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연세대는 예사롭지 않다.
2015년 대학농구리그 결승전서 대학최강 고려대를 끝까지 괴롭힌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농구대잔치 역시 준결승전서 상무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지난 10여년간 중앙대, 경희대, 고려대가 차례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무기력했던 그 연세대가 아니었다.
연세대가 2016년에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조짐이다. 4일 막을 내린 MBC배 대학농구 남자1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11년만의 우승과 함께 2009년 대학농구 2차연맹전 이후 7년만에 대학무대 정상 등극. 특히 준결승전서 고려대를 쓰러뜨린 건(물론 이종현이 부상으로 결장했다)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연세대의 변화 중심에 은희석 감독이 있다. 은 감독은 2014년 8월 부임했다. 그의 도전은 흥미롭다. 흔히 '멤버농구'로 대변되는 대학농구에 프로농구가 지향하는 '시스템 농구'를 덧입히려고 한다. 농구관계자들은 호평 일색이다. 한 아마농구 관계자는 "은 감독이 제대로 된 감독이 될 것 같다"라고 했다.
▲속 쓰린 현실
대학농구를 수식하는 단어는 '멤버농구' '스카우트 농구'다. 대학은 물론, 중, 고등학교 농구 현실이 그렇다. 대부분 고교, 대학은 간판스타 1~2명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농구를 펼친다. 조직적인 플레이(예를 들어 볼 없을 때의 공격 움직임과 스크린 활용 및 수비법, 기본적인 더블 팀과 지역방어 수행능력)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팀이 수두룩하다.
대학 입장에선 구력이 짧은 선수들의 특성, 시즌 내내 많은 경기(대학리그, MBC배, 종별선수권, 농구대잔치 등)를 치르는 현실상 세련된 조직력을 갖추는 것보다 좋은 선수 1~2명에게 의존하는 농구를 펼치는 게 편하다. 때문에 매년 상위권 대학은 상위권 대학대로, 중위권 대학은 그들대로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진다. 아마농구 관계자는 "대학농구는 좋은 선수를 5~6명 모은 팀이 2~3명 모은 팀을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 선수들의 개인기량이 과거 선배들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다. 중, 고교 시절부터 많은 대회를 소화하느라 개인기술을 충실히 연마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기량 성장, 조직적인 시스템 구축을 등한시하고 간판선수 1~2명에게 의존하는 일부 대학 지도자들의 노력 부족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학교 정규직 직원 신분의 감독은 1~2개 대회를 망치더라도 쉽게 잘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기량이 아주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조직적인 농구에도 적응하지 못한 대학 졸업생들이 프로에 입문, 극심한 성장통을 겪는 것이다. 대학 시절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던 복잡한 트랩 수비, 로테이션 시스템, 2대2 수비법 등에 적응하지 못해 출전기회가 줄어들고,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진다.
실제 최근 10년간 중앙대, 경희대, 고려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많은 유망주가 프로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빅맨들은 외곽수비력과 중거리슛을 프로에서 연마했고, 가드들은 2대2 공격, 수비법을 프로에서 다시 배웠다. 프로 코치들은 신인이 팀 시스템에 적응해야 할 시간에 기본기를 다시 가르친다. 신인은 신인대로, 프로 팀은 프로 팀대로 손해다. 한국농구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 관계자는 "대학에선 개성이 넘치는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팀 농구에 대한 이해력도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프로에서 적응을 빨리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은희석 감독의 도전
은 감독은 "부임한 뒤 선수 1~2명에게 의존하는 농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선수가 부진하면 또 다른 선수가 활약해서 팀 전력이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이 선수들은 프로에 진출해야 한다. 팀 농구를 알려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대학 선수들에게 프로의 세련된 공수시스템을 최대한 적응시켜서 내보내겠다는 의지. 연세대 정직원 신분이 아닌 은 감독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학농구의 악습을 깨려고 하는 것이다. 일종의 개혁이다.
대학에서 프로가 구현하는 시스템 농구를 완벽히 구축하는 건 쉽지 않다. 입학과 졸업 특성상 멤버가 매년 바뀐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을 갖추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연세대 농구를 보면 지역방어와 더블 팀+로테이션 시스템. 볼 없는 움직임과 함께 스크린을 정확하게 이용하는 공격이 돋보인다. 결국 허훈, 최준용, 천기범 등 간판들이 하루 이틀 부진해도 팀 전력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현재 은 감독이 추구하는 연세대의 시스템 농구가 완벽히 자리 잡힌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프로가 구현하는 조직적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 그는 "부족한 점이 많다. 승부처에서의 집중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당일 개개인의 컨디션, 부담감에 의해 팀 경기력이 좌우되면 안 된다"라고 했다. MBC배 우승의 경우 고려대 이종현이 준결승전서 빠진 반사이익을 봤다. 올 시즌에도 대학농구는 맨 파워를 앞세운 고려대 천하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래서 은 감독은 시스템 농구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려고 한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허훈은 "감독님은 공격에선 개성을 살려주신다. (그의 클러치 능력를 최대한 활용한다) 대신 수비에선 팀 디펜스와 궂은 일을 강조한다"라고 했다. 최준용은 "대학 입학 후 13~14kg 정도 쪘다. 감독님은 파워를 키워야 한다며 직접 영양보충제를 구해서 주셨다"라고 했다. 은 감독은 "모비스 유재학 감독님, 오리온 추일승 감독님에게 자문을 많이 구한다. 유 감독님에게 모비스 페이크 지역방어를 모방해도 되느냐고 여쭤봤는데, 유 감독님이 '그런 것도 알았어?'라며 보완할 점을 설명해주셨다"라고 털어놨다. (은 감독처럼 젊고 경험이 많지 않은 지도자가 선배 지도자들에게 전술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모든 대학이 연세대처럼 시스템 농구를 완벽히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학 별로 수준 편차가 크다. 좋은 선수가 많지 않으면 좋은 조직력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더구나 좋은 선수(대학 레벨에서 농구 이해도가 높은 선수)가 많이 모인 연세대의 경우 타 대학들에 비해 조직적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힐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저학년들의 잠재력은 연세대가 최고"라고 했다. (그래서 대학농구에 스카우트가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연세대의 시스템 농구는 탄탄해질 가능성이 크다. 기대를 거는 농구관계자가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은 감독의 의지와 노력이다. 그가 추구하는 팀과 개인의 조화에 의한 시스템 농구가 자리매김할 경우, 대학농구가 건강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프로 적응시간이 단축되고, 프로 팀들은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결국 대학과 프로가 이상적이고 긴밀한 연계성을 지니게 된다. 자연스럽게 한국농구의 성장 토대로 작용한다.
은 감독과 연세대의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 특히 빅3(고려대 이종현, 강상재, 연세대 최준용)의 프로진출 후 대학농구의 주도권, 패러다임 변화 여부가 주목된다.
[은희석 감독(위), 연세대 선수들(아래), 사진 = 대학농구연맹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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