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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감독 하정우를 만났다. 영화 ‘허삼관’에서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하정우. 그 중 연출자에게 물었다. 지난 2013년 영화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신인감독 하정우에게 묻고 감독 하정우로 답했다.
영화 ‘허삼관’은 하정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두 번째 만에 대작을 만났다. 제작비도 제작비였지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잘해도 본전이었고, 못하면 쓴 소리를 들어야 한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하정우 감독은 자신만의 색채로 ‘허삼관’을 만들어냈다.
하정우 감독이 처음부터 ‘허삼관’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제안을 받은 첫 감독도 아니었다. 먼저 출연을 제안 받았고, 그 후 감독 제안이었다. “네가 감독까지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을 때 “심장이 뛰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감독까지 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허삼관’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는데, 감독이 없었다. 연출자를 잡는 게 힘들었다. 나도 감독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어렵더라. 다들 다른 작품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연출 제의를 받았고, 심장이 뛰었다. 감독까지 할 수 있었던 힘은 허삼관이라는 이물이었다. 매력적이었고 영화적이고 결이 좋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허삼관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 후엔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영화화하기 위해 다양한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고, 탐구했다. 영화 속에 수많은 등장인물을 배치시켜서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를 커버했다. 그렇게 하정우 감독은 ‘허삼관 매혈기’를 ‘허삼관’으로 바꿔 나갔다.
“인물을 배치시킨 후 할 일은 시대적 배경이었다. 6·25 직후, 50년대와 60년대가 국내 영화에서 표현된 적이 없었다. 미군이 남겨둔 잔재가 있었고, 계속해서 올라왔던 한국의 문화적 양식들이 믹스매치가 되면서 영화적인 재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판타지를 넣어서 우화적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화적인 부분은 위화의 문어체적인 말투를 자연스럽게 조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정우 감독은 위화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어체를 흥미로워했다. 이것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배우들의 대사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말투였지만 판타지와 동화적인 분위기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도리어 연극적으로 변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 하정우 감독의 설명이었다.
사실 ‘롤러코스터’를 연출 했을 당시 하정우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당시 ‘군도: 민란의 시대’ 촬영에 한창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하정우는 언제부터 감독에 관심이 있었을까. 연기자로 승승장구 하고 있었고, 충분히 바쁜 일정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돌 급 스케줄’이라고 했다.
“감독에 대한 생각은 초등 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고 그런 배우, 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는 이야기와 코미디, 본인이 직접 연기도 하는 것.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꿈꿨다. 배우에 먼저 무게가 실려 연극을 전공했고 연기자가 됐다. 배우를 하면서도 감독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는 몰랐다.”
사실 감독 하정우가 탄생한 것은 배우 하정우의 발전도 한 몫 했다. 영화 ‘베를린’을 끝낸 뒤 ‘더 테러 라이브’에 들어가기 전까지 5개월의 시간이 생겼다. 배우로 데뷔한 후 처음으로 생긴 긴 공백이었다. ‘잘’ 쓰고 싶었단다. 처음 맞이하는 긴 공백을 아주 잘 쓰고 싶었단다.
“당시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내 연기의 질이 떨어지고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무엇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천천히 생각하니 감독의 의도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배우는 무엇이고 영화가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의문이 생겼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서 영화를 찍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 하정우와 감독 하정우. 연출을 하면서 연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감독과 배우의 괴리가 올수도 있다. 하정우는 직접 연출까지 하면서 충돌한 적은 없었을까. 답변은 “없었다”였다. 연기를 할 때는 연기에만 집중을 했다. 충돌보다는 해소된 것들이 많아 보였다. 시나리오로만 보다가 몸으로 연기를 해보니 더 명확해졌다. 철저하게 연출자의 입장에서 봤고, 영화 전체 분량의 40%를 미리 찍어봤다. 대역 배우를 시켜 감독의 눈으로 봤단다.
‘롤러코스터’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었지만 연출과 출연을 동시에 한 것은 처음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의 입장을 알게 됐다면 이번 작품으로는 무엇을 얻었을까. 동시에 했을 때 좀 더 유리하기도 했을 테고,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분명이 장단이 존재했다.
“배우 하정우는 감독 하정우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테이크를 여러 번 갈수 있다. 또 헌팅을 가서 바로 연기를 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팀워크도 좋았다. 내가 바쁘게 왔다갔다 움직이니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더라. 충돌되는 부분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단점이라고 하면 나 역시도 배우이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게 혹독하게 하지 못하겠더라.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나 역시 고통을 받는다. 또 쉬는 날이 없다. 내 촬영이 끝나도 회의의 연속이었다. 내 생활이라는 것이 없었다.”
배우들은 자신의 출연한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부담을 갖고 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깊숙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를 일이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연출을 하면서 한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부담이 있다. 배우와 연출자는 각기 다른 부담을 가지고 있고, 각기 다른 무게와 느낌일 것이다.
“사실 부담이라는 게 새삼스럽진 않다. 내가 지금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쩌면 부담감이 크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부담감에 익숙해졌다. 덤덤하다. 그런데 낯선 것은 있다. VIP 시사회를 했는데 어색했다. 배우 하정우는 그런 자리가 익숙한데 감독 하정우는 아니다. 이상하고 낯설었다. 엄청 어색했다. 하하.”
감독 하정우는 어떤 모습일까. 하정우는 “감독은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확정된 느낌”이라고 했다. 과거에 ‘대부’나 ‘노팅힐’을 봤을 때 ‘어떤 역할이 하고 싶다. 어떤 감독이 할까’였다면, 감독일 때는 “내가 개발해서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행복한 감독 하정우의 생각이었다.
[하정우 감독, 영화 '허삼관' 현장 스틸.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NEW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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