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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부산국제영화제와 갈등을 빚어 온 부산시가 강수를 뒀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18일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 시장은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맡기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와 함께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재위촉은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이를 보는 영화인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마치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해촉을 위한 사임 발언처럼 비춰졌기 때문. 앞서 부산시는 이달 말까지 이 위원장의 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오는 25일 이 위원장의 재신임을 논의할 수 있는 정기 총회를 열자고 요청했으나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아 사실상 해촉을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답이 없던 부산시 측은 돌연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 자리에서 서 시장이 직접 “재위촉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서 시장은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둘러싼 영화계의 반발에도 이와 관련된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또 마치 “저의 진정성이 전달되기 보다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진다”면서 ‘내가 사퇴하니 너도 사퇴하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뿐만 아니라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만한 장치들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 기자 회견을 개최,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실 없는 발언들을 이어나가 또 한 번 영화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앞서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갈등을 빚을 당시 서 시장은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상영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부산시는 그동안 일관되게, 부산국제영화제의 예술적 영역에 있어서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변함없는 원칙을 밝혀 왔다”고 말해 스스로의 신뢰도를 떨어트렸다.
이와 함께 질의응답 중 “그동안 영화제의 자율성을 해치는 어떤 행위도 없었다”며 “정치적으로 영화제가 이용되거나 이용하려는 행위는 안 된다는 말씀은 분명히 드린다. 그런 시도가 있을 땐 앞으로도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해 불안감을 키웠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다이빙벨’ 같은 영화가 상영될 경우 적극 제지하겠다는 의미로 비춰졌다. 영화인들이 왜 반발을 하고 현재 상태까지 골이 깊어지게 됐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뿐만 아니다. 더 자율적인 환경을 위해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혔지만 새로 선출된 조직위원장이 부산시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율적이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 돼야 할 정관 개정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돼야 하는데 영화제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기 보다는 펀드조성, 종합촬영소 건립 등 다른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는 서 시장이 생각하고 있는 원인과 해결방안이 다수 영화인들의 시각과 다르기 때문. 단적인 예가 영화인들의 집단 반발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서 시장은 해외 영화인들이 현 상황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요지의 질문을 받자 “개인적인 일탈”문제라며 “영화제와 시가 갈등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영화제 위상이 훼손되는 것 같아 섭섭하다. 진정 영화제를 위한 행동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내 영화인들 뿐 아니라 해외 영화인들도 현재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는 상황. SNS를 통해 #ISUPPORTBIFF 캠페인을 펼치고 있을 뿐 아니라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의 해외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산국제영화제 지지 의사를 밝혔고, 이런 움직임은 외신들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져 국제적 망신을 겪었다. 여기에 해외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 영화 평론가, 교수 등 100여명의 해외 영화인들이 서병수 부산광역시 시장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탄압을 중지 해줄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도 보내는 등 반발하고 나섰지만 서 시장은 이런 움직임들을 단순히 “개인적 일탈”로 치부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우선 서 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를 반겼다. 다만 정관 개정이 뒤따라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계속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필수다. 또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영화제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일꾼이 필요하다.
물론 당연직인 부산국제영화제의 조직위원장 자리가 민간에게 이양되는 건 반길 만 하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특정인의 입맛에 따른 조직위원장이 아닌 진정으로 영화제를 잘 이끌고 성장시켜 나갈 만한 인물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보호막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오는 25일 부산국제영화제 2016년도 정기총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정관 개정이 이뤄질지, 부산시가 말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줄지 지켜볼 일이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현장.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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