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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참 궁금하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호기심이 생긴다. 방대한 이야기를 정확하고 여유롭게, 또 쉽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 배우 박은석(30)은 관객들에게도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배우다.
호기심을 갖게 하는 배우이기 때문일까. 박은석은 작품에 있어서도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극을 볼수록, 또 생각할수록 더 궁금해지고 알고 싶은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본인만의 매력을 구축시키고 있는 것. 현재 박은석이 출연중인 연극 '프라이드(The Pride)'도 그렇다.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라이드', 그 안에 있는 박은석의 올리버. 모든 것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性)소수자들이 사회적 분위기와 억압, 갈등 속에서 사랑과 용기, 포용과 수용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1958년 자신을 인정하는 올리버, 2014년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듯 하지만 트라우마를 가진 올리버 역을 맡은 박은석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연히 영어로 된 '프라이드' 원작을 선물 받고 너무 좋아 한번에 다 읽었다. 그러다 공연을 보러 갔다가 연극열전 대표님을 우연히 만나 얼떨결에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생겼다. '프라이드' 이야기를 했고, 운명처럼 합류하게 됐다"고 입을 열었다.
▲ "존재감, 신뢰감이 있으니 의지할 수 있다"
원작을 읽은 뒤 '프라이드'에 합류하게 된 박은석은 대본을 받고 필립과 올리버 역 모두에 끌렸다. 필립은 정체성 때문에 이중 생활을 하고 갈등하는 1958년의 모습 때문에 끌렸고, 올리버는 통통 튀는 2014년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프라이드'의 모든 역할이 그를 설레게 했다.
박은석은 "연극 '히스토리보이즈', 연극 '수탉들의 싸움'에 이어 '프라이드'까지 모두 동성애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는 상남자인데 이미지가 그래 보이나보다. 내가 그렇게 생겼나? 그런 이미지를 풍기나?"라며 "어쨌든 '히스토리보이즈' 데이킨은 동성애자라고는 할 수 없다. 선생님에 대한 도전 정신이 생겼는데 하필이면 남자였던 것이다. 약간 뉘앙스를 풍길랑 말랑 했기 때문에 동성애자라고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수탉들의 싸움'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라 그런 부분이 큰 과제였다. '수탉들의 싸움'에서 존 본인은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아니고 더불어 양성애자도 아닌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라이드'의 올리버는 명확하게 자기가 동성애자인걸 알고 피하려 하지 않는, 증명해 나가는 강인함이 있는 사람이다. 최근의 세 역할 다 다른 인물이라 '게이'라는 것으로 단정 지으면 안될 것 같다. 동양인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다양한데 하나로 정리해 버리면 개개인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은석 말대로 모든 캐릭터가 개개인의 정체성이 있는 만큼 '프라이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그 역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프라이드'는 동성애자라는 소재를 갖고 있지만 결국에는 주제가 아니다.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수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그런 소수자들을 대표로 삼아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위로 해주는 작품이다.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게 아니다. 매 순간 내가 배우려 할 뿐이고 그 과정에서 깨우침을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라이드'는 너무 짜임새가 좋다. 1958년은 잔잔하고 갑자기 나치 코스프레가 나와 뒤집어 놓고 부부싸움이 있고 올리버와 실비아가 재기발랄한 2014년을 보여주고 다시 무거워지고 이런 것들이 잘 쥐었다 폈다 한다. 외부적인 부분도 잘 짜여져 있어 집중력도 더 높아진다. 또 연기를 잘 하시는 분들과 모여 있으니 엄청난 도움을 받는다. 특히 이명행, 정상윤 형은 나를 올리버 그 자체로 봐주니 더 신뢰가 간다. 서로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 나머지는 레고처럼 그 위에 쌓아 올린다. 존재감, 신뢰감이 있으니 내가 의지할 수 있고 다들 의지할 수 있는 거다."
▲ "인물이 가진 결핍을 파악한다"
'프라이드'는 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 하며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이에 박은석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주변에 게이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쉽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당당하게 밝히고 잘 어울리고 잘 놀았다"며 "당당했던 그 친구의 모습이 되게 색달랐다. 올리버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동성애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존재는 알고 있었고, 동성애자를 다루는 작품을 하며 엄청나게 많이 배웠다"고 고백했다.
"초반에 남자들끼리의 접촉, 스킨십이 어색하긴 했는데 작품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나아가서 좀 준비가 된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벽을 허물어 놨기 때문에 '프라이드' 속 스킨십이 힙들진 않았다. 사실 '프라이드'를 하면서 처음으로 남자랑 키스를 해봤다. 연습 하다가 (정)상윤 형이 훅 들어와서 되게 충격이었다. 수염을 너무 많이 길러놔서 아팠다. 내 인생의 첫 남자다.(웃음) 이제는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자와의 스킨십에 익숙해지는 만큼 동성애자 올리버에게는 어떻게 익숙해졌을까. 그는 "항상 가장 먼저 하는건 인물이 가진 결핍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게는 결핍이 있고 콤플렉스가 있다"며 "결핍으로 인해 목표가 생기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캐릭터가 달려간다. 그 안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한다. 결핍을 통해 인물을 파악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올리버가 가진 결핍은 가장 큰게 나만 이런 줄 아는 것이다. 1958년에는 동성애가 불법이었으니 자기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결핍이다. 자신의 그런 면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 했으며 자신 안에 있는 결핍을 충족시키지 못하니 얼마나 외로웠겠나"라며 "결핍으로 인한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게 필립인데 이 사람은 피하려 한다. 올리버는 겪을만큼 겪은 사람이니 필립은 자신처럼 방황하지 않길 바라며 살갗이 아닌 마음이 닿는 관계를 맺자고 하는 거다. 분명 똑같은 상처를 갖고 있으니 위로해 주고 싶은건데 필립이 허락해 주지 않으니 결핍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2014년의 결핍은 섹스중독에 가까운 거다. 이건 내 해석인데 1958년에 올리버가 한 번 강간을 당하지 않나. 그 상처가 2014년 올리버에게 반영이 된 것 같다. 그런 상처가 있기 때문에 불안한 심리를 채우려고 자꾸 섹스로 채우려는 거다. 모든 게 결핍에서 시작된다. 표현에 있어서는 1958년 올리버는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마음만 와닿으면 된다. 2014년 올리버는 미국 사이트 들어가서 '프라이드' 리뷰를 봤는데 '2014년 올리버는 한마디로 병신이다'라는 게 있었다. 그게 너무 딱 맞아 떨어져서 그냥 솔직하게 쭉 가도 상관 없구나 했다. 다만 필립에 대한 마음 하나는 진심이다."
이어 박은석은 2014년 올리버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진짜 얄밉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사람이 악의가 없으니까. 그게 중요한 거다. 올리버가 만약 악의가 있는, '나는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받고 싶고 필립까지 원해'라고 한다면 나쁜놈이다. 근데 그냥 자신의 결핍을 해소하고 진짜 사랑하는건 필립이다"고 말했다.
▲ "정석대로 가는 게 나의 프라이드"
'프라이드'는 결국엔 모두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박은석은 "호모포비아도 많고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다. 미국에선 동성애자와 전혀 상관 없는 상황에서도 '게이 같아'라고 하는 게 뭔가 의미가 생겨 버려 안타깝다. '저거 되게 코리안 같아'라고 하는 게 안 좋은 의미를 갖게 되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상처 받겠나. 똑같은 거다. 그런 선입견들이 큰 상처를 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프라이드'는 동성애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 나라 역사를 지켰듯, 그 사람들 역시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한 역사가 있기에 인정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박은석 씨는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게이라고 하면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묻는다면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때려서라도 바꿀 생각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해줘야 한다. 예전 같았으면 반대 했을텐데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놀랍다. 그런 면에선 텍스트의 힘을 믿고 간다. 이게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한 프로덕션이라 치면 실비아가 총괄하는 프로듀서, 올리버는 디렉터, 필립은 액터다. 실비아가 다 잡아주고 올리버가 명확하게 짚어주고 올리버가 그 안에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은석은 연습 당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는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웃겨서 유쾌했다. 사실 강간신을 걱정했는데 연습 때는 제일 웃겼다. 이제 '러브신'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슬픈 장면인데 연습할 땐 민망하니까 웃기더라. 웃프(웃기면서 슬프다)지 않았나 싶다"며 "제일 슬픈 장면은 2014년에 나치 놀이를 하다 필립이 오고 제발 가지 말라고 끝까지 애원하는데도 필립이 문을 쿵 닫고 갈 때다. 문소리가 참 슬프고 상처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역겹다'고 하는 것도 제일 큰 타격이다"고 말했다.
"같이 올리버 역을 연기하는 오종혁 형이 많은 도움이 됐다. 원래 대사를 잘 외우는 편인데 '수탉들의 싸움'을 하고 있을 때라 그런지 도저히 안 외워지더라. 근데 종혁 형은 '블러드 브라더스'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 외워 와서 자극을 줬다. 한 번 집중하면 믿어 의심치 않는 푹 빠지는 모습이 좋았다. 러브신이 제일 힘들어 서로 얘기도 많이 했다. 연출님도 작품 의도나 관계의 전환 등을 흥미롭게 해주셨다. 톡톡 튀는데 또 우리 천재 연출님께서 그런걸 콕콕 집어낸다. 개인적으로는 손에 떨림이 느껴지게 필립에게 갖다 대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공연 중엔 진심으로 나오더라. 연출님이 주신 것들을 의심하지 않고 시도하면 다 되는 것 같다."
이어 박은석은 자신도 올리버처럼 남드로가 다른 것을 극복한 경험을 털어놨다. 7살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던 그는 22살에 홀로 한국으로 왔다. 15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 후로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다. 아무것도 없이 한국에 왔지만 부모님께 손 벌려 본적도 없다. 뭘 사고 싶어도 부모님은 반만 지원해줬다. 반은 직접 벌어야 했다. 일명 '반띵'이다. 피자 배달, 영어 강사, 영화사 스태프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나 혼자 버티고 사는 게 어떻게 보면 프라이드다. 자존심과 자긍심은 다른데 나에겐 자긍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핑계를 많이 대는데 그런 핑계들은 스스로를 끌어 내리는 것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정석대로 가는 게 나의 프라이드다. 미국에선 내가 소수자로 살았다. 그래서 더 소수자에 대해 잘 알고 극복해 나간 것들에 프라이드를 갖는 거다. 애국심도 강하다. 누가 한국 욕 하면 의자 집어 던지고 목 조르면서 싸우고 그랬다.(웃음) 난 나만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어딜 가든 고개 막 이만큼 들고 다니고 그랬다. 어디서 나온 프라이드인 줄 모르겠지만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항상 그런 존재에 대한 프라이드가 생겼다."
연기에 있어서도 박은석은 홀로 많은 것들을 극복해 왔다. 유머러스한 아버지, 사랑 가득한 어머니, 동생을 잡아주는 형 덕분에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21살 안 좋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프라이드가 완전히 무너졌고 3개월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 때 처음 접한 연기가 그를 치유했고 평생 이 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그래서 더 연기를 대하는 마음도 남다르다.
"다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너무 철이 없고 생각이 짧긴 했는데 난 모든 것들에 분명히 명확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들은 나를 학습시키기 위해,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나는 왜 태어났지', '뭘 하고 싶지' 등을 생각한다. 그래서 잠을 못자긴 하는데 이 고민들이 구식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겐 필요한 것들이다. 캐릭터에 반영 되기도 한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제 드라마 및 영화 쪽으로도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연기는 계속 하는 거니까 내 나이에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 완벽한 배우는 없다. 적어도 거짓말 하지 않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할거다. 꾸준히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한편 박은석이 출연하는 연극 '프라이드'는 오는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배우 박은석. 사진 =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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