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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덩케르크’는 전쟁영화가 아니다. 전쟁영화는 아군과 적군이 일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거나 적지에 뛰어들어 임무를 수행는 과정을 다룬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데도, 독일군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덩케르크’에서 독일군과의 전투는 중요하지 않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타인의 생명을 지켜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덩케르크’는 다가오는 적의 위협에 맞서 인류애를 잃지 않고 탈출하는 군인들을 다룬 위대한 생존드라마다.
1940년 5월, 40만명에 육박하는 연합군은 독일군의 기세에 눌려 프랑스 해안가 덩케르크에 고립된다. 독일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전투기는 폭탄을 투하하고, 잠수함은 어뢰를 발사하며 연합군을 사지로 몰아 넣는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영국은 해군, 공군, 그리고 민간선박을 동원해 탈출 작전에 나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플롯의 마술사’로 불린다. 장편 데뷔작 ‘메멘토’에선 조각난 기억을 재구성했고, ‘인셉션’에선 꿈과 기억의 연금술을 펼쳤다. ‘인터스텔라’는 어떠한가.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지구와 우주의 시공간을 바늘자국 없이 연결하는 놀라운 신공을 발휘했다.
그는 ‘덩케르크’에서 보이지 않는 독일군에 포위된 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해안가의 일주일,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자신의 보트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선장(마크 라이런스)의 하루, 독일 전투기를 공격해 추락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스핏파이어 조종사(톰 하디)의 한 시간이라는 세 가지 시간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지상 최대의 철수작전을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세 가지 시간대는 일주일, 하루, 한 시간으로 줄어들며 당시의 숨막혔던 긴장을 팽팽하게 조인다. 각각의 상황은 극 후반부 어느 지점에서 한 곳으로 수렴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육지, 바다, 하늘의 시점으로 강렬한 서스펜스를 체험케하게 된다.
아이맥스 필름과 카메라로 담아낸 영상은 흡사 현장에 있는 듯한 극도의 몰입감을 자아내고, 전쟁 당시 실제 사용한 듯한 선박, 구축함, 스핏파이어, 그리고 해안가 잔교 등은 생생한 리얼리티를 빚어낸다. 시계 초침과 보트 엔진 소리를 섞은 한스 짐머의 음악은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지며 서스펜스를 강화한다.
해안가의 군인 역을 맡은 해리 스타일스, 핀 화이트헤드 등 신인부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크 라이런스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의 호연도 잊히지 않는다. 특히 톰 하디는 좁은 전투기 안에서 얼굴 표정 만으로도 강인하고 비장한 기운을 뿜어낸다.
플롯, 촬영, 음악, 연기 모든 면에서 완벽을 기한 ‘덩케르크’의 가장 뛰어난 스펙터클은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헌신이다. 배를 띄우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긴박한 순간에서도, 그들은 적대감을 버리고 함께 살 수 있다고 손을 내민다.
‘덩케르크’는 인류애의 정신으로 탈출작전에 성공한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가슴 뜨거운 헌사다.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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