운트 대상에서 제외된다.
감독의 부담이 커졌다. 기본적으로 경기 중 감독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투수교체 타이밍, 대타, 대수비, 대주자 기용 여부, 작전 실시 여부 등에 대해 치열하게 두뇌회전을 한다. 여기에 합의판정 요구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도 골머리를 앓게 됐다. 경기 초반 무턱대고 합의판정을 요청했다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기 후반 승부처서 합의판정을 요청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 막판까지 기다리는 것도 답은 아니다. 합의판정 요청을 지나치게 아꼈다가 경기 흐름을 넘겨줄 수도 있다. 상대가 합의판정으로 이득을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메이저리그서는 챌린지 성공율을 따로 체크하는데, 감독의 경기운영 평가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국내야구는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경기 시간이 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닝 도중에는 30초 이내, 경기가 끝나는 아웃카운트와 이닝이 끝나는 아웃카운트 상황에서는 10초 이내에 합의판정 요청이 나오지 않을 경우 논란이 일어나더라도 그대로 넘어가기로 했다. 메이저리그서는 감독이 항의를 하는 사이에 벤치에서 미리 느린 그림을 보고 감독에게 사인을 낸다. 국내에선 그런 방식으로 10초 혹은 30초 이상 시간을 끌 수 없게 됐다. 때문에 감독의 빠른 판단은 물론이고, 1,3루 베이스 코치, 선수들과 감독의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도 중요하다.
이런 과정이 원활했다고 해도 상황 발생 이후 31초 혹은 11초부터는 합의판정 자체가 묵살된다. 시간 카운트를 놓고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 일부 감독도 시간이 촉박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낸 부분. 하지만, 비디오 판독을 놓고 시간이 늘어지면 경기 흐름이 루즈해질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화면을 잡는 방송사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홈런 여부에 대해선 합의판정 요청 카운트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방송사로선 더 정확한 그림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 야구계 신뢰회복 시초
중계방송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엔 판정 논란이 되지 않았다면서 과거를 운운하기엔 세월이 많이 흘렀다. 팬들은 정확한 판정을 요구한다. 심판들도 방송 카메라의 힘을 빌리면 오히려 편해진다. 오심 논란도 벗을 수 있다. 대신 그만큼 정확한 판정, 원활한 경기운영에 대한 평가기준이 생길 것이다. 벤치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할 이유가 줄어든다.
한국야구는 나아갈 길이 멀고 험하다.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작이 판정 논란을 줄이고, 야구계 내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합의판정제도 도입으로 팬, 심판, 현장의 불신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프로야구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유의미한 결정이다.
한편, KT의 1군진입으로 매일 5경기가 치러지는 내년부터는 합의판정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매일 5경기가 지금 같은 최첨단 중계기술로 생방송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현행 합의판정 제도의 정당성이 유지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야구계의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프로야구 심판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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