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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14일(현지시간) 숨을 거둔 비비 킹은 생전에 ‘블루스의 레전드’로 평가 받았다. 앨버트 킹, 프레디 킹과 함께 블루스 기타계의 ‘쓰리킹’으로 불렸던 그는 기타 뿐만 아니라 보컬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1925년 미국 미시시피주 인디애놀라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농장에서 일당 35센트를 받으며 일할 정도로 힘든 시절을 겪었다. 한번도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인들의 기타 주법과 화음 등을 독학했다.
1946년 멤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하던 중 ‘블루스 보이(Blues Boy)’라는 뜻의 ‘비비’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1949년 싱글 ‘미스 마서 킹(Miss Martha King)’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비비 킹은 1952년 싱글 ‘쓰리 어클락 블루스(Three O’Clock Blues)’로 미국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에 올랐다. 이후 ‘유 업셋 미 베이비(You Upset Me Baby)’ (1954년), ‘스위트 식스틴(Sweet Sixteen)’(1960년) 등의 싱글을 연속 히트시키며 블루스 가수 및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96년 펴낸 자서전에서 “내 기타연주가 사람의 감성에 연결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블루스의 거장’ 에릭 클랩튼을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비비 킹을 존경했다. 부시 대통령은 “존 레넌도 비비킹처럼 기타를 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2012년에는 비비 킹이 연주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김성대 음악평론가는 “그는 기타 문법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훌륭한 기타리스트였다”면서 “블루스 뿐 아니라 60년대 록 뮤지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비비 킹의 대표곡 중 하나는 ‘The thrill is gone’이었다. ‘BB King is gone’. 그는 세상을 블루스로 적시고 떠났다.
[비비 킹,사진 = AFP BB NEWS 제공]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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