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2014년 10월 초. 한국농구에 낭보가 전해졌다. 남녀농구대표팀이 인천 아시안게임서 잇따라 정상에 올랐다. 홈 어드벤티지는 거의 없었다. 필리핀, 이란 등 난적을 잇따라 격파한 유재학호의 저력은 농구 팬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프로농구 시즌을 1주일 앞둔 시점의 경사. 분명 2014-2015시즌은 장밋빛 기대로 가득했다.
그러나 시즌이 돌입하자 팬들이 등을 돌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KBL은 갖가지 문제점을 노출하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급기야 울산과 원주를 오갔던 챔피언결정전서는 관중석에 KBL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까지 걸렸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논란만 덮으려는 데 급급한 KBL 수뇌부들의 태도에 농구 팬들의 반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역대 KBL 총재 치고 열렬한 지지를 받은 케이스도 없었지만, 김영기 총재를 향한 좋지 않은 여론은 심각한 수준이다.
▲길 잃은 KBL
시즌 전 KBL은 FIBA룰 도입을 선언했다. 몸싸움을 완화하고 재미있는 농구를 선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국제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 1라운드서 명승부가 속출했다. 여전히 애매한 판정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라운드 막판부터 서서히 예전으로 회귀했다. 볼 없는 지역에서 약간의 접촉만 나와도 휘슬이 불렸다. 팽팽한 흐름이 끊어지면서 농구의 재미가 반감됐다. 또 올 시즌 도입한 U1 파울에 대한 기준이 심판마다 불명확했다. 갑작스러운 도입에 따른 부작용. 결국 판정에 대한 현장의 불만은 시즌 중반 이후 극대화됐다. 몇 차례 결정적 오심도 터졌다. 한국농구 경쟁력을 갉아먹는 몸싸움에 민감한 휘슬, 일관성이 떨어지는 판정 등 병폐는 여전했다. KBL은 부랴부랴 시즌 막판 비디오판독을 확대했지만, 심판 수준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외국인선수제도는 시즌 내내 논란거리였다. 하나는 내년부터 외국인선수 2인제와 장, 단신제 부활, 또 하나는 3년 이상 보유 불가능. 장, 단신제 부활은 한국농구의 뿌리를 뒤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KBL은 단신제를 부활하면 과거 제럴드 워커 같은 테크니션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 맥도웰형 언더사이즈 빅맨이 판을 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게 KBL 역사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 수비전술 발달로 단신 테크니션이 통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게 대다수 지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외국인 빅맨 두 사람이 2,4쿼터에 한해 동시에 투입될 경우 승부처에서 외국인선수들간의 골밑 매치업으로 승부가 갈리고, 국내선수들은 외곽에서 들러리 역할을 할 게 뻔하다. 흥미도 떨어질뿐더러, 그런 환경에선 제2의 함지훈, 제2의 김종규는 더 이상 탄생할 수 없게 된다.
외국인선수 보유한도 3년제한의 경우 외국인 프랜차이즈 스타 탄생을 근본적으로 막는 제도. 전자랜드와 리카르도 포웰의 끈끈한 관계가 6강, 4강 플레이오프 내내 화제였다. 하지만, 현 시스템에서 전자랜드와 포웰 같은 인연을 다시 만들어내긴 힘들다.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KBL에 3년 보유한도 제한은 엄청난 규제다. 확실히 KBL은 전통 계승과 볼거리 유도에 약하다. 시즌 도중 주희정과 김주성의 대기록 의미를 충분히 짚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KBL은 강 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했다. 특별상 시상 기준도 인색했다.
챔피언결정전서는 평일 5시 경기 편성이 팬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KBL은 공중파 중계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포스트시즌의 꽃이라는 챔피언결정전 평일 2차전 팁오프 시각을 7시가 아닌 5시로 결정했다. 그나마 농구에 관심 있는 팬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처사. 평일 5시 공중파 중계는 TV 시청률도, 현장 관중 유치도 실패한 최악의 한 수였다. 결국 챔피언결정전서 흥분한 팬들의 플래카드 시위가 벌어졌다. KBL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3차전서는 기록계시원이 도중에 퇴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원칙적으로 볼 데드가 돼야 작전타임과 선수교체를 시도할 수 있는데, 그 시점이 워낙 찰나처럼 짧아 ‘실점하면 타임아웃’식의 조건부 작전타임이 허용돼왔다. 문제는 조건부 타임아웃을 허용하지 않는 경기감독관도, 허용하는 감독관도 있었다는 점. KBL은 이후 급하게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4차전을 앞두고 “명확한 기준을 전달받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했다.
▲KBL부터 바로서라
가장 큰 문제는 KBL 수뇌부가 여론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 한국농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특히 김영기 총재는 농구 팬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사고 있다. 그저 자신의 생각만을 밀어붙이기만 하는 모양새. KBL 내부에서 충언을 하는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KBL 수뇌부는 어떤 사태만 발생하면 그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 강구보다는 직원들을 앞세워 그 사태를 덮는 데만 급급했다. 농구 흥행과 한국농구의 국제경쟁력, 한국농구의 미래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선 한국농구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농구관계자의 안타까운 지적.
KBL은 지금이라도 바로서야 한다. 여전히 KBL엔 좋은 지도자, 좋은 선수들이 있고, 그렇게 좋지 않은 일이 많았는데도 여전히 비판을 하며 관심을 갖는 팬들도 남아있다. 달리 말해 일말의 회생 가능성은 남아있다. 결국 KBL 김영기 총재를 비롯한 수뇌부들이 각종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한국농구의 흥행과 발전을 위해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해답이다. 이를 위해선 KBL의 전반적인 시스템부터 재점검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지금 농구 팬들은 KBL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다.
[KBL 비판 플래카드(위, 가운데), 김영기 총재(아래). 사진 = 원주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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