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김종국 기자]"그 동안 각급 대표팀이 수많은 원정경기를 치렀지만 이런 경기장 분위기는 처음이다."
여자축구대표팀이 적지 평양 한복판에서 열린 북한과의 맞대결에서 값진 무승부와 함께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 획득 목표를 달성했다. 북한 평양에서 지난 3일부터 11일까지 열린 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에 출전한 여자대표팀은 지난 7일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의 맞대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북한에 뒤져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윤덕여호는 북한을 상대로 혈투를 펼친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다.
남북전이 열린 김일성경기장은 여자대표팀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북한 관중들은 경기시작 2시간 이전부터 경기장 옆에 위치한 개선문 광장 주위로 몰려들었다. 경기장 내부 분위기는 살벌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대표팀이 지난 1990년 남북통일축구를 평양에서 치른 적이 있었지만 친선경기 성격이었던 그 당시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김일성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2500명의 북한 관중들은 금색 종이나팔과 은색 짝짝이를 활용해 소음에 가까운 응원을 펼쳤다. 일방적으로 북한을 응원했고 한국 선수단에게는 적대감을 드러냈다. 관중석 곳곳에는 인공기가 펄럭였고 파도타기 응원마저 절도있게 진행됐다. 경기장은 축구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친다기 보다는 북한의 정치적 행사 한가운데에서 태극낭자들이 경기를 치른다는 느낌이 강했다.
한국과 북한 선수단은 경기시작전부터 신경전을 펼쳤다. 한국 선수들이 경기 입장전 터널에서 "지지 말자"고 외치자 이를 지켜본 북한 선수들은 "죽고 나오자"며 맞받아쳤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남북전에 앞서 북한선수들은 경기장 터널에서 "찢어 죽이자"는 과격한 표현을 하기도 한다.
선수단 입장 이전부터 과열된 양팀 선수들의 분위기는 경기장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례적으로 평양 한복판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된 후 경기가 시작됐고 북한은 전반전 초반부터 거친 플레이로 한국 선수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반 5분에는 양팀 선수들이 단체로 신경전을 펼쳤고 관중석 역시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 위정심의 페널티킥을 선방하는 과정에서 골키퍼 김정미(인천현대제철)가 북한 선수에게 얼굴을 가격당했고 양팀 선수들은 서로 몸을 밀치며 기싸움을 펼쳤다. 4만명이 넘는 북한관중들이 내뿜는 독특하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윤덕여호 선수들은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초반 뿐만 아니라 전후반 90분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필드위와 관중석에서 유지됐다. 공격수 정설빈(인천현대제철)은 어깨가 빠진 상황에서도 전력 질주를 하며 팀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심판 판정 역시 홈팀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언됐다. 양팀 선수들이 볼경합 과정에서 거친 플레이를 펼치면 파울과 함께 대부분 북한의 프리킥이 주어졌다. 한국 선수가 태클 후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쓰러진 상황에서도 북한의 드로인 공격이 진행됐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골을 허용하며 고전했지만 후반 30분 장슬기(인천현대제철)가 동점골을 이끌어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한국의 승리와 다름 없는 무승부 상황이 이어졌고 이날 경기 인저리타임은 7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졌지만 결국 대표팀은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경기 후 양팀 선수단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북한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는 모습과 함께 결과에 대한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한 반면 한국 선수들은 종료 휘슬 직후 환호와 함께 서로를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여자대표팀의 평양 남북전은 국내에 중계가 되지 않았다. 평양에 고립됐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대표팀 선수들은 4만명이 넘는 북한관중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힘겨운 싸움을 펼쳤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위압적인 분위기에 주눅들지 않았고 역사적인 평양 원정 경기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여자대표팀의 평양 원정 북한전 경기장면과 북한관중. 사진 = AFPBBNews]
김종국 기자 calci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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