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잠실구장을 뒤덮은 LG 팬들의 함성은 엄청났다. 심지어 플레이오프 4차전 9회말에도 LG 팬들은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큰 목소리로 'LG'를 외쳤다.
그야말로 잠실을 점령한 LG 팬들이 가장 큰 목소리를 냈을 때는 바로 '적토마' 이병규(9번)가 등장했을 때였다. 그 다음은 '착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킨 최경철의 타석 때였다.
예상 외로 LG 팬들의 함성이 클 때도 있었다. 바로 최승준이 대타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홈런 20개를 터뜨린 '거포 유망주'이지만 올해 1군 무대에서, 아니 프로 통산 홈런 2개를 친 것이 전부인 그에게 LG 팬들은 왜 큰 목소리로 환영했을까.
그간 LG 팬들의 갈증과 염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LG는 그동안 거포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팀이다.
LG는 두산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 구장으로 쓴다. LG 투수들은 물론 다른 팀의 투수들 대부분 "다른 구장보다는 잠실구장이 넓어서 편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것은 반대로 타자들에겐 '가장 담장을 넘기기 어려운 구장'이 바로 잠실이다.
LG의 주장 이진영은 SK 시절이던 2005년 홈런 20개를 터뜨리는 등 2002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였다. 하지만 LG로 이적한 첫 해인 2009년에 홈런 14개를 친 이후에는 매해 한 자릿수 홈런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진영은 올해 타율 .325를 기록했고 LG에서 6년 동안 타율 .312로 정확성 있는 타격을 보여줬다. 장타에 대한 욕심을 버린 것이다.
이진영은 시즌 중 "장타에 욕심을 내면 3할도 치기 어렵다. 아무래도 구장이 크다보니 내 타법도 바뀌는 것 같다. 홈런보다는 안타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타구 비거리에도 영향이 있는 듯 하다"라면서 "선수들에게도 이야기한다. '홈런 2~30개를 치지 못할 거면 안타를 치는 게 팀에 더 도움이 된다'고 얘기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구장이면 홈런이 될 수 있는 타구가 잠실에서는 펜스 앞에서 아웃이 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색을 가진 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에게는 장타를 노리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LG는 한때 잠실구장 펜스를 앞당기며 장타력의 증대를 노렸으나 당시 약한 팀 전력 때문에 오히려 피홈런이 늘어나는 역효과로 이어져 기존 길이대로 환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LG 팬들은 '한방'에 대한 갈증이 여전하다. 1군 선수로서 이제 막 기지개를 켠 최승준을 향한 함성도 한방에 대한 열망과 거포를 갖고 싶은 로망이 묻어난다.
지난 플레이오프 3차전. LG는 0-5로 뒤지던 5회말 1사 1,2루 찬스에서 최승준을 대타로 투입했다. LG 팬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최승준의 등장을 반겼다.
"우리가 5점차로 지고 있었다. 5점차, 4점차, 3점차는 느낌이 다르다. 상대 투수도 나와 승부하려고 해 나도 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최승준도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큰 것 한방'이었다. 그런데 최승준은 방망이 한번 제대로 돌려보지도 못했다. 3구째 몸에 맞는 볼로 1루를 채운 것이다.
"초구에 방망이를 돌렸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깊게 들어왔다. 그래도 출루를 해서 절반의 성공을 한 것 같다"는 최승준은 자신이 대타로 등장했을 때 함성이 큰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걸어나갈 때도 함성이 들린다. 타석에서도 응원 소리가 들리지만 투수와의 승부에 신경을 쓴다"라는 그는 "기대하시니까 더 쳐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기대하는 게 한방 아니겠나. 기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LG는 플레이오프에서 패퇴했지만 기적과 같은 레이스로 내년을 향한 가능성을 비췄다. 최승준 역시 '희망'을 안긴 올 시즌이었다. 장원삼을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터뜨렸고 한 이닝 10점째를 마크하는 130m짜리 대포도 쏘아 올렸다. 아시안게임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는 김광현을 상대로 가운데 담장을 넘겨 주목을 받았다. 모두 잠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여기에 기대도 못한 포스트시즌을 경험하는 잊지 못할 순간을 맞았다. 최승준은 "정규시즌 때 엔트리에 있는 것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라면서 그 의미를 새겼다. 포스트시즌은 경험한 자만이 즐길 수 있는 무대다. 최승준 역시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엄청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올해부터가 시작이다. 내년도 중요하다"는 그의 시선은 벌써부터 내년 시즌으로 향하고 있다. LG 팬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가 '숙원 사업'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최승준. 사진 = 마이데일리 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