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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아들은 비상을 꿈꿨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해 놓은 과녁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아들은 활을 들고 시위를 당겼다. 과녁은 답답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쐈다. 허공을 가르는 화살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과녁을 벗어난 대가는 혹독했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어긋난 천륜이 불러온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영화는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 칼을 들고 아버지 영조(송강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도(유아인)의 모습을 시작한다. 이 사건이 직접적인 발단이 되어 사도는 뒤주에 갇힌다. 뒤주에 들어가는 첫째날부터 싸늘한 시신으로 나오는 여덟째날에 이르기까지 8일간의 시간을 축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사도’는 영조, 사도, 혜경궁 홍씨(문근영), 인원왕후(김해숙), 사도의 생모인 영빈(전혜진), 사도의 장인인 홍봉한(박원상) 등 참혹한 사건에 얽혀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통해 그날의 비극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출신 콤플렉스와 이복형인 경종 독살설로 인해 재임 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던 영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미래의 왕이 될 아들을 강하게 몰아칠수록, 사도는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다 결국 링 밖으로 튕겨나가 광기에 휩싸인다. 영조의 구심력과 사도의 원심력이 팽팽하게 맞붙는 후반부의 대결은 그야말로 불꽃이 튄다.
아들을 엄격하게 키우려고 했던 아버지와 자유롭게 성장하고 싶었던 아들은 조선왕조의 엄격한 유교사회와 차가운 권력 세계 안에서 곪은 상처를 내다가 끝내 파국의 수렁에 빠진다. 결국 ‘사도’는 ‘권력이라는 괴물’에 짓눌려 살아야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적 운명에 바치는 가슴 아픈 진혼곡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음새가 자연스럽고, ‘한중록’ 등에 바탕을 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이야기 전개도 몰입도를 높인다. 당파싸움 등 사건에 얽힌 정치적 배경을 최소화하고, 영조와 사도의 가족 관계를 최대화하는 전략으로 정서적 파장을 일으킨 점도 효과적이다. 목격자이자 주변인일 수 밖에 없는 혜경궁 홍씨, 인원왕후, 영빈(전혜진) 등 여성 캐릭터가 느끼는 애통한 마음을 강조하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송강호는 또 하나의 깊은 우물을 파냈다. 이승과 저승길의 갈림길에 와서야 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통절한 슬픔으로 표현했다. 유아인은 사랑을 받고 싶은 아들과 광기에 물들다 폭발하는 세자의 아픔과 울분을 강렬하게 연기했다. 정조 역으로 특별출연한 소지섭도 짧은 분량이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253년 전의 궁중 비극은 당대 현실에서도 여전히 강한 울림을 전한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를 두고 있고, 언젠가 아버지가 될 테니까.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니까.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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