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이제 봐줄만 해졌대요.”
1998년 데뷔해 올해로 20년차 배우가 된 송일국이 ‘이제 봐줄만 해졌다’는 칭찬에 좋아한다. 그간 드라마, 영화, 연극을 넘어 뮤지컬까지 도전했던 송일국인데 이제야 비로소 연기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송일국에게 작은 칭찬이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번 연극 ‘대학살의 신’이 그의 첫 소극장 공연 도전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안고 소극장 무대에 섰기에 연습부터 공연을 올리기까지 그의 고민은 상당햇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지식인의 허상을 유쾌하고 통렬하게 꼬집는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소년의 이빨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 때린 소년의 부모인 알렝과 아네뜨가 맞은 소년의 부모인 미셸과 베로니끄의 집을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극 중 송일국은 자수성가한 생활용품 도매상으로 확고한 신념을 지닌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공처가이자 중립을 지키는 평화주의자 미셸 역을 맡아 캐릭터와 꼭 맞는 일상연기를 통해 능청스러운 모습부터 본심을 드러낸 후반부의 반전 연기까지 선보이고 있다.
송일국은 앞서 연극 ‘나는 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했다. 이번 ‘대학살의 신’가지 총 세 작품을 한 그는 우연찮게도 세 작품 모두 모든 배우들이 꿈꾸는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다.
“아내가 농담처럼 ‘당신은 누가 하늘에서 도와주는 것 같다’고 한다”고 운을 뗀 송일국은 “사실 딱 소극장이 하고 싶었다. 친구가 ‘일국이는 아마 가벼운 터치의 소극장 공연을 하면 도움이 많이 될 거다’고 조언해 안 그래도 소극장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송일국의 상대 역은 공연계에서 알아주는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은 “세분 다 만나기 쉽지 않은 배우들”이라며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일단 소극장 작품에서는 배우로서 역량을 가장 많이 뽑아내야 해요. ‘나는 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모두 마이크를 썼는데 ‘대학살의 신’은 진짜 육성으로 말하는 첫 번째 작품이죠. 배우의 역량만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작품이에요. 무대 전환도 없고 암전도 없고 오로지 배우 4명의 호흡만으로 이루어지는 거죠. 정말 많이 배웠어요.”
많이 배운 만큼 걱정도 많았다. “내 숙제가 저 세분들 사이에서 살아 남는 거였다.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사이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이었다”고 고백한 그는 “묻힐까봐 걱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단 기본적으로 소극장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나는 너다’ 할 때 객석에 있는 관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대사를 잊은 적이 있어요. 그러니 소극장은 얼마나 더 큰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었겠어요. 연기는 둘째 치고 대사가 안 들릴까봐 걱정됐죠. 육성에 대한 공포감을 극복하는 게 숙제였어요. 그래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치며 연습했어요. 다른 세 배우들의 두 배 성량으로 연습한 거예요. 소극장 무대에서 소리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은 크게 소리 내고 낮춰가는 게 필요했어요.”
고민은 송일국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 역 이지하는 송일국이 어느 정도 발성 문제를 극복하고 문제 없이 공연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든 뒤 송일국에게 진심을 털어놨다.
“이지하 선배가 술 들어가니 진심을 얘기하시더라고요. ‘사실 첫 리딩 할 때 답이 안 나와서 날 보고 도대체 저 인간 데리고 어떻게 공연하지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공연할 때쯤 되니까 봐줄만 하게 됐다’고. 최고의 칭찬이었죠. 상대역이기도 하고 워낙 연극 경험이 많다 보니까 연극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전체를 보는 눈이 확실히 좋으시더라고요.”
베테랑 선배들을 따라가기 위해선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 영상을 모두 촬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그야말로 이것저것 다 해봤다. “이게 미쳤나 싶을 정도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기 위해 연습 때 정말 별짓거리를 다 해봤다”고 말 할 정도.
“초반에 연습할 때 솔직히 짜증났어요. 선배 세 분은 다른 세상 사람들 같을 정도로 잘 하시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다행히 노력하다 보니까 시작까지는 올라가게 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그분들 시작점에 서니까 그 분들은 더 올라가긴 하셨지만요.(웃음) 거기까지도 또 따라가야죠. 짧은 시간에 두려움을 극복한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굉장히 커요. 발성도 좋아졌고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면 웃기지만 ‘풀어지는 것도 되는구나’ 싶은 마음에 정말 좋아요.”
연극 ‘대학살의 신’. 공연시간 90분.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MD인터뷰②]에 계속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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