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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노출이 연기보다 중요한 걸까. 영화 '화장'이 공개된 후 배우 김호정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연기에 대한 평가는 없다. 그가 '어떻게 연기를 했나' 보다는 '얼마만큼 노출을 했나'에 관심이 쏠려있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장'은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 놓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호정이 암 투병 중인 아내, 안성기가 그의 남편 오상무, 김규리가 젊은 여자 추은주 역을 맡았다.
이 작품에는 남성 관객들도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오상무가 속옷에 대변을 본 아내의 몸을 씻기는 장면.
오상무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를 씻기려고 하지만 아내는 수치심과 미안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간병인이 오면 씻겠다고 말한다. 오상무가 이런 아내를 씻기지만 곧 낙담한다. 다 씻긴 후 욕실에서 나오기 위해 몸을 들어 올리는데 아내가 "또 나왔다"고 말한 것. 아내는 남편에게 미안하다며 오열한다.
이 장면이 바로 가십거리가 된 노출신이다. 속옷을 벗긴 채 씻기는 만큼 노출은 자연스러운 일. 사실감을 중시하는 임권택 감독은 김호정에게 반신이 아닌 전신 촬영을 요청했고, 김호정은 몇 시간의 고심 끝에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디테일한 부분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소설과 영화 모두 등장하는 이 장면에는 두 사람이 처한 현실, 오랜 투병생활 중인 아내에게 지칠 수밖에 없는 오상무, 미안하고 수치스러울 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운 아내의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그 만큼 배우와 관객의 감정이 한꺼번에 요동치는 신이기도 하다. 또 이 신이 가지고 있는 의미, 배우들의 열연 등을 생각한다면 노출로만 치부되기 아까운 신이기도 하다.
김호정은 꼭 필요했던 노출을 감행하며 활자에 갇혀 있는 아내라는 캐릭터를 영화 속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오상무가 젊은 여자에게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하는 소설 속 아내는 김호정의 몸을 빌어 관객들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인물로 재탄생됐다. 이는 김호정의 용기 있는 결단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10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장'이 공개된 후 김호정은 호된 스크린 복귀식을 치렀다. 특별출연으로 얼굴을 비췄던 '로니를 찾아서'를 제외하면 지난 2007년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영화였지만 '노출', '투병'만이 주목 받았다. 욕탕신의 노출, 연기의 밑바탕이 된 과거 투병 경험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외설적인 면이 부각돼 재생산됐다.
이후 5개월이 지났다. 상황은 그대로다. 지난 17일 '화장' 시사회가 진행된 후 김호정은 다시 부산에서의 일을 겪었다. 5개월 전보다 단어의 수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라노출, 전신노출 등의 단어로 가십의 대상이 됐다. 한 여배우의 의미 있는 도전이 단지 노출로만 치부되는 상황, 열연이 외설로 묻혀버리는 상황이 안타깝다.
[영화 '화장' 스틸. 사진 = 명필름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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