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다가오는 것들’의 오프닝신은 이 영화가 던지는 주제를 함축한다. 비가 쏟아지는 배 위에서 남편과 두 아이는 밖에서 경치를 바라보고 있고, 50대 철학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안에서 학생 리포트를 채점하고 있다. 리포트의 주제는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하가’. 나탈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점수를 매긴 뒤 밖으로 나간다. 나탈리는 과연 남의 입장을 이해할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시 관객에게 돌아온다. 당신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나탈리의 삶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다.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은 어느날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곁을 떠난다. 불안증을 겪는 어머니는 자살 시도를 하다가 요양원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시위를 하며 나탈리의 정치적 입장을 비판하고, 과거의 제자 파비앙은 버릇없는 말로 나탈리에게 상처를 준다. 출판사는 철학 교재의 개정판을 내면서 나탈리와 계약을 거부한다.
나탈리 주변의 타인들은 대부분 ‘대립관계’로 설정돼있다. 사르트르 식으로 얘기하면, 그에게 ‘타인은 지옥’인 상황이다. 헤어진 전 남편과 마지막으로 해안가 별장을 찾았을 때, 그는 핸드폰이 터지는 곳을 찾다가 맨발로 뻘밭까지 걸어간다. 그는 두 발이 푹푹 빠지는 인생의 고난길을 걷고 있다. 나약한 사람은 삶의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과 대립관계에 있는 타인을 증오하고 미워하지만, 강인한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삶의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는다.
서른 다섯 살의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철학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탈리는 남편의 바람과 제자의 도발, 출판사의 계약해지 등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교사로서 책을 탐독하며 삶의 중심을 잡는다. 거센 바람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나탈리는 레비나스의 철학책을 읽는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철학’을 확립했다. 그는 타자를 ‘나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서양철학사는 진리와 주체를 강조하느라 끊임없이 타자를 제거했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벌거벗음 가운데 나타나는 얼굴’이라고 했다. 타자가 누구든, 그의 입장을 존중해야한다는 뜻이다.
나탈리는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오히려 ‘내면의 성숙’으로 나아간다. 자신과 다른 남의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평온한 삶을 영위한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인생의 방파제였다.
오프닝신의 카메라는 나탈리의 뒷모습으로 보여주며 서서히 다가가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담았다. 라스트신에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탈리 앞모습을 보여주며 서서히 뒤로 물러난다.
나탈리는 답을 찾았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살아가면서도 타인을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앞으로 다가오는 것들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배워야할 철학적 자세다.
[사진 제공 = 찬란]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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