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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 야구는 홈을 떠나 홈으로 들어오는 게임이다. 홈플레이트를 출발해 1루, 2루, 3루를 거쳐 다시 홈을 밟아야 득점이 인정된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재일동포 야구선수단이 32년 만에 모국의 홈 그라운드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들도 야구처럼, 홈으로 돌아온다.
2007년 재일조선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로 전국 10만 관객을 동원했던 김명준 감독에게 재일동포 야구선수의 삶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620여명의 야구선수들이 한국야구사에서 잊혀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서 재일동포의 청춘의 열정을 되살리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다.
1982년 봉황대기 결승에 올라 군산상고와 맞붙었던 재일동포 멤버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꼼꼼한 자료 수집과 폭넓은 인터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재일동포 야구단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당시 게임에 참여했던 소감을 비롯해 소녀팬들의 응원부터 서울 시내 관광에 이르기까지 선수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추억의 한 자락이 하나 둘 씩 풀어질 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게 만든다.
프로젝트의 시작, 첫 만남, 82년 멤버의 동창회 모임, 군사독재 시절 배수찬 선수의 숨겨진 비화와 ‘야신’ 김성근 감독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 그리고 모국 방문으로 이어지는 전개를 각각 배터박스, 1루, 2루, 3루, 홈베이스로 구성한 이야기 전개도 신선하다. 관객은 타자가 되어 같은 코스를 밟으며 돌아오는 느낌을 받는다. 야구의 룰은 인생의 굴곡과 닮았다.
쉰 살에 가까운 재일동포 선수들의 열정을 되살려내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다보면 한민족의 뼈아픈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디아스포라(이산민족)다. 일제 강점기와 분단으로 귀국하지 못해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동포 2세는 일본에서 차별받고, 한국에선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어찌 아픔과 설움이 없었겠는가. 영화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경계인의 삶을 끌어안는다. 김명준 감독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의 적절한 강약조절로 풀어나간다.
재일동포 선수단은 1956년부터 1997년 IMF 경제위기가 닥치기 직전까지 42년간 해마다 모국의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동안 74년, 82년, 84년 봉황대기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그들에게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우승컵을 바치는 영화다.
19일 개봉.
[사진 = 인디스토리 제공]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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