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배우 조여정’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방자전’과 ‘후궁’이 있다. 당당함과 노출이 동시에 떠오른다. ‘방자전’에서도 그랬고, ‘후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송승헌의 아내로 출연한 ‘인간중독’도 마찬가지였다. 독특한 캐릭터에 조여정만의 사랑스러움을 더 해 캐릭터를 재탄생시킨다. 최근 개봉한 ‘워킹걸’에서도 물론 그랬다.
조여정은 ‘워킹걸’에서 잘나가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해고 당한 보희 역을 맡았다. 보희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또 ‘워킹걸’ 안에서 성장을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주 무대가 성인용품샵이다. 조여정이 맡은 보희는 난희(클라라)와 함께 성인용품샵 공동대표가 된다. 이런 스토리 라인과 성인용품이라는 소재는 쉽게 손을 대기 힘들게 한다. 그런데 한입 베어 물고 그 과즙을 맛본다면? 신세계다. 성인용품이라는 소재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놀랍다.
그 과즙을 맛본 조여정을 만났다. 시작은 메가폰을 잡은 정범식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독특한 정범식 감독의 화법이 궁금했다. 공포영화 일 듯 한 ‘기담’은 조여정에서 멜로 영화로 다가왔다. ‘워킹걸’ 시나리오를 읽고 과연 정범식 감독이라면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그렇게 조여정은 달달한 과즙이 가득한 ‘워킹걸’을 만났다.
▲이하 조여정과 나눈 일문일답.
- ‘워킹걸’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가?
정범식 감독님과 작업을 함께 해 보고 싶었다. 좀 독특하신 것 같다. ‘기담’을 공포로 알고 봤는데 멜로 영화더라. 영화에 그런 매력이 이것저것 같았다. ‘워킹걸’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감독님은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선택했나’ ‘날 어떻게 요리할까’ 등이 궁금했다. 어떤 그림이 있으니까 나라는 배우를 선택했을 건데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꺼내줄 것 같았다. 정말로 나도 모르는 나를 꺼내주셨다. 내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 나와서 재밌었고, 관객들도 그런 모습을 보고 좋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고 많이 웃어주면 그거면 됐다.
-정범식 감독이 ‘기담’ 이후 그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어떤 부분에서 믿음이 갔는가.
감독과 배우가 있을 때 본인이 한번 보인 예술적인 감각이나 실력을 어딜 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어쩌다 보면 불발이 될 때도 있고, 배우도 작품을 하다 보면 똑같은 것 같다. 한 작품이 잘되면 그 배우가 다 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좋은 시나리오와 연출이 만나서 그렇게 나온 것이다. 잘 됐을 땐 그 배우가 다 한 것처럼 생각하다가 그 다음을 꾸준히 한 것뿐인데 외면당하면 '안 되네' 라고 생각한다. 연출도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하는 것보다 만났을 때 내가 만나 들어보니 '우와' 했다. 그 느낌을 믿고 가는 것이다.
-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가 한정적인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선택할 때 기준이 됐나
그렇다. 주체적인 축을 캐릭터가 많지 않다. 이런 기회를 안 하고 싶겠는가. 그걸 전제로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고 싶은 만큼 겁도 났다.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끌고 갈수 있을까, 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상상해서 날 꺼내보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할 지 안 놓여봐서 모른다. 아무리 시나리오를 봐도 모른다. 촬영날 현장에 가서 배우와 호흡을 해 보고 느껴야 뭔가 나오는 것이다. 혼자서는 백날 해봐도 안 나온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충무로에서 강한 여성 캐릭터는 혼자 다 하는 것 같다.
내가 운이 좋은 것 같다. 나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작품을 만나길 기다린다. 기왕이면 매번 조금씩 이라도 다르고 싶다. 그러면서도 주체성도 있으면 좋겠고, 그렇게 하다 보면 만나지기가 쉽지 않은데 내가 ‘워킹걸’ VIP 시사회를 보고 정말 행복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가 많이 없는데, 너무 복이 많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 영화 배경이 성인용품점이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나.
시나리오 자체가 설정들이 귀여웠다. 정범식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구체적인 계획들을 보여주더라. 성인용품점을 밝고 따뜻하고 러블리하게 가고 싶다고 하더라. 소재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노출은 내가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충분히 받아들여지니까 한 것이다. 과감하다,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 사람들의 생각이다. 행보의 내용을 읽어주고 작품이 들어오는 것이라면 너무 좋다.
- 촬영을 하면서 민망한 순간은 없었는가.
과한 것이 영화의 설정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아주 현실적으로 쫙 붙는다. 초반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있어라는 설정이다. 엄마가 이런 엄마가 어디 있고, 아랫집에 이런 여자가 어디 있어 이런 설정이다. 톤앤매너라서 과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민망하지도 않았다. 과하게 설정을 가자라고 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생각하기 나름이었던 것 같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이건 영화다고 생각했다.
- 최근 남남 케미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워킹걸'은 여여케미다. 클라라와 호흡은 어땠나.
영화 보면 다 안다. 숨길 수가 없다. 서로 하는 게 보희, 난희로 재밌어서 하는지 눈동자에 숨겨지지 않는다. 열정이 있고, 그 친구고 막 같이 합심해서 만들어내고 아이디어를 내고 연습을 하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친구다. 즐겁게 작업했다,
- ‘방자전’과 ‘후궁’ 모두 다른 캐릭터였지만, 대중들에게는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워킹걸’의 메시지와도 닿아있는 것 같다.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직업이 동반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맞서서 일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여배우의 선입견과 편견을 동반하고 일을 한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해서 성인용품 사업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온 것 같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정말 좋았다. 거창하게 맞서서 싸우겠다는 게 아니다. 이왕 기왕 그럴 거, 고되고 힘든 일, 이왕이면 즐기면서 주체적이면 더 좋지 않을까. 똑같은 시간인데, 그런 것 같다.
- 그런 선입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가.
선입견에 대한 ‘워킹걸’에서도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라 건강하고 밝고 떳떳하자는 것이다. 나도 여배우로서 그 선입견에 대한 것을 깨고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직업이 동반하는 그런 것이다.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는 그런 것 같다. (선입견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실체가 아니라 그냥 말이다. 실체가 없는 것에는 무딘 편인 것 같다. 나는 작업을 했고, 좋은 결과물이 나왔고, 한 사람이라도 그 영화를 본 사람이 ‘아. 그렇구나. 저런 배우구나’ 라고 생각해주면 된 것 같다.
-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않았을 것 같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갑자기 생각이 변한 것 같진 않고, 배우다 보니 ‘내가 저 사람이라면’ 식으로 바꿔서 상상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저 사람의 하루라면 어떨까.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배우라서 특수한 직업이다 보니 그렇게 보이겠지만 어떤 직업도 다 같은 것이다. 인간 군상이랄까. 어떤 조직을 가도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다 똑같더라. 단지 배우는 대중이 보기에 특별해 보이니까, 더 뭔가 많이 짊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작품을 제안하는 누군가는 그런 위주의 작품이 제안될수 있다는 우려가 생길법도 하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신경을 안 쓴 다기 보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하는 성격이다. 그런 우려도 그럼 어쩔 수 없지, 날 그렇게 생각하다니 난 아닌데. 인연이라면 다 하게 돼 있는 것 같다. 맞서 싸우고 그런 성격이 못 된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파도를 잘 타고 가면서 그렇게 둥둥 떠다니는 성격이다. 내가 최선을 다 했다면, 더 할 것이 없다면 나머지는 맡기는 것 같다.
- 계속해서 변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계획적인 건가.
계획하고 의도한 것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배우는 그렇다. 선택 받는 입장이라서. ‘방자전’과 ‘후궁’, ‘인간중독’에서 ‘워킹걸’로 이어진 게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캐릭터를 계속 할 수도 있었는데, 만날 수도 있었는데, 사실 누가 보기엔 계획을 해서 쭉쭉 매번 다르게 보인다고 하지만, 나와 회사 입장에서는 매번 안개 속이다. 계획돼 있지 않다. 그런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내가 가장 궁금하다. 내가 다음엔 뭐할까가 가장 궁금하다.
[배우 조여정.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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