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너무 과도한 짐을 짊어졌다.
종목을 불문하고 국가대표팀 감독은 사명감과 애국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사명감과 애국심을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다. 진심으로 우러나와야 한다. 지금 남자농구대표팀 사령탑 후보(모비스 유재학 감독,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들에겐 사명감과 애국심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가 정확히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9월23일부터 10월3일까지 중국 후난에서 열린다.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티켓이 걸린 매우 중요한 대회. 하지만, 대한농구협회 강화위원회는 아직 대표팀 감독을 뽑지 않았다. 대표팀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틀(8월 존스컵 참가가 전부)은 있지만,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은 전혀 없다.
▲출구 없는 선택
강화위원회는 최근 남자대표팀 감독 후보로 유재학-유도훈 감독, 여자대표팀 감독 후보로 위성우-서동철 감독을 내세웠다. 대표팀 감독은 늦어도 6월 초에는 결정될 것이라는 게 농구관계자들의 전망. 문제는 이들 4인방 모두 각자의 소속팀이 있는 프로구단 감독이라는 것. 프로구단 감독이 대표팀을 겸임하는 것과 대표팀만을 맡는 전임 감독제 도입 문제는 해묵은 고민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했을 당시 남자대표팀이 김남기 감독을 선임, 전임제를 운영했다. 하지만, 이후 남녀 대표팀 모두 전임제를 도입하지 못했다. 문제는 대한농구협회와 KBL이 전임제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막상 현실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KBL이 경기력 향상과 흥행을 잡기 위해 프로농구 정규시즌 개막을 9월 12일로 결정했다. 정규시즌과 아시아선수권대회 일정이 겹친다. 대표팀 감독 운영에 대한 체계성과 연속성이 없는 상황에서 날벼락 같은 일. 결국 유재학 감독 혹은 유도훈 감독은 시즌 초반 소속팀을 비우고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엄청난 부담을 안은 것이다.
대한농구협회 방열 회장은 일전에 전화통화서 "프로농구는 국내잔치이고, 아시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티켓이 걸린 대회다. 대표팀 감독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과도한 애국심 강요다. 대표팀 감독 후보에 오른 두 감독은 프로팀에서 연봉을 받는다. 소속팀 성적이 나지 않으면 언제 잘릴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대표팀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는 처지. 대표팀을 맡게 될 경우 사실상 소속팀을 전혀 돌보지 못한 채 시즌에 돌입해야 한다. 시즌과 아시아선수권대회가 겹치지는 않지만, 역시 소속팀 훈련 지휘에 시간을 빼앗기는 여자대표팀 감독 후보들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당연히 전임제를 채택하는 게 맞다. 방 회장도 늦어도 내년엔 남자대표팀을 시작으로 전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농구협회는 스포츠토토 지원 축소 등으로 예산 부족을 호소한다. 자체적으로 스폰서를 유치하거나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치부를 노출한 것이다. 결국 수년째 전임제 도입이 미뤄졌고, 매년 프로팀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 겸임을 강요하는 모양새다. 대표팀 강화위원회에 KBL, WKBL 인사가 참여하지만, 사실상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형편. 결국 대표팀 감독 후보에 오른 프로팀 감독은 출구 없는 선택을 앞뒀다.
▲해결책이 있을까
유재학, 유도훈 감독 모두 소속팀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다가올 시즌에 팀을 잠깐 비운다고 해서 곧바로 잘릴 위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은 이미 최근 수년간 비 시즌만 되면 대표팀에 봉사했다. 그 사이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직, 간접적으로 대표팀 고사의 뜻을 밝혔다. 유도훈 감독 역시 대표팀을 맡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디로 지금 두 유 감독의 심정은 전전긍긍. 결국 사령탑으로 선임되는 유 감독이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묻어둔 채 울며 겨자 먹기로 대표팀을 맡을 듯하다.
정말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한 농구관계자는 "적은 보수로도 대표팀에 봉사할 수 있는 재야의 인물이 나오는 게 최상"이라고 했다. 돈 욕심 없는 재야 농구인은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수준으로 보수를 맞춘다면 당장 전임제 도입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 실제 재야에는 남녀프로팀을 맡은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도 갖춘 농구인들이 있다. 굳이 두 유 감독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다(여자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번 아시아선수권은 재야의 인물과 단기 계약을 하고 그 이후에는 상황을 봐서 전임제로 연장계약 여부를 결정하면 연봉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이럴 경우에도 예산을 갹출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스폰서를 확보, 대표팀에만 2~3년간 매달릴 수 있는 전임 감독을 뽑아야 한다. 언론들이 수 차례 지적했던 부분. 2017년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는 홈&어웨이 방식으로 치른다. 남자대표팀에 홈&어웨이 시스템이 자리가 잡히면 여자대표팀도 따라갈 것이라는 게 농구관계자들 전망. 더 이상 프로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 겸임을 강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두 유 감독은 너무 과도한 짐을 짊어졌다. 애국심과 사명감만으로 대표팀을 겸임하길 바라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유재학 감독과 유도훈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