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가드 없는 농구가 잘 됐다.”
20일 강호 오리온스 격파로 3연승. 9연패 침체를 완벽하게 덜어냈다. 5위로 올라선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가드 없는 농구가 잘 됐다”라고 했다. 전자랜드에 kt, 삼성과 오리온스전 승리 의미는 전혀 다르다. 전자랜드는 높이에 한계가 있다. 10개구단 중 가장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kt, 삼성 역시 높이가 그렇게 좋지 않다. 삼성의 경우 김준일이 최근 감기몸살로 빠지면서 높이가 평범해졌다.
오리온스는 다르다. 트로이 길렌워터와 이승현, 장재석에 찰스 가르시아, 김동욱 허일영 김도수 등 190cm가 넘는 포워드들이 즐비하다. 다양한 조합으로 빅 라인업 구축이 가능하다. 전자랜드로선 당연히 kt, 삼성에 비해 오리온스전 승리 의미가 더욱 크다. 그런 점에서 “가드 없는 농구가 잘 됐다”라고 말한 유도훈 감독 코멘트가 눈에 띈다.
▲가드 없는 농구의 의미
현재 정통 포인트가드 역할을 하는 1번은 남녀 16개구단을 통틀어 그리 많지 않다. 포지션 파괴가 진행된 건 오래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번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는 팀과 없는 팀의 차이는 있다. 전자랜드 국내 선수들은 신장은 작아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 또 유 감독이 그렇게 팀을 만들어놨다.
유 감독은 객관적 높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1번의 비중을 없앴다. 키 작은 가드들을 대거 기용할 경우 상대에 미스매치를 제공하기 때문. 주전 포인트가드 박성진은 단 21분36초만 뛰었다. 팀내 최다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렇게 비중이 높지 않았다. 대신 190cm 차바위, 187cm 정영삼이 오리온스 공격 출발점인 이현민을 꽁꽁 묶었다. 정영삼은 가드지만, 1번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차바위는 포워드다. 전자랜드는 이를 통해 수비 매치업 약점을 메웠다.
공격에선 리카르도 포웰을 사실상 1번으로 활용했다. 포웰은 “나는 가드다. 이 역할이 낯설지 않다”라고 했다. 전자랜드 국내선수들의 테크닉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테크니션 포웰에게서 파생되는 옵션이 대부분이다. 이날 포웰은 28점 11리바운드로 펄펄 날았다. 어시스트는 1개에 그쳤으나 직접 볼을 배급하고 경기를 운영했다. 해결사 역할까지 자처했다. 포웰이 있기 때문에 가드 없는 농구를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전자랜드는 포웰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미스매치를 만들어 확률 높은 공격을 했다. 가드 없는 농구는 사실상 1번 정통 포인트가드에 의존하지 않는 농구다. 약점을 가리고 강점을 극대화한 유 감독의 기 막힌 용병술.
▲본격적 검증의 시작
전자랜드는 3연승 과정에서 게임을 상당히 안정적으로 풀어갔다. 9연패 과정서 사라졌던 특유의 기계적인 스위치디펜스와 숨 막히는 대인마크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시즌 초반 계속된 원정경기로 쌓인 피로도 조금씩 풀리는 시점. 그러나 전자랜드의 가드 없는 농구가 장기적으로 통할 수 있는 카드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삼성과 kt전은 상대적으로 매치업이 수월했고, 오리온스는 최근 3연패 과정서 내, 외곽 밸런스가 완벽하게 무너졌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수비의 끈질긴 맛도 떨어진다. 때문에 전자랜드가 평소보다 좀 더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유 감독은 “이제 높이를 갖춘 팀들과 계속 만난다”라고 했다. KGC, LG, 모비스 등과 잇따라 맞붙는다. 전자랜드의 진정한 경쟁력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 기본적으로는 오리온스전과 비슷한 플랜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가드 기용을 최소화하고 포워드들 비중을 높이면서 매치업 한계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미스매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
전자랜드의 이 시스템은 결국 포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장점도 되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높이를 갖춘 팀의 촘촘한 수비조직력에 포웰이 또 다시 봉쇄당할 수도 있다. 포웰이 1번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어시스트 능력이 그렇게 탁월한 것도 아니다.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유 감독도 “우리는 볼 없는 농구를 잘 해야 한다”라고 했다. 포웰에게 의존한 채 다른 선수들이 서 있는 농구를 하면서 9연패로 이어졌다.
일단 차바위 정영삼 정병국 등의 공수 움직임이 살아난 건 고무적이다. 가드 없는 농구가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장신포워드 정효근, 함준후, 이정제 등의 활약이 뒷받침 돼야 한다. 유 감독은 오리온스전서 이정제와 함준후를 선발출전시켰으나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나 전자랜드로선 높이 한계를 메우기 위한 시스템(가드 없는 농구)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 이들의 공헌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시즌을 치르면서 시스템을 완성해나가야 한다.
[전자랜드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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