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시시때때로 변하는 표정과 말투. 짜증스럽다가도 안도 한다. 오로지 형을 구하기 위해 서울 도심으로 '링'으로 생각하고 일생일대의 한판승부를 벌이는 최익호는 '빅매치' 속 단 하나의 '말'이다. 보이지 않지만, 돈을 쥐고 생사가 달린 경기를 지켜보는 어둠 속 '그들'은 최익호를 움직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돈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에이스가 최익호를 움직인다. 전에 없던 캐릭터였고, 영화 속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신상'을 추구하는 이정재가 딱 찾던 그런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정재는 최익호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가장 크게 부각된 부분은 바로 운동이다. 격투기 선수다운 몸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에이스가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액션을 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일명 '좀비 파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최익호였기 때문에 해내야 했다.
이정재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종종, 아니 그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나이'를 운운했다. "나이가 들고 운동을 하려고 하니 (체중이) 잘 안 늘더라"며 어쩌면 엄살같이 보이는 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이정재는 완벽했다. 소위 말하는 '수트핏'이 사는 그런 잔근육이 아닌, 우람한 '운동선수다운' 근육이 충분했다. 몸집이 조금 커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하다. 솔직히 '빅매치'를 하면서 83kg까지 체중을 늘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80kg이 넘어간 적이 없었다. 오전엔 근육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좀 쉬었다가 격투 훈련을 4시간 정도 했다. 근육이 쉴 시간이 없었다. 체중이 생각만큼 안 늘어났다.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은 있다. 항상 내 몸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래서 특별히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약간의 억울함도 있다. 하하."
이정재가 '빅매치' 촬영을 시작도 하기 전에 부상을 당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영화 '무뢰한'에서도 하차를 해야 했다. 하지만 막 촬영을 앞둔 '빅매치'를 포기할 순 없었다. 어깨 인대 부상 소식을 듣고 '아, 이 작품은 못하는구나'싶었고,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도 만류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연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퇴를 앞둔 선수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 순 없었다. 하지만 해 냈다. 은퇴가 아닌, 시즌 도중에 부상을 당한 야구선수의 심정으로 해냈다.
몸의 고통이 걱정되진 않았다. 그보다 그 고통으로 인해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할 것이 걱정이었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촬영을 하긴 했지만, 몸의 고통으로 인해 움츠려 드는 건 인간의 본능 아닌가. 이정재 역시 그런 걱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잘 지나갔다. 숨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로는 "그럴만한 고통은 없었다"고 했다. "조심해서 촬영을 잘 하고, 촬영을 시즌으로 생각하고, 시즌을 잘 끝낸 뒤 수술을 한다고 생각했다. 결정은 제작사에게 맡겼다."
그렇게 모든 촬영을 끝냈고 개봉을 했다. 이정도 수준의 액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부상을 당했고 수술을 했다. 한 작품은 포기를 해야 했다. 아직도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답은 의외였다, "욕심으로는 하고 싶다." 상황적으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욕심이 있었다. 수술을 받았고 회복이 더디다는 것도 느꼈다. "막상 다쳤을 때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욕심으론 하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빅매치' 역시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설정들이 있다. 하지만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영화니까' '그렇다 치고' 등의 넘김이 가능한 정도다. 이 부분은 최호 감독도 알고 있었고, 여기에 출연한 이정재도 마찬가지였다. "설정상 납치를 당한 사람이 형이라는 것에 고민했다. 사랑하는 여자도, 아이도 아닌 형이라니." 듣고 보니 그랬다. 형 역으로 출연한 배우 이성민의 독특함과 에이스의 능숙함으로 넘길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이정재의 필모를 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로맨스부터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다양한 캐릭터,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때로는 순박했고, 때로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무서웠다. 물론 '귀엽'기도 했다. 어떤 팬의 말처럼 '딱 귀여운 40대' 아닌가. 대중들은 즐겁다. 잘생'김'까지 붙인 이정재가 마치 다른 사람 마냥 여러 모습을 보여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이 끝나면 또 다른 새로움을 찾는 이정재에게는 부담이 느껴질 만 했다.
"압박감까지는 아니지만, 신상품을 계속 내놔야 한다는 부담은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압박감이 있었다. '모래시계' 이미지를 벗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충분히 즐겼어도 괜찮았을 건데, 나와 재희를 연관시켜서 생각하니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다. ('빅매치'로) 너무 무겁거나, 심각한 것보다는 약간 가볍게 풀어지는 연기를 보여드렸다. '암살'이 정해진 상태였고, 들어가기 전에는 '빅매치'처럼 가벼운 영화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정재의 생년월일을 활자로 정확하게 확인 한 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정재는 자신의 나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이 감춘다는 것은 아니다. "흰머리가 많이 났다" "딱 귀여운 나이" "나이가 들어 운동하는 게 힘들다" 등 어쩌면 핸디캡일수도 있는 나이를 자주 거론한다. 이는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정재의 생각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 다른 배우들의 나이를 찾아본다. '이분은 도대체 몇 살인지'라는 생각에 찾아본다. 나 역시 놀라기도 한다. 이 나이인데도 이런 역할이 가능한가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것일 뿐이다."
'빅매치' 이야기를 모두 끝낸 후 '무뢰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하차를 했지만, 수술을 한 직후에도 액션이 들어간 촬영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배우 전도연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고 했다. "제작사 대표가 병원을 방문해 '이정재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더라. 또 '이 사람을 데리고 찍는 게 이 사람에게 못할 짓 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더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궁금하다. 아직 개봉을 하지 않은 작품('암살')도 있고, 아직 시나리오가 건네지지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정재의 손에 쥐어질 작품도 있다. 인터뷰 중간에 언급된 '격정 멜로'가 이정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정재의 신인 시절이었던 20대에도 이정재는 궁금한 배우였고, 20년이 지난 현재도 그렇다. 당연히 미래의 이정재도 궁금해 할 것이다.
[배우 이정재. 사진 = NEW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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