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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유하 감독이 다시 한 번 진득한 청춘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에 이어 그의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이기도 한 '강남1970'으로 청춘들의 꿈과 의리, 배신 등을 그려낸 것.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 시킨 유하 감독은 '거리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비열한 거리' 이후 '강남 1970'을 선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쌍화점', '하울링'을 연출하긴 했지만 그의 '거리 3부작' 중 두 번재 작품인 '비열한 거리'에 이어 '강남 1970'을 개봉하기까지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유하 감독은 '액션의 강도나 주인공 캐릭터들이 전작에 못 미친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3편을 선보이기까지 일부러 시간을 끌어온 부분도 있다"며 그간의 부담감을 내비쳤다.
이어 "'비열한 거리' 때도 댓글 중 '또 조폭영화야?'라는 게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정말 스트레스였다. 갱스터 무비를 통한 내적 주제가 있는데 또 조폭영화냐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것 같았다. 그런 부분이 부담이 돼 오래 끌고 온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조폭 장르에 대한 반감이 있다. 그게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유하 감독이 다시 길 위의 청춘, 몸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강남 1970'을 통해 다시 선보이게 된 건 "이 영화는 조폭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폭이 된 주인공이 있을 뿐 조폭 자체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이런 그에게 힘을 실어준 인물이 바로 이민호와 김래원이다. 이민호와 김래원은 각각 호적도 제대로 없는 고아로,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친형제처럼 살던 종대와 용기로 분해 유하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서글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처절하게 표현해 냈다.
하지만 그동안 재벌 2세, 꽃미남 등을 연기해왔던 이민호를 밑바닥 인생 종대로 캐스팅하다니 의외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가 기존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등을 통해 기존 이미지와 또 다른 배우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만든 유하 감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유하 감독은 "내가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요즘 누가 핫한지를 잘 모른다. 조인성 씨도 아내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고 조인성 씨가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며 추천을 했다. 아내가 배우를 보는 안목이 있는 것 같다. 이민호 씨는 아내가 드라마 '신의'를 본 뒤 오히려 영화배우가 되면 좋은 마스크라며 눈여겨보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2년 동안 들었다. 사실 권상우도 그렇고 조인성도 그렇고, 그 전 역할과 다른 탈바꿈을 하며 관객에게 변신의 쾌감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영화배우로 자리 잡은 배우보다는 그 쪽에 열망이 있거나 가능성이 큰 배우를 선택하면 어떨까 생각하다 이민호 씨를 캐스팅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래원의 경우 유하 감독이 믿고 맡긴 인물. 워낙 영화에서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 냈던 배우인 만큼 유하 감독의 걱정 역시 크지 않았다. 실제 유하 감독은 "내가 특별히 더 칭찬을 안 하더라도 관객들이 평가해줄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김래원에 대한 믿음을 내비쳤다.
이 두 배우가 상처 입은 한 마리 야수처럼 '권력이 소비한 폭력'과 마주하는 싸우는 장면이 바로 '강남 1970'의 백미기도 한 무덤 액션신이다. 이 장면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옥상 액션, '비열한 거리'의 굴다리 액션에 이어 '거리 3부작'의 정점을 찍을 만한 액션신으로 완성됐다.
유하 감독은 "내 영화가 감정의 폭발이 액션의 수위로 드러나게 되는데 무덤 액션이 감정의 폭발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 신이 굉장히 처절하면서 불쌍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흙탕은 비를 뿌리다 보니 진흙탕이 된 거고 사실 무덤 액션신이 맞다. 공동묘지 액션을 해보고 싶었다. 땅에 대한 엘도라도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핏빛 황토 땅 위에서 땅에 대한 욕망, 삶에 대한 욕망 이런 것들이 다 부딪히는 거대한 살육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무덤 액션이 잔인하게 됐다. 폭력적인 70년대에 대한 은유로서 그런 장면들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게 무덤 액션으로 물질화가 됐다"고 부연 설명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악.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에서 '원 썸머 나잇'(One summer night), '땡벌' 등의 음악을 통해 스토리와 정서 등을 한 번에 녹여낸 바 있다.
유하 감독은 "가장 그 시대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부분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최단기간 70년대로 빨리 돌려보낼 수 있다. 그래서 저작권료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 유행했던 노래 중 주제와 부합하는 노래를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강남 1970'에는 혜은이의 '제 3 한강교',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FreddieAguilar)의 '아낙'(Anak) 등이 삽입돼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만든다.
그는 "예전에 '말죽거리 잔혹사'가 끝나고 폭력과 청춘이 뒤엉킨 걸 3부작 정도 해보겠다고 했는데 계속 그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부담이 많이 됐다. 어느 정도 끝낸 느낌이라고 할까. 앞으로 새로운 영화를 찍고 싶은데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강남 1970'의 의미에 대해 전했다.
또 "이제는 밝은 영화를 찍고 싶다. 개인적으로 범죄와 욕망 이런 것들이 뒤엉킨 영화를 찍다 보니 나 스스로도 하드보일드 해지고 터프해지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암울해졌다. 이런 영화를 찍다 보면 감독도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이제는 좀 더 밝은 영화, 희망적인 영화를 찍어봐야겠다"고 말해 앞으로 그가 선보일 또 다른 장르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유하 감독은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기다려온 멜로 장르에도 다시 도전하고픈 뜻을 내비쳤다. 젊었을 때 느꼈던 떨림이라든지 사랑의 감정들, 이런 것들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결혼을 미친 짓이다' 같은 대본을 쓸 수 있다면 과감하게 다시 멜로영화 작업해 보고 싶다고. 로맨틱 코미디 역시 그가 해보고픈 장르다.
마지막으로 유하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나 원작이 탄탄한 작품을 영화화 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유하 감독은 "내가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찍는다는 게 소문이 나서 시나리오가 잘 안 들어온다"며 "이번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좋은 시나리오나 좋은 원작이 있으면 받고 싶다. 감독이라는 직업도 프로야구 선수처럼 타석에 징검다리로 들어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만드는 게 직업인 감독인데 3~4년에 한 편씩 만든다는 게 소모적인 것 같다. 좀 더 프로 연출자로서 열심히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한편 유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강남 1970'은 일확천금이 가능했던 격동과 낭만의 시대인 1970년, 권력과 폭력이 공생하는 강남이권다툼의 최전선에서 성공을 향한 욕망을 좇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입에도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200만 관객 돌파를 향해 순항 중이다.
[유하 감독.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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