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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한혜린을 처음 본 건 아마 201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SBS 드라마 '신기생뎐'에 금라라 역으로 출연하던 즈음이었다. 우연히 대화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는데, 그때 느꼈던 인상 중 지금까지도 가장 선명했던 게 '마치 진짜 금라라와 얘기하는 것 같다'는 기억이었다.
5년여 만에 다시 만난 한혜린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더 큰 소리로 웃었고, 무엇을 물어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팽팽한 긴장감이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진 느낌이었다.
"쉴 때요? 요즘은 밖으로 잘 돌아다녀요. 학교 친구들 만나고 사람들 만나서 밥 먹고 술도 마시고 얘기하고요. 얼마 전에는 우희랑 철원으로 캠핑 다녀왔어요. 우희가 '덕혜옹주'를 안 봤다고 해서 같이 봤어요. 사촌인데, 마치 제 친동생 같아요."
우희는 걸그룹 달샤벳 멤버 우희를 말했다. 한혜린의 이모의 딸이다. 세 살 터울로 가수와 배우라 활동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연예계 생활에서 떠안는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의지하는 사이다.
설렌 눈빛의 한혜린은 우희 이야기를 신나서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한번은 앨범 콘셉트가 섹시라고 하길래 제가 '섹시는 당당함이야'라고 얘기해줬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품을 맡게 되면, 그 캐릭터에 완벽하게 빠져든 채 살았다는 한혜린이다. 그녀의 이름을 알린 '신기생뎐'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상도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감정 소모도 많고, 빠져 나오기도 힘들고요. 너무 원망스러웠던 게 연기학에선 캐릭터에 몰입하고 집중하고 동화되는 것만 알려주지, 빠져 나오는 방법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우희가 '언니는 한예린이고, 그 캐릭터가 아니야'란 얘기를 해줄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번 '불어라 미풍아' 때는 집중해서 촬영하고, 끝나면 바로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했어요."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의 하연(한혜린)은 짝사랑하는 남자 이장고(손호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짓으로 하반신 마비 연기를 하며 속이는 질투심에 눈 먼 여자였다.
"짝사랑 해본 적 있냐고요? 음, 하연이처럼 그렇게 힘든 짝사랑은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제가 하연이었다면 남자가 장고처럼 굴면 빨리 체념했을 거예요. 하연이가 뭐가 아쉬워서요." 입을 샐쭉거리며 웃는 얼굴은 금라라도, 하연도 아닌 한혜린이었다.
'혜린'은 한글 이름이었고, 부산 해운대 쪽에서 살다 중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으며, 여고 시절 새침한 첫인상이 오해를 일으켜 싸우다 친해진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활동을 몇 년 쉬던 시절은 "대학교 다니면서, 너무 좋은 친구들을 얻어서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을 때에는 "바로 요즘"이라고 말했다.
"연기에 너무 깊게 빠져 있을 때는 외로웠어요. 마치 컴컴한 황무지에 저 밖에 없고, 어두운 길을 비춰서 혼자 캐릭터를 찾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외로움을 털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옆에서 절 빠져 나올 수 있게 하는 가족과 우희도 있어서 든든하고, 일상을 찾아가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밤샘 촬영하고 집에 돌아오면 1, 2kg가 빠져있을 때도 있었거든요. 그 정도로 빠져있었죠. 근데 지금은 좋아요. 제 일상과 연기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해요."
한혜린에게 "'신기생뎐'은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을 들으니, 5년 전 한혜린의 얼굴이 기억나며 어쩐지 이제는 안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제가 했던 작품 중 하나요. 제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하나요."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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