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최고의 수비수라는 말이 정말 듣기 좋다."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KCC와의 챔피언결정전 기간 수 차례 "대체 불가선수"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조 잭슨 역할은 다른 선수가 대신할 수 있지만, 승현이 역할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승현에 대한 극찬이었다.
추일승 감독 말대로 챔피언결정전 MVP는 이승현에게 돌아갔다. 이승현은 2014년 가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오리온에 지명된 뒤 "KBL의 두목이 되겠다"라는 약속을 단 2시즌만에 지켰다. 동시에 오리온에 14년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안기면서 'KBL 최고의 수비수'라는 타이틀을 공고히 했다. 그의 터프한 골밑수비는 마치 드레이먼드 그린(골든스테이트) 혹은 카와이 레너드(샌안토니오)처럼 숨 막힌다.
▲왜 대체불가인가
왜 오리온에 이승현은 대체불가 선수일까. 일단 오리온에 정통 빅맨이 장재석 뿐이다. 하지만, 장재석은 확실한 주전이 아니다. 결국 오리온 멤버구성상 언더사이즈 빅맨 이승현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추 감독의 '대체불가' 의미를 좀 더 파고 들어보자. 이승현은 6강 플레이오프서 웬델 맥키네스와 로드 벤슨, 4강 플레이오프서 아이라 클라크와 커스버트 빅터, 챔피언결정전서 하승진을 마크했다. 보통 다른 팀에서 이 역할은 외국선수가 맡는다. 더구나 올 시즌 언더사이즈 외국선수가 유입되면서 국내선수가 외국 빅맨을 전담마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현은 시즌 내내 힘 좋은 외국 빅맨들을 막았다. 거의 30분 이상 1대1로 버텨낼 수 있는 내구성을 보여줬다. 197cm에 불과하지만, 유도선수 경험으로 자세가 낮다. 특유의 힘을 바탕으로 좀처럼 밀려나지 않는다. 또한, 상대의 움직임을 역이용, 센스 있게 봉쇄하는 것도 능하다. 자신보다 10cm 이상 큰 공격수들을 효과적으로 막았던 이유.
이승현이 상대 외국 빅맨을 홀로 잘 막아내면서 애런 헤인즈, 시즌 중반 제스퍼 존슨이 골밑 수비 부담을 덜고 공격에 집중했다. 체력적으로 엄청난 이점. 이승현이 굳건히 상대 빅맨을 막아내면서 KBL 경험이 풍부한 헤인즈의 수비센스도 극대화됐다. 이승현의 수비 존재감이 스위치 디펜스를 할 때 미스매치 약점마저 지웠다. 오리온의 골밑 수비 경쟁력은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챔피언결정전서는 하승진을 꽁꽁 묶었다. 다른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안드레 에밋 겹수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공격에선 챔프전의 경우 하승진을 외곽으로 끌어내 외곽포로 공략하는 스트레치4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국내 4번 포워드들 중 최고 수준의 트랜지션을 자랑, 오리온 특유의 얼리오펜스 파괴력을 높였다. 이승현은 결코 수비형 포워드가 아니다. 비단 오리온뿐 아니라 현재 KBL 에서 이승현급 존재감을 지닌 토종 파워포워드는 없다. 그는 특별한 대체불가 포워드다.
▲진화하는 최강 수비수
이승현이 놀라운 건 지난 2년간 고속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가 고려대 시절 유재학 감독이 이끌었던 성인대표팀에 2차례 낙마한 사실은 유명하다. 국제무대에서 197cm 포워드는 외곽 공격수를 맡아야 하는데, 이승현의 스피드와 외곽 수비력으로는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대학 시절 유 감독의 냉정한 평가였다. 더구나 대학 시절에는 외곽슛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에 입단하면서 외곽슛 테크닉을 많이 끌어올렸다. 여전히 점프를 거의 하지 않는 세트슛이 대부분이지만, 정확성만큼은 수비수가 견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KCC, 동부 등 빅맨들이 많은 팀을 상대로 스크린을 받은 이승현의 외곽포는 치명적이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서 수비력만큼 외곽포의 날카로움도 인정 받았다. 물론 여전히 공격 루트가 다양한 편은 아니다. 향후 과제다.
수비력도 세부적인 진화가 있었다. 학습효과가 남다르다. 이승현은 "아시아선수권 때 나보다 20cm 큰 하메드 하다디(218cm)를 막아본 게 큰 도움이 됐다. 키 큰 선수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감이 왔다"라고 했다. 또한, "유니버시아드에서도 큰 선수를 많이 맡았다. 독일 센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의미 있는 경험을 자신의 경쟁력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구체적으로 추 감독은 "첫 시즌에는 자신의 공격수만 잘 맡았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자신의 공격수도 잘 맡으면서 주위 상황을 체크하면서 움직인다"라고 했다. 수비 센스가 좋아졌다는 뜻이다. 실제 챔프전서 하승진을 맡으면서도 에밋이 골밑으로 치고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도움수비를 들어가기도 했다. 오리온 특유의 올 스위치 디펜스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한다. 내, 외곽수비 폭이 넓어졌다. 추 감독은 챔프전은 물론 시즌 내내 이승현을 믿고 디테일한 수비 플랜을 짰다. 오리온 특유의 공격농구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이승현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한다. 지난해 7월 유니버시아드를 시작으로 아시아선수권, 2015-2016 정규시즌과 6강, 4강 플레이오프, 챔프전을 거치며 거의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형진 부단장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당시 다쳤던 발목에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도 했고, 주변의 편견과 싸우느라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챔프전 우승 뒷풀이에서 만난 이승현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최고의 수비수라는 말이 너무 좋다. 대학시절 우승을 많이 해봤지만, 프로에서의 우승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라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승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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