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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새벽 3시, 아무도 모르게 칼스바트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괴테는 그렇게 이탈리아로 떠났다. 베로나,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등을 여행하며 예술적 영감을 확장했다. 그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내가 로마 땅을 밟은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내 삶이 진정으로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술회했다.
영국의 유명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도 이탈리아로 향했다.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 브라이든은 쿠건에게 전화를 건다. 6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자고. 이들은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셸리의 발자취를 따라 피에몬테에서 카프리까지 지중해 햇빛의 안내를 받으며 이탈리아의 속살에 매료된다.
매거진 ‘옵서버’의 취재의뢰로 떠났지만, 그것은 떠나고자 하는 마음에 고삐를 풀어줬을 뿐이다. 이탈리아의 산해진미를 맛깔스럽게 먹으며 ‘대부’의 알 파치노부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톰 하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대모사와 실없는 농담을 쏟아내는데, 그것 역시 영국의 무료했던 삶 또는 정체됐던 인생의 페이지를 빨리 넘기고 싶은 욕망의 발현으로 보인다.
이들의 여행은, 온통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외양과 달리, 죽음과 맞닿아 있다. 바이런과 셸리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그렇거니와 폼페이의 유적과 대규모 공동묘지 앞에서 느끼는 상념이 50줄에 접어든 중년의 불안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실제 브라이든은 해변가에서 쿠건에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영안실에 들어갈 운명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쿠건도 마찬가지다.
한 명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몸을 움직인다면, 또 다른 이는 파탄났던 가정을 다시 이으려고 한다. 이탈리아의 금빛 바다가 그들을 비춰주고, 안아준다.
‘트립 투 이탈리아’에는 ‘대부’부터 ‘로마의 휴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도 등장한다. 극중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뉴욕의 화려한 삶을 청산하고 훌쩍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다.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자신을 얽매던 삶과 자연스럽게 작별을 고한다.
리즈도, 쿠건과 브라이든처럼, 유적지 앞에 다다른다. 역대 로마 황제 궁전이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된 ‘도무스 아우구스티아나’ 앞에서 상념에 젖는다. 리즈는 모든 것은 한번 파괴된 이후에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혼으로 상처를 입은 자신의 인생 역시 새로운 사랑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인생의 균형을 찾고 사랑을 만난다.
괴테는 어떠했는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파우스트’의 집필을 서둘렀고, 이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친화력’ 등 걸작을 썼다.
괴테, 줄리아 로버츠 그리고 두 명의 영국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언. 그들은 권태로운 삶에 컷을 외치고 떠났다. 지루한 삶을 편집했다.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났다.
[사진 위 '트립 투 이탈리아', 아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사진 제공 = 각 영화사]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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