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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큰 장애물은 편견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관적인 창작물을 이해해 달라는 것은 어리광이나 다름 없다. 이들이 좀 더 성숙해지고, 진짜 창작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편견보단 인간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김지현(32)과 그가 출연하는 연극 '프라이드'가 갖는 의미는 크다. 동성애 소재만으로 편견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이들은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줄 알기에 관객들로 하여금 성숙한 창작물을 받아들이고 큰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이다.
연극 '프라이드(The Pride)'는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性)소수자들이 사회적 분위기와 억압, 갈등 속에서 사랑과 용기, 포용과 수용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프라이드'에서 실비아 역을 맡은 김지현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두 시대가 함께 있으니 더 집중하게 된다. 또 흔히 알고 접했던 내용도 아니고 초연이라 여러 부분들을 맞춰가고 있다. 아마 공연 시작 전까진 계속 치열하게 하지 않을까"라고 입을 열었다.
▲ "얼마나 의미 있게 행복하게 살고 있나"
김지현은 정확한 이해보다는 재미있을 거란 생각에 작품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지레 겁먹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1958년, 2014년 각각의 실비아가 완전 상반된 캐릭터기 때문에 여배우로서 그 매력을 쉽게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프라이드'가 다루는 동성애자에 대해 김지현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극중 올리버와 필립은 동성애자. 그러나 김지현은 실제로 동성애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때문에 그들의 성향과 용어 등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들에 대해 잘 몰랐던 김지현이 아닌 그들에게 익숙한 실비아가 되기 위함이다.
김지현은 "처음 '프라이드'를 접했을 때는 외려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다. 단순하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다"며 "근데 생각해보니 어릴 때 뭔가 멋있는 여자 아이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런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주위 사람들과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면 '프라이드'에서 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 등에 대한 이야기는 혼자 많이 생각했다. 동성애자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보다 보면 약간 씁쓸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다. 나는 잘 살고 있나. 동성애자 둘이 나와서 하는 신을 보고 있어도 거부감이 들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저 사랑이 행복하고 싶고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일어난 일들인데 그게 사회적인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상황적인 부분이 안 되다 보니 그게 가슴이 아픈 거다. 모든 사람한테 다 해당되는 '나의 삶은 얼마나 의미 있게 행복하게 살고 있나'에 대한 이야기다. 정답은 없다. 결론은 인간과 인간의 이야기라는 거다."
▲ "나 행복하자고 남한테 상처 주긴 싫다"
1958년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필립과 자신을 인정하는 올리버, 2014년 스스로에게 당당한 필립과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듯 하지만 트라우마를 가진 올리버 사이에서 실비아는 두 시대 모두 그들을 인정하기에 이들의 관계는 더욱 중요하고, 특히 실비아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이에 김지현은 "두 시대의 실비아는 완전 다르지만 어디에서나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실비아가 없다면 그들은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거다. 실비아가 끊임 없는 연결고리다"며 "1958년 실비아는 이타심이 너무 커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 생각하며 희생한다. 하지만 2014년 실비아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둘 다 이해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상황적으로는 과거의 실비아와 현재의 실비아 모두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같은 성, 정체성을 떠나 그냥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 같다. 인간 자체를 사랑하고 인간 자체의 매력과 그런 성품을 더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두 시대 다 그런데 과거에는 시대적으로 억압됐기 때문에 드러내지는 않는다. 현재는 앞장서서 더 당당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솔직하고 불의를 못 참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실제 김지현의 성격은 어떨까. 그는 "나는 약간 과거 실비아가 더 비슷한 것 같다. 과거 실비아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게 내가 아프더라도 내 마음이 편한, 내 방식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상대가 행복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미련할 수도 있는데 그래야 내 마음이 더 편하다. 나 행복하자고 남한테 상처 주긴 싫다. 어떻게 보면 착한병일 수도 있는데 내가 힘든게 낫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완전 다른 역할인 만큼 1인 2역 도전에 대한 김지현의 각오도 남다르다. 김지현은 "아주 극명한 차이가 있다. 현대와 과거에 대사의 분위기 자체가 아예 달라서 사실 크게 어렵진 않다. 문제는 매 장면이 붙어 있다는 거다. 과거 하고 바로 현재가 딱 나와야 한다"며 "어떻게 간극을 빨리 털고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에 각색을 같이 해주신 작가님이 잘 할 수 있게끔 말 자체에 힘을 많이 실어 주셔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십니까?"
극명한 캐릭터인 만큼 두 캐릭터의 매력이 명확하게 보여진다면 김지현은 배우로서 뿌듯함을 느낄 거라 말했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프라이드'의 주제가 잘 전달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다. 김지현은 한 시대를 사는 모습을 대변해 보여주는 것인 만큼 그 인물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이 자신의 숙제라며 계속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지현은 "사실 나이도 한 살 한 살 먹고 내가 지향하는 연기 스타일이 있는데 과연 그걸 잘 구현하고 있는 배우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럼프를 겪었었다. 대체불가인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연기하다 그런 생각이 드니 너무 슬펐다"며 "근데 그 때 오히려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더라. 그렇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프라이드'를 만났다"고 고백했다.
그는 "'프라이드'가 터닝포인트가 되면 좋겠다. 배우로서 내가 더 만족스럽게 잘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에 온 작품이다. 이전엔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겐 좋은 생각이었다"며 "한정된 걸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보니까 그렇게 한정된 걸 하지도 않았더라. 전형적인 여배우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김지현은 "'프라이드' 속 두 인물이 나라는 배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배우로서 바라는 건 그런 부분이다. '다른 인물이네' 이렇게 느껴지면 성공이다"며 "과거 실비아를 통해 같이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 해주시면 좋겠고 현재 실비아를 통해 속시원한 대변인의 모습, 혹은 내가 되고 싶은, 주위에 저런 친구 있으면 좋겠다는 모습이 보여지면 좋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작품적으로는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잘 살고 있나 한번쯤 본인의 삶을 잘 생각해보고 혹시 내가 꿈꿨던, 혹은 내가 지금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다시 용기를 내서 내 삶을 좀 더 원하는 방향으로 잘 설계할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굳이 동성애자 얘기를 한다면 그냥 공연을 보면 느끼실 것 같다. 똑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누구나 하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구나, 성이 다를 뿐인데 혹시라도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하고 갖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진 않았나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냥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나서 그런 생각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한편 연극 '프라이드'는 오는 8월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연극 '프라이드' 김지현, 출연 배우들. 사진 =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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