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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대중은 배우 문근영에게 은연중에 기대감을 갖는다. 아역부터 시작한 배우인 만큼 연기를, 일찍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리더십을, '국민 여동생' 타이틀로 사랑 받았기에 그에 걸맞은 인품을.
그래서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극본 도현정 연출 이용석, 이하 '마을') 속 문근영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적은 분량이었고, 문근영이 연기한 한소윤은 다소 연약했다.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캐릭터 특성상 행동이 민폐로 느껴지기도 했다. 대중이 갖고 있던 기대감과는 조금 멀었다.
그러나 문근영은 만족한다. "시청률을 1번으로 생각해본적이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욕심이 더 크다"고 단호하게 말 할 정도니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얻었던 '마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럽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에 걸맞게 잘 녹아든 문근영을 서서히 이해했다.
문근영은 "시청자들의 생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표현하는 감정과 밸런스가 맞아야 시청자들도 납득하면서 잘 보는데 역할에 대해 안 좋은 반응이 나올 때는 '내가 조금 잘못했나?' 생각도 하긴 했다"고 고백했다.
"제가 놓치고 간 게 있나, 아니면 뭔가 조금 덜 표현하거나 많이 표현했나, 고민이 살짝 되더라고요. 근데 제가 느끼기로는 소윤이 캐릭터에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 같아요. 내레이터로서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저 작품 분위기가 좋아서 시작했고, 변신이라기보다 제 성향에 맞는 작품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개인적으로 다양하고 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지 맨날 똑같고 뻔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 하진 않거든요. 주변에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제가 느끼기에 재미가 없으면 안 해요. 성격이 그래요."
'마을'은 캐릭터보다 작품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지금까지 해왔던 캐릭터 중 가장 약하고 드러나지 않는 무난한 캐릭터이지만 작품에 매료됐다. 어찌 됐든 소윤이가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작품 자체가 욕심이 났고, 이 작품에서 자신이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본을 3회까지 읽었을 때 첫마디가 '이건 내가 캐릭터가 이렇고 저렇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작가님, 감독님을 만나야겠다. 대본이 16회까지 잘 나와 있느냐가 중요한 작품이다. 난 그들을 만나 확신을 얻어야겠다'였어요. 그래서 다음날 바로 만났고, 대화를 나눈 뒤 믿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 와중에 저도 여전히 불안한 것도 있었지만 계속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했던건 처음 만났을 때 작가님, 감독님이 주신 믿음 때문이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작품으로 그 확신을 충족시켜주셔서 작가님,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확신을 가진 뒤엔 한소윤을 만들어 갔다. 아무리 한국말이 익숙하다고는 해도 캐나다에 살다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버퍼링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투도 설정했다. 낯선 타지 생활, 처음 오자마자 발견한 것은 시체. 한소윤이 마을에 적응하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었다. 이후엔 원래 속도대로 연기를 했다.
기복 있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한소윤의 감정 연기는 절제가 중요했다. 강한 캐릭터 천지인 '마을'에서 한소윤은 다소 무난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의 눈빛에서 감정의 변화를 읽었다. 그의 수가 완벽히 통한 셈이다.
"감정 연기가 힘들다기보다 스스로 너무 심심하단 생각을 좀 했어요. '내가 이렇게 연기해도 되나? 뭔가 100% 다 안 한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스스로 들더라고요. 하지만 현장에서 알았어요. 소윤이는 묻는 사람일 뿐인 거예요. 상대의 깊은 사연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죠. 거기에서 내가 감정을 표출하면 그 사람 사연의 무게나 감정이 변질될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극의 흐름에 따라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절제하게 되고 조금은 삭이게 되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더 힘들기도 했죠. 근데 더 중요한 고민은 제가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어쨌든 천천히 여러 사건을 모으고 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게 하려면 밸런스를 잘 잡고 유지해야 했죠. 그게 오히려 조금 힘들었어요."
문근영의 고민 덕에 '마을'은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았다. 방송 전부터 "멜로, 발연기, 쪽대본이 없다"고 단언했던 이용석 감독의 말은 진실이었다.
문근영은 로맨스가 없어 아쉽진 않았냐고 묻자 "없었다. 만약에 있었다면 (육)성재한테 미안했을 것 같다. 나이 많은 누나랑 멜로를 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나. 없어서 다행이었다"며 웃었다.
"멜로가 없었기 때문에 드라마가 계속 힘 있게 진행될 수 있었어요. 중간에 멜로가 들어갔다면 이완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뭔가 힘을 갖고 끝까지 가야됐기 때문에 없는게 더 나았죠. 대본 내용이 극비였지만 믿고 가는 게 진짜 컸기 때문에 어려움도 없었어요. 소윤이 입장에서는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 거니까 끝에는 진실을 다 알아낼 거라는 생각이 있었죠. 그리고 감독님은 다 아시니까 내가 잘못 연기하면 잘 컨트롤 해주실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을'이란 작품이 더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확실히 감독을 향한 문근영의 신뢰는 남달랐다. "인간적"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수장인 이용석 감독이 인간적이기에 현장 역시 인간적이었고, 그 현장에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을 온전히 믿고 작업한다는게 특히 드라마 현장에서는 쉽지 않은데 현장 분위기는 완전 시청률 30~40% 나오는 분위기였어요. 그 정도로 으싸으?X 했고 자부심도 있었어요. 어떻게든 긴장감 있게, 완성도 있게 찍으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들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너무나 인간적이었어요. 사실 드라마 현장은 정신 없고 바쁘고 내 것 챙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경쟁하는 분위기, 이기적이고 치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마을'은 너무나 인간적인 현장이었어요. 그건 수장인 감독님이 인간적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진짜 감독님한테 너무 고맙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주로 함께 연기했던 신은경, 육성재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문근영은 "육성재는 워낙 연기 베테랑들이 많으니까 초반에 걱정을 많이 하고 주눅들어 있고 부담도 많이 갖고 있었는데 내가 한참 누나니 친해지려고 노력도 하고 긴장감도 풀어주려 했다"며 "다행히도 그 친구가 잘 받아주고 따라와줬다. 내가 뭐라 할 필요도 없이 너무 잘 하더라. 예쁘고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신은경에 대해선 "너무 너무 편했다. 내가 뭔가를 감히 할 필요도 없었다"며 "이끈다고 할 것도 없이 먼저 에너지를 저한테 쏟아 주시니까 나는 그 에너지를 받아칠 수만 있어도 하나의 호흡이 형성되니까 연기할 때 굉장히 좋았다. 좋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완벽한 호흡이 있었으니 결말도 만족스럽다. 더 큰 반전을 기대했을 수도 있지만 문근영은 "반전을 위한 반전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추리하고 내기하는 재미도 있었고, 시청자들의 추리와 상상력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 것도 뿌듯하다. "좀 넓게 생각하면 나는 이 마을이 한 나라,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뭔가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있겠다고 예상은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메시지가 있었고,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것도 있다. 그냥 장르물 추리, 스릴러로서 끝난게 아니라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마을'을 시작할 때는 연기적으로 부담감은 정말 없었어요. 되려 사람들이 기대치가 있다고 해야 되나? 소윤이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내레이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 드라마를 하는 순간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대치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갖게 되는 문근영에 대한 기대치요. 중반부 가니까 '문근영이 이 역할 왜 했지?, '문근영 생각보다 연기가 평이하네'라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만큼 제게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도 없지 않아 있긴 했는데 이 작품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이거였기 때문에 제가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나중에는 캐릭터와 작품에 집중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기대감에 놀라긴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얻은 것도 있다. '사람들이 문근영이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문근영은 "나란 배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내 몫은 이거였다는 거~ 그 기대감은 다음 작품에서 충족시켜주는 걸로"라며 웃었다.
문근영은 20대에 임한 작품 중 제일 성취감 높은 작품이 '마을'이냐고 묻자 단번에 "네"라고 답했다. 이어 "제일 좋아했던건 '신데렐라 언니' 은조였고 전체적으로 만족 혹은 가장 행복했던건 '마을' 현장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 복이에요. '마을'은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없죠. 그럴 수 있어서 진짜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딱 16회 대본 보고 그 생각이 들었어요. 하길 잘했다. 정말."
[배우 문근영. 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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