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임강희는 현재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뮤지컬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연기적인 면에서 더욱 성숙해지길 갈망했고, 연극 '프라이드'를 통해 그 기회를 얻었다. 현재 연극 '프라이드' 연습에 한창인 임강희를 만났다.
연극 '프라이드'는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 알렉시 캠벨(Alexi Kaye Campbell)의 대표작으로 1958년과 2015년을 살아가는 동명의 인물 필립·올리버·실비아를 통해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극중 임강희는 필립과 올리버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실비아 역을 맡았다.
임강희는 한층 상기돼 있었다. 신인 배우가 된 듯 했다. 고민을 거듭하고, 연기에 대한 어려움에 괴로워하고 있지만 분명 그 안의 열정이 보였다. 본인은 모르지만 자연스레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노래 없이 오직 연기만으로 무대를 오르는 그녀의 모습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뮤지컬 '로기수' 이후 임강희는 하반기 스케줄을 모두 비워놨다. 연극이 하고싶어 이 곳 저 곳 소문을 내며 재충전을 위해 3개월 가량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사놨다. 그러다 '프라이드'와 인연이 닿았고 기쁘고 설렌 마음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어렵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긴 했었는데 그냥 무조건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임강희는 연극을 본격적으로 한다는 것에 들떴다. 마이크 없이 말로써 연기해야 하는 연극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그래서 더 깨나가고 싶은 것들이 많다. 임강희는 "완전 신인 같다. 무대에 안 서본 애 같다"며 만만치 않은 첫 연극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드러냈다.
"사실은 '뭐 다르겠어? 무대인데'라고 생각했어요. 뮤지컬도 드라마적인 작품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솔직히 나도 모르게 만만하게 본 것 같아요. 무대에 선게 14년차니까요. 근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힘을 뺀다'가 어떤 말인지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말을 맛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고..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을 많이 했는데 '프라이드'는 물론 감성적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텍스트를 분석해서 이성적이어야 되는 작품이에요. 특히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부분이 훨씬 많은데 한 단어, 한 문장에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다 생각하고 해야 돼요. 그런 부분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 한마디 내뱉는게 힘들고 제가 되게 초짜라 느껴졌죠."
임강희는 아예 초심으로 돌아가 연기에 임하고 있다. 공연 중 바닥에 몸을 심는 느낌을 딱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무대 위 세상에 사는 인물의 삶을 잘 살고 싶다. 자아를 다 잊고 바닥에 붙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에 몰입하고 싶고 그 신기한 공기를 느끼고 싶다.
그는 "첫 연극이나 다름 없고 정극이다 보니까 부담을 느낀다. 아무래도 쇼적인 뮤지컬을 하다 보니 훨씬 힘이 들어가 있는데 이 힘을 빼고 릴렉스해져야 한다"며 "'프라이드'는 감정이 되게 미묘하고 예민해서 그걸 조금이라도 잘못 받아들이면 작품이 다른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주고 받는 것이 쉽지 않아 더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라이드'는 '나는 누구인가'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현재 임강희에게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며 " '난 뭐지', '난 누구지', '난 어떤 애지', 거기부터 시작해 장벽을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발랄한 역도 꽤 했었고 어두운 역할도 했었는데 정확하게 성숙한 역할을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린 사랑, 아픔을 많이 연기했죠. 30대 중반인데 이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하는게 꿈이었고 간절했어요.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하니까 정작 지금 내 나이대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죠. '프라이드'를 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그런 부분 때문이에요. '난 어떻게 지내며 살아왔지' 하며 제 나이에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조그만 뇌가 터질 것 같아요.(웃음)"
자신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면서 극중 실비아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지고 있다. 1958년의 실비아, 2015년의 실비아. 모두를 이해하고 표현하고 싶다.
"표면적으로의 이미지가 1958년 실비아는 고급진 느낌이어야 할 것 같고 2015년 실비아는 쿨하고 대놓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1958년 실비아도 결국 포용하는 여자이지만 대놓고 그러진 못하잖아요. 사실 개인적으론 2015년 실비아가 더 어렵고 힘들어요. 2015년 실비아가 현대니까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배우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이 반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봐요. 그래서 사실 1958년 실비아의 대사가 아직 제 감성에 많이 와닿는 것 같아요. 전 외로움도 많고 침묵이라는 단어를 원체 좋아하거든요. 외로움과 침묵에 대해선 잘 이입이 돼요. 사실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에게 위로 받는 존재인 것 같은데 1958년 실비아는 가장 아픈 사람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정이 가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1958년 실비아가 마냥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진짜 가늠이 안된다"고 할 정도로 1958년 실비아 역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필립을 정말 사랑하니까 다 포용하고 떠나는데 사실 실비아도 사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난 것 같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고백한 임강희는 "사실 나는 누군가를 감싸거나 하는 스타일은 또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저는 제가 어느 부분은 쿨하고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1958년 연습 중에 올리버랑 얘기하는데 아직은 화딱지가 나요.(웃음) 실비아는 감정을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는데 아직까지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막 싸우고 있는 단계예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은 왜 나와 결혼했지?' 등 생각이 많아요. 백만가지가 물음표예요. 그래도 1958년 실비아와 2015년 실비아가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표면적으론 다르지만 속에 갖고 있는 것들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1958년에 다 겪고 살아왔기 때문에 2015년의 실비아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임강희는 '프라이드'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동성애를 소재로 했다는 표면적인 부분만 알고 있었다. 사실 기독교이고 동성애에 크게 마음을 연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출연을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나선 달라졌다. 조금은 흡수했고, 작품 본연의 메시지를 깨닫게 됐다.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이 가져야할 마음가짐도 알게 됐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부분도 포용해야 하고 생각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대본을 봤는데 대사가 너무 좋더라고요. 실비아가 갖고 있는 매력 때문에 작품에 끌렸죠. 저도 사실 동성애자를 생각하면 표면적인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대본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의 생각, 아픔 등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됐어요. 결국 인간에 대한 얘기잖아요. 자아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서 정말 인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인물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해서 좋았어요. 편견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느끼지 않을까요?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어떤 부분에서든 다들 편견을 갖고 살잖아요. 다 똑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이 굉장히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요."
임강희를 변화시킨 것은 대본 뿐만이 아니다. 함께 하는 배우들 및 주변 동료들도 변화하는 임강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함께 실비아를 연기하는 이진희와는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 확실히 기본적, 본성적으로 함께 이해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이 되고 극중 소재들을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사실은 무대가 무섭다는 것을 요즘 계속 생각했어요. 이상하게 원캐스트일 때는 무서움이 없었던 것 가은데 더블이나 재연 공연을 하면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비교를 당하니까.. 그 비교에서 자유로워질 때 정말 나의 것이 나오는건데 자유로워진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 내가 못하는 부분을 누가 잘하면 솔직히 질투도 났죠. 평가 되는 것 같고 연습실에서 다른 배우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괜히 신경 쓰이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어요. 그냥 저 스스로를 믿고 연기하려 해요. 양희경 선생님이 '비교 당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진짜 네 것이 나오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도 이번에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려면 그런 마음을 버려야 될 것 같아요."
동료 배우들도 임강희에게 배움의 장을 만들어준다. 연극을 계속 해온 이진희는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필립 역 강필석은 뮤지컬을 하며 평상시 갖게 된 임강희의 버릇을 캐치하고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할 부분들을 인지하게 해준다. 임강희에겐 실비아 같은 존재인 친구 홍우진 역시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이석준 역시 '프라이드'가 임강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동생 임화영 역시 '부담 갖지 말라'며 세세한 부분도 신경 써주고 있다.
"사실 이번에는 혼이 빠진 기분이에요. 역하리 어렵고 정확히 가늠이 안 되죠. 자꾸 제 버릇이 나오려고 하는 것도 문제고요. 그래서 동료 배우들과 많이 얘기해요. 원래 작품을 할 때 인물과 하나가 되고 너무 빠져들어 평소 생활에 있어서도 힘들어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부분도 좀 바뀌려고 신경 쓰고 있어요.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싶어도 성장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대에 섰던 게 헛된 시간이 아니잖아요. 이번 작품은 배우로서 임강희라는 사람을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조금 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배우인지 생각하게 하고 방향성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잘 하고 싶어요. 관객분들도 실비아를 정말 사랑하시다는 것을 알아요. 저만의 색깔로 정말 잘 해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연극 '프라이드'는 오는 8월 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막을 올린다.
[연극 '프라이드' 임강희. 사진 =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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