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아주 긴 변명’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검은색 스웨터와 커피 색깔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2일 계동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카모메 식당’ 포스터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일본감독을 인터뷰하기엔 최적의 공간이었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 출신이다. 대학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놀기만 했다(웃음). 책을 많이 읽고, 사진을 찍었다. 입학할 때는 일본문학 영향을 크게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단 한 명의 작가를 꼽으라면 다자이 오사무이다. <인간실격>이 유명한데, 이 소설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어둡다. 어떤 단편은 단 한 문장으로 웃긴다. 코믹한 작품이 많다. 독자를 확 끌어 당긴다. 끝까지 웃기다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울린다. 내 영화의 오프닝신과 엔딩신은 모두 다자이 오사무의 영향을 받았다.
(‘아주 긴 변명’의 오프닝신에서 부인은 남편의 머리카락을 깎은 뒤에 집을 나서면서 ‘뒷정리 좀 부탁할게’라는 말을 남긴다. 이 영화는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편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복습하는 이야기다.)
-한국문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이창동 감독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좋아한다. 최근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인상깊게 읽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나도 최근에 추천을 받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서양문학과 달리, 한국문학은 친숙하게 다가온다. 기회가 되면 한국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들고 싶다.
-‘아주 긴 변명’은 유명 작가인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다가 같은 처지의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 가족을 만나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이야기다. 사치오는 자신이 빠진 채로 찍혀 있는 요이치 가족과 죽은 아내의 사진을 선물 받는다. 그가 사진을 받는 장면은 앞으로 요이치 가족과 늘 함께 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히고, 사진 속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도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무척 기쁘다. 그 이상의 해석은 없다. 사치오는 원 안에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이치 가족과의 사이에서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행복을 느낀다. 아주 작은 성장이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다. 취재와 상상력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작품마다 다르다. ‘아주 긴 변명’은 취재 비율이 낮은 편이다(이 영화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고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극중 사치오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요이치 집에서 머무르는데, 이것은 내가 직접 취재한 부분이다. 나는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어린 자식을 키워본 경험이 없다. 아이가 있는 친구 집에 며칠씩 머무르면서 함께 생활했다. 어떤 아이는 ‘저 사람 누구인데 같이 자는거야’라고 묻기도 하더라(웃음). 영화 속 사치오처럼 자전거를 탔다. 실제 아이를 쫓아가기 위해 전력을 다해 페달을 밟기도 했다. 함께 생활하다 보니까 애정이 생기더라.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아이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외에 지켜야할 존재가 있다는 것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을 취재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상상의 산물이다.
반면, ‘우리 의사 선생님’은 취재를 굉장히 많이 했다. 실제 의사를 따라다니며 디테일하게 의사, 병원의 세계를 배웠다.
-당신은 언제나 인간의 깊음 마음 속을 응시하고 탐구한다. 당신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남을 알기는커녕, 내 자신도 잘 모른다.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잘 모르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데뷔작 ‘산딸기’와 ‘유레루’는 모두 내 꿈이 모티브가 됐다. 꿈 속에서 늘 궁지에 몰린다.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곧잘 한다. 평소라면 되고 싶지 않은 인간의 행동을 취한다. 눈을 뜨면, ‘내가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하고 깜짝 놀란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 늘 ‘내가 이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영화에서 ‘타자(他者)’가 등장한다. 사치오가 내 안의 타자를 만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처음 들었다. 앞으로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하겠다(웃음). 그것 역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발견하게 된다.
-전작들에 비해 음악에 변화를 준 것 같다.
맞다. 나는 리듬감이 살아 있는 음악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현악기 중심의 차분한 분위기로 변화를 줬다. 일본의 유명한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나카니시 토시히로와 처음으로 같이 작업했다.
-차기작 계획은.
‘아주 긴 변명’은 사적인 이야기다. 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다. 그래서 다른 작가의 소설을 각색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데뷔 이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원안을 영화로 만들게 된다.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는가.
스포츠를 즐겨본다. 야구를 좋아한다. 사치오의 이름은 히로시마 카프의 전설적인 선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야구 외에도 모든 종목을 다 섭렵한다. 세계 대회의 결승전은 모두 본다(웃음). 스포츠를 보는 이유는 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영화 생각 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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