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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알면서도 당한다.
우리은행이 올 시즌에도 선두독주체제를 갖춘 결정적 원동력은 존 디펜스 트랩 프레스(이하 존 프레스)다. 통합 3연패 역시 존 프레스가 결정적이었다. WKBL 타 구단들은 우리은행 존 프레스를 깨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최근에는 존 프레스를 하지 않는 구단이 드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은행의 존 프레스를 알면서도 당한다. 우리은행 존 프레스는 위성우 감독 및 코칭스태프의 연구와 선수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여자농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존 프레스의 실체
우리은행 존 프레스는 하프라인, 혹은 코트 4분의 3 지점에서 지역방어(2-1-2 혹은 1-2-2) 형태를 갖춘 뒤 트랩을 섞어 압박하는 수비다. 예를 들어 수비수 1명이 상대 드리블러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며 트랩을 설치한 지점(주로 하프라인 혹은 사이드라인)으로 유도한다. 드리블러가 그 지점으로 들어오면, 또 다른 선수가 재빨리 트랩을 시도한다. 나머지 3명의 선수 중 1명은 드리블러가 패스를 내줄만한 지점을 미리 선점, 스틸을 시도한다. 또 다른 2명은 나머지 공격수들을 최대한 견제한다.
대인방어가 좋은 이승아와 박혜진에 임영희, 양지희까지 적극적으로 가세한다. 지난 시즌의 경우 신장이 작은 이은혜가 투입될 때 존 프레스가 다소 헐거웠지만, 올 시즌은 이은혜가 투입될 때 맞춤형 존 프레스를 가동한다.
우리은행은 4시즌을 치르면서 존 프레스의 형태를 조금씩 바꿔왔다. 위성우 감독은 "상대 선수들의 특성,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했다. 박혜진과 이승아 등도 "올 시즌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바꿨다"라고 했다. 한 농구관계자에 따르면 "예를 들어 트랩을 들어가는 타이밍과 지점을 조금씩 바꾸는 방식이다. 매우 영리한 변화이자 철저한 분석의 결과"라고 했다.
우리은행은 체력 소모가 큰 존 프레스를 무턱대고 40분 내내 쓰지 않는다. 위 감독이 게임 플랜을 짤 때 철저히 존 프레스를 사용할 시점을 정해놓는다. 승부처에서 여지 없이 꺼내들고, 패스미스, 라인크로스, 트레블링 등 상대 턴오버를 유발한다. 이때 우리은행은 확률 높은 속공으로 연결, 순식간에 경기 흐름을 장악한다.
19일 신한은행전의 경우 17일 삼성생명전 후 이틀만에 경기를 치러 체력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1쿼터부터 존 프레스를 가동, 대성공을 거뒀다. 위 감독은 "어차피 후반에 체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봤고, 초반에 승부를 걸었다"라고 했다. 신한은행이 초반에 존 프레스를 깼다면 의외로 신한은행의 일방적 흐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6일만에 경기를 치른 신한은행보다 퐁당퐁당 일정을 소화한 우리은행의 체력, 기술적 준비가 더욱 돋보였다. 명확한 클래스의 차이였다. (현재 WKBL 나머지 팀 대부분 존 프레스를 사용하지만, 우리은행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 알면서 당할까
문제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5팀이 우리은행의 존 프레스를 알면서도 당한다는 점. 존 프레스를 깨는 방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현장 지도자들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브&고(동료에게 패스를 건네주고 빠르게 빠져나가며 공간을 만드는 것)와 개인 돌파(드리블, 스텝 기술로 존 프레스를 스스로 해체하는 것)다. 농구선수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기술이다. 한 관계자는 "공을 잡고 우물쭈물하면 트랩에 걸리게 돼 있다. 빨리 패스를 해서 빠져나가거나 드리블로 한 명을 제쳐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WKBL 6개구단 선수들 중 이 기본을 제대로 갖춘 선수가 많지 않다. 또한, 여자선수들은 남자선수들에 비해 운동능력이 떨어져 순간적인 대처가 여의치 않은 부분도 있다.
우리은행이 삼성생명에 유독 존 프레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건 여전히 WKBL 현역 최고가드 이미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선 정도를 제외하고 각 팀 대부분 가드는 우리은행 존 프레스를 제대로 깨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KBL에서 존 프레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도 WKBL처럼 가드들의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KBL도 예전보다 가드들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여자농구 경기력 하락, 세대교체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방증) 여자농구의 경우 빈 곳이 있는데도 시야가 좁아 동료에게 패스를 건네주지 못하고, 수비수 1명을 자신 있게 제치는 선수가 많지 않다. 지도자 출신 한 농구관계자는 "4년 연속 우리은행 존 프레스가 통하는 건 어떻게 보면 창피한 일이다. 우리 지도자들의 문제"라고 고개를 숙였다. 분명 우리은행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여자농구 지도자, 선수 모두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위성우 감독은 올 여름까지 3년 연속 여자대표팀을 맡았다. 하지만, 2013년, 2015년 두 차례의 아시아선수권대회서 중국, 일본을 상대로 존 프레스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도해봤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농구는 세대교체에 실패했고, 젊고 유망한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반면 일본, 중국과의 클래스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는 게 확인됐다. 실제 테크닉이 월등한 일본, 중국 가드들은 지난 3년간 치른 두 차례의 아시아선수권대회서 한국의 맨투맨과 지역방어를 가볍게 해체했다. (참고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이 눌렀던 일본과 중국은 2진이었다. 한국 최정예 멤버들은 홈에서 일본과 중국 2진도 겨우 눌렀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대만, 태국의 추격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WKBL에서 4시즌째 존 프레스를 제대로 깨는 팀이 없다는 건 우리은행의 자랑거리이지만, 한국 여자농구의 그림자다.
[존 프레스 장면.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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