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참 오래 걸렸다. 1군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이버 선수'라는 별명까지 얻은 잭 한나한. 그가 드디어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 첫선을 보였다. 유니폼과 연습복 모두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첫인상에서 프로다움이 느껴졌다.
한나한은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막판 근육통에 시달렸다. 생각보다 회복 속도가 느렸다. 시범경기는 고사하고 정규시즌 개막에도 맞추지 못했다. 양상문 LG 감독은 한나한을 6번 타자감으로 생각했는데, 이 계획은 틀어진 지 오래였다. 브렛 필(KIA 타이거즈), 짐 아두치(롯데 자이언츠) 등이 맹타를 휘두르는 상황, LG는 외국인 타자 없이 경기에 임해야 했다. 최근에는 7연패에 빠지는 바람에 분위기 반전이 절실했다.
결국 한나한은 전날(7일) 전격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당초 퓨처스리그서 10경기 정도 뛰고 올라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곧바로 실전에 나섰다. 엔트리에 등록되자마자 잠실 두산전에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양 감독은 "한나한이 준비가 됐다고 했고, 본인의 합류 의지가 강했다. 2군 경기를 뛰고 올라오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조언했다"고 설명했다.
한나한은 경기에 앞서 타격 훈련을 소화했다. 번트 연습도 병행했다. 밀어친 타구의 질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수비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절반만 보여준 셈이다. 양 감독은 "지명타자부터 천천히 끌어올려야 한다. 바로 3루수로 쓸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언제부터 수비에 나설 수 있을지 딱 잘라서 말하긴 무리가 있다. 뛰는 것도 70~80% 정도"라고 설명했다.
경기 전 한나한을 만났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첫날부터 관심이 집중되는 게 부담스러울 법했지만 프로답게, 소신껏 앞으로의 각오를 전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시즌 초반 준비기간이 너무 길어졌다"며 "빨리 와서 팀 승리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연습경기가 끝난 뒤 준비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재활 중에도 동료들의 경기를 챙겨 봤단다. 그는 "매일 밤(Every night) 경기를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7연패 중이지만 야구에서는 터닝포인트가 생기면 7연승도 가능하다. 이것이 야구다. 한 경기 잘 잡으면 된다. 팀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나한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신시내티 레즈 시절 추신수(현 텍사스 레인저스)의 동료로 관심을 끌었다. 당시 추신수가 빈볼에 맞아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가 한나한이다. 그는 "한국에 처음 오는데, 추신수와 연락하면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한국 야구에 대해 듣긴 했지만 직접 와서 체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야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험을 통해 하나씩 만들어 나가겠다는 한나한이다.
그는 "최선을 다하겠다(Try to do my best"라는 말을 자주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팀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말. '태업설'을 일축한 한 마디였다. 그는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게 첫 번째인데, 내가 아무리 잘해도 팀이 질 수 있다"면서 "상황에 따른 플레이를 하겠다. 볼넷을 고르거나 참고 기다리거나, 때론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루가 필요할 때,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려야 할 때, 한 방이 필요할 때 뭔가 해내고 싶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일단 첫날 성적은 4타수 1안타 1득점. 득점권에서 삼진으로 물러난 것, 연장 10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3-6-1 병살타로 돌아선 게 아쉬웠다. 하지만 팀이 3-3 동점을 만든 4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떨어지는 변화구를 골라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이는 KBO리그 첫 득점으로 이어졌다. 6회초에는 다소 생소할 법한 사이드암 투수 양현을 상대로 안타를 뽑아냈다. 희망과 과제를 모두 남겼다. 어찌 됐든 뭔가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건 다행스럽다.
한나한이 '사이버 선수'가 아닌 진짜 프로로서, KBO리그에 첫발을 내디뎠다. 앞으로의 행보를 한 번 주목해 보자.
[LG 트윈스 잭 한나한. 사진 = 마이데일리 DB]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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