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아, 실수했어요."
기자들 앞에서 연기를 마친 류승범이 스태프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만면에 주름이 한 가득 생기는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다.
연극 '남자충동'에서 류승범은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를 동경하며 조직을 이끄는 남자이자, 도박중독자 아버지의 폭력 아래에서 자란 아들 장정 역을 맡았다. 2000년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류승범의 특기였던 거친 남자다.
그런 류승범이 시연 중 대사를 되씹는 실수를 했던 것이다. 14년 만에 돌아온 대학로 무대에 그도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승범의 연기는 펄떡였다. 희번덕거리며 도무지 주눅들 줄 모르는 매서운 눈빛과 쩌렁쩌렁 무대를 때리는 목소리에 그만 그의 실수 따위 잊고 류승범에게 빠져들었다. 연기가 살아 움직였다.
류승범은 14년 전 호기심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면, 이제는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에 도리어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게 관객들이다. 극장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던 류승범의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까닭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TV나 영화관과 달리 배우의 생생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카메라를 거치지 않고 배우의 살아있는 눈빛을 마주할 수 있고, 배우가 내뿜는 언어를 고스란히 빨아들일 수 있는, 배우와 관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실수를 해도 거르거나 보정하지도 않는다. 그것도 연극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TV를 틀었더니 연기보다 인기로 유명한 배우가 잔뜩 힘이 들어간 눈빛에 뻣뻣한 목소리로 한껏 멋있는 척 연기하고 있었다.
실수했다며 씨익 웃던 류승범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이제 인기만 있는 배우들의 지루한 연기에 따분해진 시청자들도 과감히 TV를 끌 수 있게 되었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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