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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kt wiz와 댄 블랙의 이별은 아름다웠다. 블랙은 꿈을 이루기 위해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와 계약했고, kt 구단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그를 보내줬다. 말 그대로 '뜨거운 안녕'이었다.
블랙은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각) 마이애미 구단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너 계약이지만 조건이 좋았다. 한 관계자는 "스플릿 계약이다. 매우 좋은 조건에 계약한 것으로 안다. 어렵지 않게 빅리그 진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앞서 메이저리그 소식을 다루는 미국 매체 '베이스볼 에센셜'은 전날 "블랙이 마이애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스프링캠프에도 초청받았다.
블랙은 올 시즌 중반 kt에 합류해 54경기 타율 3할 3푼 3리(198타수 66안타) 12홈런 32타점 출루율 4할 1푼 3리로 활약했다. 시즌 초반 11승 50패로 헤매던 kt는 블랙 합류 이후 41승 41패로 선전했다. 특히 블랙은 지난달 열린 프리미어 12 미국 대표팀에 선발돼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취재 결과 프리미어 12에서 보여준 활약이 블랙의 계약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올 시즌 막판부터 블랙의 재계약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일단 또 다른 타자 앤디 마르테와 계약한 뒤 투수 3명을 더 영입할지, 아니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마블 듀오(마르테-블랙)'에 투수 2명으로 갈지 고민했다. 일단 외국인 선수 재계약 통지 마감일인 지난달 25일 블랙에게 재계약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2차 드래프트와 FA(프리에이전트) 계약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조범현 kt 감독도 "FA 계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외국인 선수를 어떻게 구성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kt는 마르테에 이어 투수 슈거 레이 마리몬, 트래비스 밴와트와 계약했다. 한 자리가 남았는데, 투수냐 타자냐가 문제였다. 엄밀히 말하면 투수냐 블랙이었다. 당시 kt 스카우트 담당자는 "빨리 결정해야 한다"며 애태웠다.
재계약은 불발됐다. 하지만 웃으며 이별했다. 취재 결과 kt는 처음부터 블랙에게 "우리가 계약을 못 하게 되면 보류권을 풀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블랙도 "한국에서 뛰게 되면 무조건 kt"라고 했다. 블랙의 생각은 확고했다. KBO리그에 남는다면 kt가 아닌 다른 팀은 생각하지 않았다.
kt는 사실상 블랙에게 주도권을 주고 협상을 시작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매우 투명하게 협상을 진행했다. 먼저 보류권을 풀어준다고 약속하며 진정성을 보였다.
블랙도 kt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는 지난 9월 마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내년 시즌 다시 돌아오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당시 그는 통역 김희준 씨와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꼭 기사에 이 사진을 써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그만큼 kt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런데 kt의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은 5.56으로 리그 최하위였다. 도약을 위해서는 마운드 보강이 필요했다. 일단 2차 드래프트로 이진영, FA로 유한준을 보강해 공격력 강화에 성공했다. kt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그 사이 블랙은 마이애미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안받았다. kt는 블랙과 그의 에이전트에게 연락을 받았다.
"마이애미에서 계약을 제안했다. 놓칠 수 없는 좋은 조건이다. kt는 결정을 내렸나?" (에이전트)
"아직 고민중이다. 미안하다." (kt)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야구선수에게 메이저리그는 꿈의 무대다.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전망이 밝다." (에이전트)
"알았다. 아쉽지만 마이애미와 계약하라. 행운을 빈다." (kt)
조건도 좋은데다 블랙의 빅리그 입성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마이애미의 주전 1루수는 저스틴 부어다. 올 시즌 129경기에서 타율 2할 6푼 2리 23홈런 73타점을 기록했다. 사실상 전문 1루수는 부어가 유일하다. 데릭 디에트리치는 1루와 2루, 3루, 외야 모두 소화 가능한 유틸리티 자원이다. 블랙이 스프링캠프에서 눈도장을 받는다면 곧바로 빅리그에 진입할 가능성도 크다. 마이애미 팀 사정상 블랙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특히 지난 7시즌 동안 블랙의 마이너리그 성적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트리플A 레벨에 처음 진입한 지난해부터 2시즌 동안 82경기(트리플A 기준) 타율 2할 9푼 12홈런 4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한 관계자는 "마이너리그 성적이 상승곡선을 그릴 때 한국행을 택한 선수는 타이론 우즈(전 두산)가 유일했다. 일반적으로 성적이 떨어질 때 한국 팀과 계약하곤 하는데, 블랙은 달랐다"고 말했다.
블랙의 보류권은 여전히 kt가 쥐고 있다. 임의탈퇴가 아니다. kt는 블랙이 국내 타 구단으로 이적한다면 보류권을 풀어주려고 했다. 일단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했기 때문에 보류권은 유지한다. kt 구단 관계자는 "블랙과도 이 부분(보류권)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KBO리그에서 뛸 것이 아니므로 보류권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더라. 한국이 아니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 5년이었던 보류권은 지난해 2년으로 축소됐었다. 그런데 지난 6월 9일 이사회에서 다시 5년으로 환원됐다. 하지만 블랙은 규정 개정 이전에 입단했기에 보류권 2년이 적용된다. 정금조 KBO 육성운영부장은 14일 통화에서 "블랙은 규정이 바뀌기 전인 지난 5월 kt와 계약했기 때문에 보류권이 2년이다. 6월 9일 이후에 입단한 외국인 선수에 대한 보류권은 5년"이라고 말했다. kt는 재계약 의사를 통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블랙의 보류권을 갖게된 셈.
kt 관계자는 "만약 블랙이 KBO리그로 돌아올 경우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다"고 말했다. 블랙이 2년 내에 KBO리그 돌아오더라도 kt의 동의만 있으면 타 구단에서 뛸 수 있다.
사실 kt가 시작부터 보류권을 풀어준다는 조건을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보류권을 행사하면 블랙은 KBO리그 타 구단에서 뛸 수 없다. 만약 에이전트가 "한화, 두산 등에서 더 높은 금액을 불렀다"며 몸값을 높이려 하면 이른바 '보류권 카드'를 꺼내면 그만이었다. 만약 kt가 블랙에게 보류권을 들이밀며 "KBO리그 타 구단으로 못 간다"고 압박했다면 협상이 아닌 '파워게임'이 되는 것.
하지만 양측은 애초부터 진정성을 갖고 협상에 임했다. 블랙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계약을 제안받았기에, kt도 쿨하게 보내줬다. "블랙은 충분히 잘할 것이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댄 블랙. 사진 = 마이데일리 DB]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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