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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요즘 젊은 선수들이 다르긴 달라요."
KEB하나은행 가드 김지영의 돌풍은 스타기근, 경기력 하향평준화에 시달리는 WKBL에 반가운 단비다. 그는 인성여고를 졸업, 2년차를 맞이했다. 확실히 비슷한 연차의 또 다른 젊은선수들과는 좀 다르다.
11월 14일 KDB생명전서 WKBL 최고가드 이경은을 유로스텝으로 따돌린 뒤 더블클러치 레이업을 성공한 건 아직도 농구관계자들과 팬들에게 회자된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좋다. 임팩트는 다소 떨어져도 경기력을 지켜보면 팀에 공헌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WKBL 젊은 선수들이 유로스텝과 더블클러치를 거의 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 정도의 기술을 실전서 발휘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러나 김지영을 제외한 WKBL의 모든 젊은 선수가 더블클러치와 유로스텝을 할 줄 모르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실전서 개인이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이면 종종 지도자에게 질책을 받았다. 멋 내지 말고 팀에 충실히 융화되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남녀 모두 중, 고교에서 기본기와 함께 화려한 기술을 배우는 시대다. 일부 젊은 지도자들은 실전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조직력은 중요하다. 이기는 농구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농구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어느 수준에서 답보하는 건 개인의 개성을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억누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농구관계자는 "유로스텝과 더블클러치를 화려하다고 볼 필요도 없다. 농구 강국에선 흔히 사용하는 기술이다. 유망주들이 그런 기술들을 실전서 자꾸 해봐야 자기 것이 된다. 블록도 당해보지 않고, 실책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자기 기술이 되겠나"라고 꼬집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농구는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김지영이 졸업한 인성여고는 KT&G 출신의 안철호 코치가 기본기와 심화 기술을 착실히 가르친다는 평가다. 김지영도 "고교 시절부터 죽도록 연습했다"라고 회상했다. 모비스 출신의 하상윤 코치도 광신중에서 남자 유망주들에게 기본기와 심화 테크닉을 잘 가르친다는 호평을 받는다.
요즘에는 프로에서도 어떤 기술을 제대로 할 줄 알면 실전서 적극적으로 시도하라고 독려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결국 이 대목에서 김지영이 다른 유망주들과 다른 이유가 발견된다. 멘탈이다. 어떤 기술을 할 줄 알기만 하고 실전서 실패를 의식, 주저하는 것과 실전서 실패해도 자꾸 시도하는 자신감은 다르다. 후자가 김지영 돌풍의 핵심이다.
많은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하지만, 잠재력을 폭발하지 못하고 조기에 그만두는 유망주도 많다. 많은 지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좋은 멘탈은 타고 나면서도 자신과의 싸움이다.
김지영은 14일 KDB생명전 이후 압도적인 임팩트를 남긴 경기는 없었다. 지난달 30일 우리은행전서는 WKBL 최고가드 박혜진에게 완벽히 압도 당했다. 하지만, 김지영은 주눅 들지 않았다. 초반부터 시도한 돌파가 우리은행 존쿠엘 존스에게 연이어 블록 당했지만, 틈이 날 때마다 림을 겨냥했다. 그렇다고 팀 공격 밸런스를 깨트리지도 않았다. 박혜진조차 "잃을 게 없어서 자신 있게 한다는 김지영의 말에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김지영이 잘하더라. 발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쁜 뜻이 아니라 당차게 잘 하더라"고 호평했다. 위 감독은 김지영의 돌풍은 부상자가 많은 하나은행 사정과 김지영의 재능 및 훌륭한 멘탈이 융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 감독은 흥미로운 발언을 이어갔다. "감독들이 신인들을 데뷔하자마자 많이 뛰게 하지는 않는다. 고졸이 프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히 공격에서 재능이 좋아도 프로에서 원하는 수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용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김지영이나 이주연(삼성생명)을 보면서 신인들을 저렇게 쓸 수도 있구나 했다"라고 털어놨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고와 WKBL의 수준 격차는 크다. 위 감독도 그렇고, 전통적으로 WKBL 감독들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저연차들의 출전 기회를 조심스럽게 부여했다. 김지영도 지난해 2라운드 9순위로 입단했다. 보통 이 정도 순위의 신인들은 금방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김지영도 공격보다 수비에 약점이 있다. 공격수를 잘 따라다니지만, 요령이 조금 부족하다는 게 이환우 감독대행 평가다. 하지만, 이 감독대행은 김지영의 장점을 높게 평가, 실전서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면서 잠재력을 터트리도록 독려한다. 일정 부분은 성과를 봤다.
이 부분이 위 감독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나부터 바뀔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자기 주장도 강하고 당차다"라고 했다. 그동안 위 감독은 공수에서 준비가 덜 된 젊은 선수들이 실전서 부진, 자신감을 잃는 걸 우려해 신인 및 저연차들을 조심스럽게 기용해왔다. 하지만, 위 감독은 김지영의 돌풍을 보면서 젊은 선수들의 장점을 보고 기회를 주고, 또 독려하는 리더십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찬 젊은 선수들은 실전서 실패해도 의외로 큰 타격이 없다. 유망주들이 포텐셜을 빨리 터트리고 팀 전력도 강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위 감독은 "팀 사정이 있다. 우리 팀은 장신자가 필요해서 작년에 김지영을 지명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팀마다 선수기용 원칙은 다르다. 다만, 김지영처럼 당차고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도하고 팀 전력에 녹이는 방법을 다양하게 생각할 필요는 있다. 그런 점에서 위 감독이 받은 신선한 충격과 사고전환 시도도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 평생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 지도자도 많다.
이환우 감독대행이 김지영의 수비 약점을 크게 의식했다면, 지금의 '지염둥이' 김지영은 없다. 단순히 승부처서 유로스텝과 더블클러치 사용을 멋을 내는 게 아니라면서 요즘 농구인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KBL과 WKBL 지도자들은 김지영처럼 당찬 젊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실전서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농구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김지영.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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