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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칼럼니스트 곽정은은 존중하지만, 그가 논란을 길게 반박한 글을 읽고 더불어 고개를 길게 끄덕이진 못했다.
문제가 된 SBS '매직아이' 발언에 대해 곽정은은 6일 "성적인 욕망에 대해 발언했다는 이유로 나와 내 일을 매도하고 싶은 사람에게 조금도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입장이 담긴 블로그에 올라온 해명은 장문이었으나 정작 논란의 중심은 비켜간 인상이다. 논란의 핵심은 네 가지다.
먼저, 곽정은의 발언에 불쾌한 건 시청자들이다.
곽정은은 "장기하는 나의 그 발언에 대해 유쾌하게 받아들였다"며 성희롱적 발언이 아니란 입장이다. 장기하는 유쾌하게 받아들였을지언정, 다수의 시청자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여 문제가 되었단 논란의 본질을 외면한 셈이다.
'매직아이'는 장기하와 단 둘이 주고받은 사담이 아니었다. 녹화 순간이야 장기하와 몇몇 출연자, 스태프들만 있었더라도 전파를 타는 순간 '매직아이'는 사적 공간이 아닌 전국의 수많은 시청자들이 공존하는 커다란 광장이 되어버린다. 장기하가 유쾌했다고 불쾌함을 느낀 다수의 시청자들을 단지 자신을 매도하는 이들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둘째, '매직아이'는 15세 이상 관람가의 지상파 토크쇼였다.
"이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란 명백히 성적(性的) 암시를 담고 있는 발언이 방송 수위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게 시청자들의 지적이다. 19세 이상 관람가인 종합편성채널 JTBC '마녀사냥'과 달리 '매직아이'는 더 어린, 미성년자 시청자들까지 아우른다는 걸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이는 곽정은의 발언을 적절하게 거르지 않은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
'15세 이상 미성년자에겐 성적인 발언을 금기해야 하는가'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지금의 논란에선 이를 따져보는 건 무의미하다. "이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성적 발언을 수용할 수 있는 한계 연령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모색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셋째, '침대 위가 궁금하다'와 '섹시하다'가 동일한 쓰임새인가.
곽정은은 "'섹시한 남자 장기하'라고 말하면 올바른 표현이고,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장기하'라고 말하면 무조건 옳지 못한 표현인가?"라고 반문했다. 사전적 정의를 넘어 사회적 통념상 '섹시하다'가 담고 있는 의미와 '침대 위가 궁금하다'에 담긴 의미가 과연 같은가. '섹시하다'가 '성적인 매력'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요즘은 더 포괄적인 매력으로 지칭되며 세간에 통용되고 있는 것과 달리 '침대 위가 궁금하다'는 직접적으로 남녀간 잠자리를 연상하게 한다. 사회적 공감이 없는데 '침대 위가 궁금하다'를 '섹시하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이다.
곽정은은 자신의 발언이 "그의 섹시한 매력에 대해 보내고 싶었던 100%짜리의 긍정적 찬사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도대로 '섹시하다'고 표현했어야 더 어울렸을 것이다.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고 해놓고 '섹시하다'란 말과 왜 같은 반응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넷째, 남성이 해도 자유로운 발언이었을까.
반대로 한 남성이 방송에서 여성 연예인을 향해 "이 여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했다고 가정하자. 곽정은의 논리라면 만일 이 남성이 섹스칼럼니스트라면 이 발언은 단지 '직업적 발언'일 뿐이고, 시청자들이 이 남성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도 '비이성적이고 무논리한 마녀사냥'이 될 뿐이다.
곽정은은 문제의 발언을 한 후 "이런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에선 다른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자유'란 단어에 갸웃할 수밖에 없다.
이따금 예능에서 '웃음거리'란 명목 아래 여성 연예인이 남성 연예인의 볼에 장난스럽게 뽀뽀하거나 갑자기 껴안는 장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금껏 크게 문제 삼는 이도 없었고 꽤 관대한 편이었다. 최근에야 이런 행동이 여성을 대상으로 하면 문제 되듯, 남성에게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단 인식이 확산됐는데, 시청자들이 곽정은의 발언을 질타하는 건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방송에서 남성 출연자를 대하는 여성 출연자의 발언과 행동에도 예의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바탕이 된 것이고, 곽정은의 발언이 이러한 의식의 공유가 폭발하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 격이다.
어떻게 보면 곽정은의 짧은 발언 하나가 일으킨 논란이 성희롱에 대한 개념, 방송 속 남녀출연자의 책임과 제작진의 역할 등에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곽정은은 자신을 향한 비판이 불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곽정은의 "아무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말만 해야 하는 사회에 미래 따윈 없다"란 말을 공감하기에, 곽정은이 혹시 느꼈을지도 모를 불편함에도, 곽정은을 칼럼니스트로서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거듭 비판한다.
[사진 = SBS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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