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잠실학생체 최창환 기자] “모두 안 될 거라고 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항상 겸손한 선수가 되겠다.”
지난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6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 등 이른바 ‘BIG.3’라 불린 이들 못지않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가 있었다. 2라운드 9순위로 서울 SK에 지명된 일반인 참가자 김준성(24, 177cm)이었다.
명지대 출신 김준성은 감정이 북받친 듯, 단상에 오른 후 울먹이며 소감을 전했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지만,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소중한 기회를 준 박상관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힘들게 운동한 놀레벤트 이글스 선수들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재작년 드래프트에서 떨어졌을 때 아버지가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누워계셨다”라며 울먹인 김준성은 “열심히 하겠다. SK 관계자들, 저를 가르쳐준 모둔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항상 겸손한 선수가 되도록 하겠다.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김준성의 농구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2014 신인 드래프트서 모든 팀들로부터 외면 받았고, 공교롭게도 그날은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받은 날이었다. “아버지는 떨어지는 나를 걱정하셨고, 나는 아버지 건강을 걱정했다. 중간에서 어머니가 정말 많이 우셨다.”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후 김준성은 농구공을 내려놓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어린이 농구교실에서 주말강사도 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후에는 장례식장 매니저도 맡았다.
하지만 김준성이 결국 다시 돌아온 곳은 코트였다. 명지대에서 잠시 코치 경험을 쌓았고, 이후에는 실업팀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김준성은 “아버지가 다시 드래프트에 도전할 수 있게 용기를 주셨다. ‘실패하더라도 네가 내 아들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김주성은 최근까지 놀레벤트 이글스라는 실업팀에서 운동을 해왔다. 전국체전에서 강호 연세대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사실 환경은 좋지 못했다. “전용체육관이나 숙소도 없다. 전국의 고교팀과 연습경기를 했고, 테이핑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덕분에 전국체전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김준성의 말이다.
김준성은 이어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2라운드에 지명됐다. 내 이름이 불린 것인지도 몰랐고, 확인 이후에는 얼떨떨했다”라고 말했다.
김준성을 지명한 문경은 감독은 사실 2년 전에도 김준성에 대한 분석을 마친 터였다. 문경은 감독은 “2년 전에는 재능 있지만, 슛이 안 좋다는 게 전력분석팀의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놀레벤트 소속으로 뛴 경기 기록지를 보니 모두 20득점 이상을 올렸더라”라고 말했다.
문경은 감독은 이어 “나도 현역 때 슛 좀 던져본 사람인데, 웬만한 노력으로는 슛이 그렇게 좋아질 수 없다. 노력을 많이 한 게 보였고, 트랜지션 상황에서 안정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SK라면 ‘연고지 서울’, ‘화려한 농구’라는 이미지가 강해 부족한 절실함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김선형의 뒤를 받쳐주는 가드로 주목해보겠다”라고 덧붙였다.
김준성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자신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가 전기회사에서 검침을 하시는데, 어릴 때부터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경기장을 오셨다. 내가 사회생활을 해보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큰 힘이 됐고, ‘포기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도 하게 된 계기였다.” 김준성의 말이다. 굴곡 많았던 농구 인생을 거쳐 프로선수가 된 김준성이 앞으로는 꽃길을 걷게 될지 기대해본다.
[김준성. 사진 = 마이데일리DB]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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