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최희서(30)로 말할 것 같으면, 관객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드는 배우다. 영화 '박열'을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검색창에 '최희서' 이름 세 글자를 적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 역할을 맡아 인상 깊은 열연을 펼쳤다.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의 동지이자 연인으로서 그 못지않게 존재감을 발휘, 영화팬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9년여간 쌓아온 내공이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박열'은 준비된 배우 최희서에게 온 기회였다. 감히 그가 곧 가네코 후미코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뜨겁고도 치열한 청춘을 보냈고 지금도 그러하다.
"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연기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석 달 이상 쉰 적이 없어요. 'Now or Never'(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오디션 공지가 뜨면 '내야 하는데' 생각하기도 전에 지원했죠. 하하. 그때 영화사가 몰려 있는 강남구 일대를 돌아다니는 게 하루일과였어요."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최희서는 "결혼식 하객, 영어 과외, 번역 아르바이트 등을 했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최희서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화려한 스펙으로 인해 오디션장에선 "연기를 왜 하세요?" 하는 질문을 빈번히 받기도 했다. 그는 학창 시절 일본,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일본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5개국어에 능통하다. 2008년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공연예술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인 최초다.
"그런 곱지만은 않은 시선이 너무 싫었어요. 이대로 그만둔다면 예상했던 대로라고 볼까 봐 오기를 품기도 했죠.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래서 독립영화, 연극 등 계속해서 도전했어요."
그렇게 꿋꿋하게 긴 무명 터널을 걸어간 끝에 운명처럼 영화 '동주'가 다가왔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동주' 각본가이자 제작자 신연식 감독을 처음 마주치게 되고, 이는 결국 '동주' 쿠미 역할 그리고 '박열' 캐스팅으로까지 이어졌다.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는 데는 단 여섯 신이면 충분했다. '동주'에서 짧은 분량임에도 그 이상의 역량을 발휘했다. 이준익 감독은 그런 최희서를 일찌감치 가네코 후미코 역할로 눈여겨봤다. '동주' 촬영 당시 넌지시 '박열'에 대해 언급했다.
"이준익 감독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가네코 후미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어요. 곧바로 서점에 가서 그의 자서전을 읽었죠. '이 역할을 맡는 배우는 행복하겠다' 싶더라고요. 분명 비중이 큰 주연일 테고 감히 제가 맡을 것이라는 가정도 못 했죠. '동주'로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에게 호평을 받을 때도 '박열' 캐스팅은 기대를 안 했어요. 8, 9년째 낙담을 하면서 버티다 보니까 실망감을 갖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더라고요. 피폐해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웬만하면 기대를 안하게 된 거 같아요. 절망적이었던 게 아무리 연습을 열심히 해도 100% 섭외가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간절히 바라면서도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던 최희서.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그가 전쟁터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는데 터득한 방법의 하나였다.
그러나 최희서가 아니라면 그 누가 후미코를 해낼 수 있겠는가. 이준익 감독은 "후미코가 가진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여배우로 최희서의 캐스팅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직접 대본의 지문을 채우고, 대사를 번역하고, 자료조사를 하는 등 스스로 후미코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영화 개봉 이후 "진짜 일본인인 줄 알았다"라는 관객들의 호평일색이다.
"'박열'은 우리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후손들에게 보여줘도 창피하지 않은 작품이에요."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메가박스 플러스엠]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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