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호주 시드니 안경남 기자] 55년의 기다림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졌다. 내용이 좋지 못해도 승리를 가져갔던 이전과는 또 다른 결과였다. 이래서 축구는 어렵다. 우승에는 하늘의 뜻이 아주 많이 필요한가보다. 전술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경기였다. 특히 한국의 포지션 파괴는 상상을 뛰어 넘었다. 조별리그까지 같은 포메이션 비슷한 전형을 유지했던 팀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만큼 승리에 대한 선수들의 의지는 강했다. 하지만 의도된 변화가 아닌 상황에 따른 즉흥적인 변화가 가진 한계는 분명했다. 센터백 곽태휘의 원톱 배치는 신선했지만 그걸로 우승을 가져오기에는 아주 조금, 부족했다.
● 박주호 시프트
시작부터 파격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박주호를 왼쪽 윙포워드로 배치했다. 그리고 박주호가 빠진 자리에는 장현수가 들어가 기성용과 짝을 이뤘다. 크게 두 가지를 노린 변화였다. 첫째, 박주호로 하여금 호주의 주된 공격 루트인 측면 크로스를 사전에 차단하고 둘째, 장현수를 통해 호주의 제공권을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슈틸리케는 박주호 시프트에 대해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호주를 철저히 분석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측면에 공격수를 두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호주는 풀백들이 위력적이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박주호의 윙포워드 기용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수비는 안정감을 가졌지만 공격의 세기는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은 전반 37분과 38분 손흥민이 두 차례 찬스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이근호가 있을 때보다 수비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여기에 박주호의 이동으로 세긴 중앙의 균열도 문제가 됐다. 그동안 중원에선 박주호가 왼쪽 지역을 맡고 기성용이 중앙 또는 오른쪽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장현수가 들어오면서 왼쪽은 기성용이 서고 오른쪽은 장현수가 맡았다. 박주호가 있을 때는 호주의 루옹고를 견제하기 수월했다. 루옹고는 주로 오른쪽 측면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박주호와 활동범위가 겹친다. 지난 조별리그 3차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성용은 다르다. 전반 45분 루옹고의 선제골은 그러한 작은 변화에서 오는 불균형에 의한 실점이었다.
● 곽태휘 원톱 배치
양 팀은 약속이라도 한 듯 후반 19분이 되어서야 첫 교체 카드를 꺼냈다. 한국은 남태희를 빼고 이근호를 투입했고, 호주는 케이힐을 불러들이고 주리치가 들어갔다. 이때부터 한국의 도전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7분 뒤 박주호 대신 한국영을 내보내며 기성용을 전진시켰다. 손흥민은 왼쪽으로 돌아왔고 이근호가 오른쪽에 섰다. 그러나 한국의 골은 쉽게 나오질 않았다. 결국 슈틸리케는 후반 42분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쥐가 난 이정협을 불러들이고 김주영을 투입한 뒤 센터백 곽태휘를 최전방으로 올렸다. 과감한 변화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대처이기도 했다. 이정협은 이번 대표팀에서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유일한 원톱이다. 때문에 그가 빠지면 전방에서 높이를 제공한 공격수가 사실상 전무했다. 곽태휘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어쨌든 곽태휘의 전진은 손흥민의 극적인 동점골을 이끈 시발점이 됐다. 후반 추가시간 김영권이 길게 찬 볼을 곽태휘가 헤딩 경합으로 떨궈줬고 이것이 손흥민에서 한국영 그리고 기성용에서 다시 손흥민의 왼발 슛으로 연결되며 호주의 골망을 흔들었다.
● 김진수의 눈물
연장전의 흐름은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았다. 양 팀 모두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고 교체 카드를 다 쓴 상태였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도 어려웠다. 승패는 실수에서 갈렸다. 연장 전반 막판 김진수가 골라인에서 주리치가 잡은 볼을 끈질기게 붙어 뺏으려 했다. 하지만 주리치가 힘으로 버텼고 결국 김진수 가랑이 사이로 볼을 뺀 뒤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손흥민이 뒤늦게 가담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김진현이 가까스로 크로스를 쳐내는 듯 했지만 앞으로 흐른 볼이 트로이시 앞에 떨어졌고 그의 슛은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다시 한국은 골이 필요했다. 그러나 변화를 줄 카드는 이미 다 떨어진 뒤였다. 설상가상 장현수마저 쥐가 나면서 정상적인 운영조차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러나 슈틸리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막판에는 김영권까지 미드필더로 올리며 가진 자원 안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한국의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고 경기는 그대로 호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에필로그] 25일간의 호주 아시안컵 출장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솔직히 슈틸리케호를 바라보는 기자의 첫 시선은 물음표였다. 부상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과정에서 매 경기 7명씩 선발이 바뀌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대표팀은 불안함으로 가득 차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물음표는 서서히 느낌표로 바뀌었다. 선수들은 투혼을 발휘했고 결승에 가서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27년 만에 찾아 온 한국의 메이저대회 결승 무대가 주는 웅장함은, 직접 느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전해줬다. 이제 그 추억을 가슴에 안고 기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래픽·사진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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