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이 영화는 (윤동주의 삶과 시에 대해) 아는 만큼 보여요. 끊임없는 자기 자신의 진솔한 고백이죠. 시대가 자신에게 던져주는 것을 정면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이야기에요. 그래서(윤동주의 시가) 아직도 식지 않는 것이죠. 뜨겁지만 온화해요.” ‘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에 대해 이처럼 설명했다.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아낸 영화다.
약 4년 전 일본의 영화제에 참석했던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기념비를 방문, 그의 삶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윤동주뿐 아니라 그의 평생의 동지이자 열등감의 근원이었던 송몽규를 조명하기로 결정,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구도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윤동주를 다룬 첫 영화, 그것도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사랑해 마지않는 시인의 삶을 스크린에 녹여낸다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이준익 감독에게도 부담이었다.
“이 소재를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위험 부담이 있었죠. 윤동주 시인은 중학교만 나와도 그에 대한 인상이 정확히 각인 돼 있어요. 불과 약 70년 전 인물이고요. 만약 제가 영화를 잘 못 찍게 되면 감독으로서도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위험한 선택이었죠.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니 재미있고 즐거워야 하는데 ‘동주’는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든가 가볍게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어요. 매 순간, 매 컷이 긴장이었죠.”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도전했고, 더할 나위 없이 윤동주 그리고 송몽규의 모습을 스크린에 재현시켰다. 각본을 맡은 신연식 감독의 공도 컸다. 기억력과 대상에 대한 이해력, 연출 뿐 아니라 각본가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신연식 감독은 자신의 문학적 소양까지 녹여내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상당 부분 사실적으로, 그것도 극 중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윤동주의 시들과 완벽히 맞아 떨어지도록 표현해 냈다.
“윤동주 같은 경우는 단순 내레이션이 아니라 스스로 육필로 썼던 시의 개연성, 그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모멘트가 있었어요. ‘참회록’, ‘아우의 인상화’, ‘별헤는 밤’, ‘자화상’, ‘서시’ 등 그 시가 내포하고 있는 시인의 감정과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 그 시대의 아픔들이 담겨 있죠. 그런 것들을 싱크가 딱 맞게 배열한 건 신연식 감독의 실력이죠.”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진 윤동주의 시들은 ‘동주’에서 볼 수 없는 눈요기용 비주얼을 충족시킨다. 언어가 주는 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가 안기는 감동의 파장이 얼마나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경험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오락적인 볼거리라든가 스펙터클이 없어요. 시인의 시 자체가 스펙터클이기 때문이죠. 시 안에 두려움과 떨림과 자신의 운명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선택을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녹아 있죠. 이런 것들이 어떤 화려한 것보다도 식지 않는 스펙터클이죠. 그래서 70년이 지나도 또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시를 통해 울렁이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동주’에서는 흑백의 아름다움도 맛볼 수도 있다. 단순한 색이지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갈함, 그 시절이 스크린에 되살아 난 반가움은 물론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오롯이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동주’가 컬러 영화면 오히려 이상했을 거예요. 촬영, 조명, 미술 등 주요 스태프들이 계속 신연식 감독과 작업했던 저예산 스태프들이에요. 저예산 영화를 찍는 사람들의 실력이 이 정도죠. 한국영화의 저변이, 수준이 상승된 혜택을 배우나 감독들이 받고 있는 거라 봐요.”
이준익 감독은 배우들에 대한 감탄도 아끼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연극에서, 작은 영화에서 활동해 온 배우들이 자신의 내공을 아낌없이 발산했다. 이준익 감독은 주연배우 강하늘, 박정민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하늘은 엄청난 힘을 가진 멋진 배우, 박정민은 그 자체로 송몽규였으며 전율까지 느끼게 한 배우였다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두 사람의 나이였을 때 이렇게 멋지지 않았다며 이준익 감독 스스로에게는 ‘배움의 대상’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네루다의 시가 생각나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윤동주의 시를 영화 속에 녹여냈던 것처럼 이준익 감독 역시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인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네루다의 시를 통해 마음 속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전한 이준익 감독은 어느새 영화 ‘동주’ 그리고 윤동주와 무척 닮아 있었다.
[이준익 감독.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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