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실미도’는 국가폭력에 희생된 젊은이들을 그렸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동족상잔의 비극에 희생된 형제의 이야기다. ‘왕의 남자’는 권력(연산군)을 향한 광대의 전복을 다뤘지만, 그것 역시 실패가 예정된 수순이었다. ‘괴물’은 가족과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부실한 국가 시스템을 그렸다. 이 영화도 강두(송강호)가 딸(고아성)과 아버지(변희봉)를 잃는 비극이다.
‘광해’는 이상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정확히 읽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판타지에 가깝다. 민본주의를 실현하려했던 하선의 꿈은 꿈으로 그친다. ‘변호인’은 속물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았다. 인권을 실현하려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노력은, 1980년대 후반에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됐다. ‘7번방의 선물’에선 6살 지능의 딸바보 용구(류승룡)가 잘못된 판결로 사형에 처해진다.
11편의 천만영화 가운데 7편이 비극이거나 현실에 좌절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머지 4편은 어떠한가. ‘해운대’는 전형적인 재난 블록버스터였고, ‘도둑들’은 프로페셔널 도둑들이 보석을 훔치는 범죄영화였다. ‘명량’은 성웅 이순신이 왜적을 무찌르는 사실을 극화했고,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로, 힘들었던 현대사를 묵묵히 헤쳐 나오는 내용이다.
천만영화 중 절반이 넘는 영화(63.6%)가 현실에 굴복하는 이야기이거나, 벽을 넘지 못하고 쓰러지는 서사였다. 역사적 공간이든 당대의 현실이든, 당당하게 맞서 뚫고 나가 성공하는 이야기가 드물었다. 우리네 실제 역사가 그러했다. 현대사는 민중의 삶을 할퀴었고, 유린했다.
천만을 목전에 둔 ‘암살’과 천만영화를 향해 질주하는 ‘베테랑’의 공통점은 그동안 한국 흥행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응징의 서사’를 갖췄다는 점이다.
‘암살’은 한국 현대사가 해결하지 못한 친일파 청산을 정면으로 다룬다. “해방이 될 줄 몰랐다”라는 변명으로,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라는 회피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방어논리로 현대사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은 해방공간을 지나 반민특위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배신자’ 염석진(이정재)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최동훈 감독은 친일파 염석진을 제거하고 응징하는 결말을 택했다. 그것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이름 없는 독립투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베테랑’은 어떠한가. 재벌의 비인간적인 행태는 수도 없이 벌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재벌은 ‘대한민국은 내가 먹여살린다’는 그릇된 인식 속에 온갖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그를 검거한다. 그것은 돈이 없어 ‘매질’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힘없는 민중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다.
‘암살’과 ‘베테랑’은 현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영화로 해냈다. 관객은 삼복 무더위에 통쾌함을 느끼며 지지를 보냈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다시 현실 앞에 놓인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대로, 친일파의 후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산다. 재벌은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내가 다치면 한국 경제가 휘청인다는 협박의 논리로 여전히 막강한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제 광복 70주년이다. 친일파와 친일파 후손은 여전히 뉘우치지 않을 것이고, 일부 경제인들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것이다. 다시 씁쓸한 현실이다.
[‘암살’ ‘베테랑’ 스틸컷. 사진 제공 = 각 영화사]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