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켄 로치 감독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지난해 12월 8일 개봉한 이래 지금까지도 상영되고 있다. 2월 26일 현재까지 8만 9,026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5개 스크린에서 하루 6회 상영하고 있지만, 관객은 꾸준히 극장을 찾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복지제도의 문제점과 관료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영화다. 심장병을 앓는 59세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관공서의 융통성 없는 매뉴얼과 모든 것을 서류로만 처리하려는 공무원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
일부 대선 후보들은 이 영화를 보고 국가가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하며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치인이야 표를 의식해 영화를 봤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서울시 구청 공무원들이 단체관람하고 있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영화사 측은 단체관람을 문의하는 공무원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면서 관료사회는 ‘복종과 기계와 추상의 세계’라고 갈파했다. 이 영화는 카프카의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며 공무원들의 무능성과 무사 안일주의 등을 비판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단체관람하는 공무원은 ‘내가 혹시 영국 공무원처럼 매뉴얼만 중시하며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민원인의 입장에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힘 없는 타인을 소중히 배려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철밥통’으로 매도 당하는 경향이 있다. 정시출근, 정시퇴근에 짤릴 염려 없이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이후에는 연금으로 안정되게 산다는 것이 매도의 이유다.
일부 공무원이 시민의 어려움과 아픔을 나 몰라라 할 수 있지만, 대다수 공무원은 직업윤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단체관람하는 공무원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제7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국 영화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영국 정부에 의해 수치스럽고 잔인한 잔학 행위를 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켄 로치의 비관적 전망은 쓸쓸하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그는 이런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들었다.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단체관람하는 것은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관료주의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시민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공무원들이 더 많아진다면, 세상은 한층 밝아질 것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국영화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 사진 제공 = AFP/BB NEWS,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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