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참아야 한다."
두산 오재원은 주장 완장이 주는 무거움을 새삼 느낀다. "지난해까진 정말 야구를 재미있게 했는데 올해는 힘들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졌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주장이라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도 많다"라고 했다. 이어 "(홍)성흔이 형이 왜 주장을 나한테 넘겼는지 알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올 시즌 처음으로 두산 주장을 맡은 오재원이 달라졌다. 파이팅이 넘치던 특유의 액션이 올 시즌에는 부쩍 줄어들었다. 16일 광주 KIA전서 시도했던 2루 도루가 합의판정 끝 아웃됐다. 오재원은 "왜 직접 벤치에 합의판정을 요구했겠나. 어깨에 글러브가 닿지 않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2루에 들어갔다. 그런데 심판진이 느린 그림을 봐도 아웃 여부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어 최초 판정을 뒤집기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재원은 "신중해진 것 같기도 하고, 참아야 한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주장 완장의 무거움
겉으로 볼 때 프로야구 10개 구단 주장은 크게 하는 일이 없는 듯하다. 실제 과거 주장을 역임했던 한 선수도 "요즘 선수들은 다들 알아서 프로답게 잘 한다. 굳이 내가 나서서 잔소리 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그래도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30명 가까운 선수단을 대표한다. 자신의 야구보다는 팀의 야구를 먼저 살펴야 한다. 팀 분위기가 처져있을 땐 앞장서서 끌어올려야 한다. 코칭스태프, 프런트에 선수단의 의견을 말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것도 주장의 몫. 솔선수범해야 하고, 봉사해야 하는 자리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는 것도 없다. 팀 내규에 따라 약간의 추가수당만 받을 뿐이다. 오재원의 말에 따르면, 프로야구 10개구단 주장들의 완장은 확실히 무겁다.
주장이 선수단의 신망을 얻으려면 일단 개인성적이 나쁘지 않아야 한다. 과거 개인 성적이 좋지 않았던 선수에게 주장을 맡기는 팀은 거의 없다. 선수들이 주장을 믿고 따르는 것은 이유가 있다. 단 한 시즌도 야구를 잘하지 못했던 주장이 수 많은 동료 선, 후배들 앞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올 시즌 10개 구단 주장은 오재원(두산), 박석민(삼성), 조동화(SK), 이택근(넥센), 이종욱(NC), 김태균(한화), 최준석(롯데), 이범호(KIA), 이진영(LG), 신명철(KT). 올 시즌 개인성적은 조금씩 엇갈리지만, 다들 야구 한 가닥씩 했던 선수들.
▲주장과 개인성적의 미묘한 관계
최근 유독 타격감이 좋지 않은 주장이 여럿 보인다. 박석민이 대표적이다. 지난 3년간 3할을 놓치지 않았던 그가 올 시즌에는 타율 0.268로 약간 저조하다. 물론 5홈런 28타점은 나쁘지 않다. 반대로 이택근은 타율은 0.302로 나쁘지 않은데 6홈런 11타점은 본인의 명성과 썩 어울리진 않는다. 이종욱도 타율 0.254 13타점 22득점으로 전체적으로 썩 좋진 않다. 주장 스트레스를 토로한 오재원도 타율 0.275 3홈런 18타점으로 예년에 비해 눈에 띄는 기록은 아니다.
그래도 위에 거론한 주장들은 팀 성적이 나쁘지 않다. 이진영의 경우 타율 0.243 1홈런 13타점으로 개인 성적도, 팀 성적도 똑같이 좋지 않다. 이범호도 7홈런 25타점은 괜찮은 수치지만, 타율은 0.237로 저조하다. 신명철도 타율 0.208 2홈런 12타점 6득점이다. LG는 시즌 초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KIA는 5할로 선전 중이지만, 여전히 객관적인 전력이 강하지 않다. 이진영과 이범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듯하다. 신생팀에서 1군 커리어가 많지 않은 선수들을 이끄는 신명철의 부담감도 크다.
팀 성적도, 개인 성적도 나쁘지 않은 케이스는 3명 정도로 추릴 수 있다. 조동화는 타율 0.297 2홈런 8타점 12득점으로 쏠쏠한 활약. 주전과 백업을 오가면서 거둔 성적 치고는 좋은 편. 조동화는 번트 마스터답게 후배에게 경기 전 번트 기술을 전수하고, 자신이 선발 출전하지 않는 날 배팅볼 투수로 변신, 후배들의 타격훈련을 돕기도 했다. 조동화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후배들도 주장의 솔선수범에 고마워했다. 올 시즌 SK가 잘 나가는 이유다.
최준석도 타율 0.285 10홈런 28타점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롯데가 성적 기복이 있지만, 이종운 감독 부임 후 지난해 좋지 않았던 팀 케미스트리가 단단해진 것 같다는 호평이 많다. 최준석도 주장으로서 뿌듯할 수밖에 없다. 김태균도 타율 0.293 7홈런 27타점으로 괜찮다. '마리한화' '마약야구' 한화를 이끈다.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해주고 있으니 김태균으로선 부담을 덜고 야구에 집중할 수 있다. 확실히 조동화, 최준석, 김태균은 다른 주장들보다는 마음의 짐이 가벼울 것이다.
오재원은 "주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타격 스트레스를 잊게 해줘서 좋은 것도 있다"라고 했다. 결국 주장의 스트레스가 동료의 2배라는 의미. 한 야구관계자도 "주장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스트레스로 이어져 저조한 개인 성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물론 개인성적이 저조해도 주장으로서 보이지 않게 솔선수범하는 케이스가 많다. 팀 공헌은 충분하다. 단지 주장 개인적으로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오재원은 "결론은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라고 했다. 자신의 야구도 잘 되고, 팀도 잘 나간다면 주장으로서 더 바랄 게 없다. 올 시즌이 끝나고 활짝 웃을 주장은 누구일까.
[위에서부터 오재원, 이진영, 조동화, 최준석.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