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배우 김강우는 여유롭다. 흥행배우라는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난 2002년 영화 '해안선'을 시작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다양한 장르에서 소신있는 연기를 펼쳤다.
특히 이번 영화 '간신'(감독 민규동)은 그에게 도전과도 같았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모양새다. 극중 파멸의 끝을 달리는 폭군 연산군 역의 김강우는 핏빛 불안감이 서려있는 연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 "연산군 役, 현장에서 많이 외로웠고 힘들었다"
김강우는 폭군 캐릭터에 대해 "연산군이 하는 행동들이 역사적 사실에 베이스를 깔고 있어서, 현실은 더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며 사실에 입각한 캐릭터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극에서 표현된 연산군은 그 어느 작품에서도 보기 힘든 폭군의 모습이었지만, 실상 역사 속 연산군의 행보는 더 극악무도했다.
"연기를 하다보면 감정들을 계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간신' 연산군 캐릭터는 마음 속에 계산하는 순간 지는 거예요. 벌써 14년차 배우 생활을 하는데 이 캐릭터는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버리고 연기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카메라 감독님에게도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까 염두에 둬 달라'고 부탁하면서 촬영에 임했어요."
그는 촬영 전 민규동 감독과 치밀한 사전 회의를 거쳐 장면을 만든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 연산군을 표현하는 김강우의 감정은 돌발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 극중 임숭재(주지훈)와 탈춤을 추며 죽여달라고 소리치는데, 옷을 찢는 장면 또한 김강우의 애드리브였다. 망령들 속에 갇힌 연산군의 광기를, 김강우는 옷을 찢는 것으로 표현했고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결핍과 폭군으로서의 모습, 연산군은 정상인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저도 많이 외로우려고 했고 일부러 혼자 있기도 했어요. 사실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눌 힘도 없을 만큼 연기에 오롯이 표현했어요. 그런 점에서 많이 힘들고 지쳤죠."
▲ "왕 역할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하필…"
김강우는 과거 편안히 의자에 앉아 위엄을 보일 수 있는 왕 역할을 맡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간신'에서 왕 역할이었지만 후대에 폭군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연산군 캐릭터를 맡게 됐고 아이러니하게도 의자 위에 편안히 앉는 역할이 아닌 터라 왕의 타이틀만 갖고 있는 왕이었다.
"왕 역할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하필이면 연산군이라 그 누구보다도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닌 왕이었죠. 그런데 앞서 연산군을 다뤘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차별성을 둬야했고 그래서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왕으로 표현, 미술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캐릭터로 그렸어요."
김강우는 연산군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12월 촬영 동안 체중을 10kg 찌우고 철저히 외로움 속에 살았다. 또 촬영장을 오가며 클래식과 록·힙합 음악을 들어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 힘들었겠다고 묻자 "그래도 시원하게 내지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며 초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왕 역할에 집중을 하려고 했어요. 다른 때와 달리, 이번 연산군 캐릭터는 집중하지 않으면 다른 인물에 영향을 많이 받는 캐릭터였으니까요. 스스로 의심을 갖는다거나 제 장면에 대해 명확해지지 않는다면 모두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촬영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죠."
▲ "연산군, 평생 두 번은 못하는 캐릭터"
극중 연산군은 얼굴에 큰 붉은 반점을 갖고 있는, 태생적 결함을 가진 인물이다. 김강우는 촬영 전 연산군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고, 어머니의 부재와 결핍을 영화상 시각적 효과로 외모에 흠이 있는 것을 이용했다.
"촬영 들어가기 며칠 전 민 감독님과 상의해서 확정됐어요. 태생적으로 외모에 대한 결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결국 연산이 아니라 간신 이야기라서, 연산은 여러 가지 설명하는 것보다 비주얼적으로 관객들에게 한 번에 주는 이미지가 필요했고 그래서 붉은 점을 떠올렸어요."
김강우의 말처럼, 이 작품은 간신의 이야기이지만 그가 표현한 연산군의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또 역대 많은 사극 속 연산군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는 임팩트와 여운을 남긴다.
언론시사 이후 '김강우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벌써 14년 째 배우로 임하고 있는 그에게 어쩌면 늦은 칭찬일 수도 있지만 이번 작품 속 김강우의 재발견을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번 역할은 누가 해도 주목을 받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그걸 제가 한 것 뿐이고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이 나이에 표현해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던 캐릭터예요. 평생 두 번은 못하는 캐릭터인데 이번에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부담감과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많은 칭찬 속에서도 김강우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부족한 점과 영화 속에서 표현되지 못했던 점들을 언급했다. "내가 표현한 연산의 모습은 앞면만 보여줬다"며 개인적인 아쉬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간신'이 흥행한다면, 그의 스핀오프인 '연산군'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워낙 센 캐릭터라, 작품이 끝나고 주변애서 많이 걱정했어요. 그런데 전 오히려 이걸 자연스럽게 연기로 풀고 싶어서 '실종느와르 M'을 택했죠. 잔잔하게 말하는 길수현을 연기하면서 연산의 여독이 풀리는 것 같아요."
[김강우.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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