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레드카펫은 배우와 감독이라면 한번쯤은 밟아보고 싶은 꿈의 길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팬들을 향해 손인사를 건네며 그곳을 밟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이런 꿈을 매일 꾼 사람이 있다.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고 상을 받으며 연습해 온 수상소감을 말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꿈 말이다. 하지만 꿈이었다. 옆에서는 자꾸만 신음소리가 들린다. 에로영화 감독의 꿈이었다. 영화 '레드카펫'의 이야기다.
'레드카펫'은 알아주는 에로영화 감독이 자신의 팀들과 함께 에로영화가 아닌, 특별한 인연이 있는 흥행퀸 여배우와 함께 자신의 꿈인 극장에 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배우 윤계상을 비롯해 고준희, 오정세, 조달환, 황찬성 등이 출연했으며, 실제 에로영화 감독으로 2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박범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렇다. '레드카펫'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감독의 이력이다. 박범수 감독은 실제 에로영화 현장에 몸을 담았던 감독이다. 실제 현장에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느낌을 '레드카펫'에 집어 넣었다. '쟤 믿는 영화' '소원을 말해봐' 등의 연출과 각본을 맞아 마니아 영화팬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궁금했다. 에로영화 현장에 몸을 담았던 감독이 만든 에로영화 촬영기가 말이다. 이것이 '레드카펫'이 지닌 덕목이었다. '레드카펫'의 출연진을 포함해 가장 궁금한 사람은 주연 배우가 아닌 박범수 감독.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박범수 감독의 애환은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만났다. 박범수 감독을.
▲ 이하 박범수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 개봉을 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갑작스러워서 실감이 안난다. 실감이 안 나고 약간 꿈같은 그런 느낌이다. 관심 가져주시고 찾아줘서 정말 감사하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찾아주니 고마울 뿐이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가 장진 감독님의 '우리는 형제입니다'고, 우리 뒤에 개봉하는 영화가 이해준 감독님의 '나의 독재자'다. 정말 좋아하는 감독님들인데 같은 시기에 개봉을 한다는 게 너무 놀랍다.
- 영화 속에 실제 에피소드가 많이 녹아 있다고 들었다.
대사 중에서는 '사대보험이 꿈은 아니지 않느냐'가 있다. 사대보험이 꿈도 아닌데, 자꾸 사대보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살짝 바꿔서 넣어 봤다. 또 영화를 찍다가 회식중이라고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는 에로배우가 있다. 실제로는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집에 말을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촬영을 했고, 개봉까지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
내가 성인영화 감독이라고 시나리오 자체가 전달이 되지 않았다. 안하겠다고 확실히 거절을 하면 다른 배우를 찾을 텐데 아에 전달조차 되지 않더라. 내가 성인 영화 감독 출신이라는 것을 감추자고도 했는데 그것은 싫었다. 그때 부산영화제에서 진행하는 피칭행사가 있었고, 최종까지 올랐다. 그 덕분에 시나리오가 배우들에게 전달이 됐고, 이렇게 영화가 나오게 됐다.
- 일명 '19금 영화계의 어벤져스 군단'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성인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배우의 사생활이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자의 이야기면 실제로 최근 그런 경험이 있는 배우를 찾는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말이다. 그러면 공감도 잘 하고 감정을 잘 끌어낸다. 그것을 나는 '배우의 습기'라고 부른다. 윤계상 같은 경우는 가수를 하다가 연기를 했을 때 선입견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또 오정세는 77년생인데 작품이 70개가 넘는다. 무명이 길었다는 것이다. 이런것이 어벤져스 군단이 화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 영화 속에 실제 성인 영화배우들이 나왔다고.
성인 영화 배우 분들을 우리 영화에 출연을 시켰다.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다. 나는 꼭 같이 하고 싶었다. 그분들이 와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촬영하면 다른 배우들의 선입견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로업계에 있는 사람들을 딴나라 사람처럼 보는데 다 똑같다. 거기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남편이고 자식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 그래서 선입견은 좀 깨졌는가.
선입견이 깨진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성인 배우들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기죽지 말라고 했다. '이쪽에선 너희가 프로다'라는 말도 해 줬다. 촬영을 하다보니 다른 배우들이 더 기가 죽어 있더라. 서로 공감을 많이 해 줬다. 배우들이 응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정말 열심히 해 줘서 고맙다.
- 에로영화 촬영기라고 하면 좀 야하고 강한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15세이상관람가더라.
원래는 청소년관람불가를 생각하고 찍었다. 노출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에로영화 촬영장을 담았는데 15세이상관람가는 좀 어려울 것 같았다. 직접적인 노출이 없다고 하더라도, 배경으로 잡히는게 노출이 있을수도 있다. 그냥 막 돌아다니는게 진짜 현장이다. 블라인드 시사를 했는데 깜짝 놀랐다. 큰 스크린에 노출된 사람의 일부가 꽉 차니 엄청 크더라. 뒤에 오는 코믹스러운 부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깜짝 놀라서 편집을 했고, 그러고나니 15세관람가가 나온것 같다.
- 오해와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해와 편견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몰라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처음 1~2년차 때는 섭섭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다른 직업군에 대해 선입견이 많았다. 기자들이 무섭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처럼 성인 영화쪽에도 선입견은 당연히 있다. '레드카펫'이 완화 시킬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 그런 선입견으로 생긴 속상한 일도 있나.
'레드카펫'을 보면 술집에서 성인 배우에게 치근거리는 장면이 있다. 좀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도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 응원하주고 사인을 받는 분들도 있지만 시비를 걸어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는 좋게 말을 해서 다른 자리로 옮기는데 영화에서는 대리만족으로 때려줬다. 하하.
[박범수 감독, 영화 '레드카펫' 스틸컷.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누리픽쳐스 제공]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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