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조덕제 "촬영 중 성추행, 상상할 수 없는 일" vs 여배우 "연기 아닌 성폭력"
배우 조덕제와 여배우가 첨예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조덕제는 오늘(7일), 여배우에 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는 감독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 연기를 펼쳤을 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촬영장 내 최고 서열인 여배우와 감독이 한 편이 되어 조단역인 자신을 몰아가 하차시키는 불이익을 가했다는 것. 2심 유죄 판결은 재판부가 영화계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오인한 판결로 봤다. 또한 여배우 측 공동대책위원회가 편협한 논리로 영화계를 매도했다며 전문 영화인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반면 앞서 지난달 24일 여배우는 자필 편지에서 "그건 연기가 아닌 성폭력이었다"라며 "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피고인(조덕제)으로부터 폭행과 추행을 당했다. 연기 경력 20년 이상인 피고인은 상대 배우인 제 동의나 합의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속옷을 찢었으며, 상·하체에 대한 추행을 지속했다"라고 밝혔다.
조덕제와 여배우, 양 측 모두 자신들이 각각 경력 20년, 15년 이상의 베테랑 배우임을 강조하며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놨다. 조덕제는 "수많은 스태프가 있는 촬영장에서 일시적 흥분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연기자임을 망각하고 성추행을 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임을 영화인들은 잘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여배우는 "연기와 현실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불안 속에서도 단지 '기분이 나쁘다'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이 넘는 법정싸움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영화계에서 선배이자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피고인을 대상으로 말이다"라고 얘기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배우는 영화 촬영 중 조덕제가 사전 합의 없이 자신의 상의를 찢고 바지에 손을 넣었다며 그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조덕제는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선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집행유예 2년·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조덕제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2심 판결에 불복했다. 상고장을 제출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 배우 조덕제 성명서 전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22년간을 연기자로 살아온, 직업이 연기자인 조덕제입니다.
저는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2년 6개월 동안 기나긴 송사를 벌여왔고 이제 상급심인 대법원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힘들고 고달픈 송사 과정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에 수시로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허위와 거짓 주장으로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추스르며 앞을 향해 걸어가면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2심 판결에서의 오인
1심과 2심에서의 가장 큰 차이는 재판부의 시각과 관점의 차이입니다.
1심에서 저는 영화 현장의 특수성, 촬영에서의 상황 등을 재판부에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해당 영화의 촬영 당시 참여한 많은 스태프들의 사실 확인서를 제출하였고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심 재판부는 저의 연기를 업무상의 정당 행위로 판단하고 촬영 중의 상황에서의 연기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여배우 측의 주장이 일관된다는 것을 들어 유죄 선고를 했습니다. 영화라는 한정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 감독의 지시에 충실하게 한 제 연기를 연기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의 일반적인 성폭력 상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심에서는 영화 장면에 몰입한 상태의 연지가의 열연을 마치 현실 상황에서 흥분한 범죄자가 한 행동이라고 오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연기자는 감독의 지시와 자신의 배역에 충실한 것이고 리얼리티를 잘 살렸다는 칭찬을 받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하고, 화를 내는 등의 동질성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감독과 연기자들이 원하는 것이겠지요.
영화적인 리얼리티로 인해 마치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혼동을 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2심 재판부는 영화적인 의미에서의 연기적인 리얼리티와 실제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2심 재판부는 추행을 했다고 하는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단지 2심 판사님은 제가 연기를 하다가 일시적으로 우발적으로 흥분해서 그럴 수 있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우발적으로 흥분했다는 내용만 봐도 영화적 몰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2심 판사님이 영화적인 상황에서의 연기적인 리얼리티와 실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와 영화 촬영 중 연기의 상황에 대한 구분을 전문가들인 영화인들은 알 것입니다.
영화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20년 이상 연기한, 조단역 배우가,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는 촬영 현장에서 일시적 흥분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러한 흥분 상태에서 연기자임을 망각하고 성추행을 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연기를 하다가 순간적, 일시적, 우발적으로 흥분하여 성추행을 했다는 것은 정신병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영화계 내 시스템의 부재 내지는 비효율성
현재 영화계에도 신문고라는 영화계 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영화인 신문고를 만든 취지와 목적은 영화계 내의 문제로 인한 분쟁의 발생시 자체적으로 이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분쟁이 접수가 되면 사실관계 확인과 진상규명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인 신문고라는 제도는 이미 재판 중인 사건은 다루거나 심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여배우 측과 저 모두 영화인이었고 촬영장에서 생긴 일로 인해 벌어진 법정 다툼이었으니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정작 영화인을 위한다는 몇몇 영화 단체들은 어찌 된 일인지 무죄가 선고된 1심 후에 여성 민우회 등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합니다.
재판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한 그들은 사건에 대한 어떤 사실관계나 진상 조사도 없이 맹목적으로 저를 비난하고 규탄하는 자리에 서서 저를 매도하고 공격하였습니다.
이들 영화 단체들은 왜, 어떤 이유로, 여성 단체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주장과 입장만을 추종하고 그들 뒤에 피켓을 들고 섰을까요?
제 목소리와 제 입장은 단 한 번도 묻지도 들어주지도 않은 채, 무슨 이유로 그들의 선창에 따라 앵무새처럼 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러나 이 사건은 주지하다시피 영화 촬영장에서 일어난 것이고, 더구나 신 자체가 부부 강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봤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촬영장의 총책임자이자 관리감독자는 당연히 감독입니다.
감독은 영화의 전체 흐름뿐만 아니라 촬영장의 총괄을 맡게 되며 촬영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사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단순히 좋은 영상을 찍는 역할이 아니라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이 감독이 해야 할 또 다른 의무일 것입니다.
부부 사이의 강간 장면을 연출하는 장면의 성격 상 어느 정도 강한 몸짓의 연기가 오고갈 수밖에 없었기에 당시 촬영장은 긴장된 상태였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는 감독과 카메라 스태프들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당시 촬영 상황이 문제가 되었다면 당연히 여배우는 촬영을 멈춰달라고 요구해야 했고 감독 역시 NG를 외치며 상황을 정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OK 사인을 내며 만족스러운 촬영이라고 했고 주연 여배우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촬영 수위가 높다며 촬영이 끝난 후에야 감독과 따로 독대를 했습니다.
감독으로서는 제가 사과하는 선에서 여배우의 불평을 무마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제게 달래줘야 하니 사과를 좀 하고 끝내자고 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노출에 민감한 주연 여배우의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았고 영화 촬영 자체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며 감독을 몰아세웠던 것입니다.
결국은 촬영장의 최고 서열에 속한다고 할 주연 여배우와 감독이 한 편이 되어 조역을 맡은 저를 영화에서 하차시키는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 것입니다.
사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법정으로 옮겨졌고 제게는 배우로서 살아온 평생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힘든 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저는 영화인들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저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고 버텨나가야 했습니다.
제가 평생을 바친 연기가 저를 향한 비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연기에 열정을 바치고 더 나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감독의 지시에 따랐던 것이 저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만 상황이 되었습니다.
외부 단체들의 개입
하지만 저는 결코 쓰러지지 않고 또다시 진실의 문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제가 쓰러진다면 그들은 기뻐 날뛰며 축하연을 열고 진실을 묻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간에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조단역 배우들과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꿈꾸는 수많은 스태프들에게 좌절을 안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정 영화 단체는 1심 무죄 선고 후 재판 중인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오히려 저를 규탄하며 비난하였고, 외부 여성 관련 단체와 더불어 2심에서 유죄가 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저를 공격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원했던 대로 유죄 판결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죄 환영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그들은 저의 무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 왜 그토록 저의 유죄 판결을 원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사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나 했는지, 또 그러한 사실 확인을 위해 사건 당사자인 저에게 단 한번이라도 연락을 해 본 일은 있었는지... 왜...
그들에겐 조덕제가 성추행범이 되어야만 했었던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제 재판을 통해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여성 관련 단체들은 언제라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편에 선다는 자신들의 편협한 논리를 앞세워 기자회견, 규탄 대회, 성명서 낭독, 포럼 등을 개최하여 마치 전체 영화계에 성폭력이 가득하다는 식으로 영화계를 매도할 것입니다.
이에 동조한 몇몇 영화계 단체들은 또 그들 뒤에 서서 그들이 쥐어준 피켓을 들고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를 따라할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영화인의 문제입니다.
우리 영화계가 저의 사건이 빌미가 되어 영화계와 무관한 외부 여성 관련 단체들에 의해 매도되고 좌지우지 되는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이들 영화 외적인 단체들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한 이슈를 만들기 위해 우리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며 우리 영화계를 이용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영화계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 단체들에 의해서 사건이 왜곡, 과장되고 그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 애꿎은 희생자들이 영화인들에게서 양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 말고도 또 다른 억울한 희생자가 그 단체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결론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이러한 빌미가 되었던 제 사건을 영화인들의 손으로 철저히 진상 조사해 주시고 검증해주십시오.
지금 여성 단체 쪽의 입장에 서 있는 영화 단체들도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저의 사건을 제대로 다시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는데 동참해주십시오.
영화 단체로서 여성 단체 편에 치우쳐 있지 말고, 영화계로 되돌아와서 처음부터 공정한 절차로 진상 규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와 방법을 사용하여 본 사건을 검증을 한다면 어떤 조사에도 당당히 임할 것이고 제 스스로 그 시험대 위에 오르겠습니다.
전문 영화인들만이 이 사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향후 영화계 전반에 미칠 거대한 영향력을 온전하게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외부 세력에 의해 영화계가 좌지우지 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조덕제가 제안하는 것입니다.
저를 조사하여 주십시오. 어떤 시험대라도 오르겠습니다.
우리 영화인들이 조사하고 검증한 결과라면 마땅히 저는 그 결과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부디 이 사건이 한국 영화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도록 온 영화계의 식구들이 함께 나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아래는 여배우 편지 전문
안녕하십니까, 이 사건 피해자입니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기자회견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기자회견이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기를, 나아가 영화계의 관행 등으로 포장된 각종 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이 단순히 가십으로 소비되지 않고 연기자들이 촬영과정에서 어떻게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연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갈 수 있게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우선 명확하게 하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인정된 피고인의 죄명은 '강제추행'과 '무고'입니다. 피고인은 제가 강제추행으로 신고한 후 저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및 무고로 형사고소를 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의 행위가 무고라고 판단, 기소했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동의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둘째, 피해자인 저를 둘러싼 자극적인 의혹들은 모두 허위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와 관련해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임을 밝힙니다.
셋째, 유죄 확정 시 신상정보등록대상이 되는 피고인이 신상공개 후 500건이 넘는 기사를 통해 유포하고 있는 일방적인 주장은, 24페이지에 달하는 항소심 판결문을 통해 모두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임을 알립니다.
저는 경력이 15년이 넘는 연기자입니다. 연기와 현실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으며, 촬영현장에 대한 파악이나 돌발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촬영과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게 되자 패닉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왜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하고 싸움을 포기하는지, 왜 신고나 고소를 망설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폭행과 추행을 당했습니다. 연기 경력 20년 이상인 피고인은 상대 배우인 제 동의나 합의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속옷을 찢었으며, 상·하체에 대한 추행을 지속했습니다.
도대체 연기에 있어서 '합의'란 무엇입니까? 저는 상대 배우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연기가 예견될 경우, 사전에 상대배우와 충분히 논의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합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연기했으며, 그렇게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저와 '합의'하지 않은 행위를 했고, 그것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것이 '영화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피고인을 무고할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사건 당시 저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고, 미래의 영화인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연인과의 사랑도 키워나갔고, 가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비교적 평탄하고 행복하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불안 속에서도 단지 '기분이 나쁘다'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이 넘는 법정싸움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영화계에서 선배이자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피고인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고작 '기분' 따위가 연기자로서의 제 경력, 강사로서의 제 명예, 지키고 싶은 제 사생활보다 소중하겠습니까? 그럴 가치가 있겠습니까?
외부평가에 민감한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성폭력 사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임이 알려질 경우 피해자임에도 매장당할 위험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고했습니다. 만약 피고인이 스스로 먼저 저에게 밝혔던 것처럼, 자신의 가해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하차를 실행했다면 굳이 이런 지난한 사법절차를 밟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당시 지켜야 할 게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건 직후 하차의사를 먼저 표명했던 피고인은, 돌연 입장을 바꿔 하차의사를 번복하고 제게 고통을 안겨 주는 추가적인 가해행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님'인 피고인의 추가적 가해행위와 더불어, 제게 침묵을 강요하는 주변의 압박이 더해지자 저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명백한 성폭력의 기록이 담긴 영상을 '영화'로 남겨 대중에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15년 이상의 연기 경력을 가진 배우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이런 인권유린을 더이상 참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당한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고했고, 그래서 모두 다 잃었습니다.
경찰에 신고 후 피고인이 저를 대상으로 보복성 고소를 단행했지만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강제추행치상'으로 판단했고, 보복성 고소에 대해서는 '무고'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 말에야 1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과의 대면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저는 공판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고 전문가들 역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안심시키셨습니다. 그래서 2016년 4월, 저는 피해자로서 법정에서 증언한 이후 재판이 곧 종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뤄지던 1심은 그로부터 8개월이 넘어서야 마무리가 됩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사실이 인정된다'라고 판단하면서도, 그것을 '업무상 행위'로 본 것에서 나아가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피해에 대한 증언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위의 조언에 충실히 따랐던 저는 1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판기록을 복사하여 처음부터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워 외부에 피해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꺼려했던 제가 공론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사건 당시의 메이킹 영상 및 사고 영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제 증언 후 8개월 동안 피고인 측에서 저를 '허위 과장의 진술 습벽이 있는 여성'으로 몰아갔음을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지인이 1심 공판기간 중 단기간 취업한 언론사에서 낸 허위 기사들이 제가 '어떤 여성'인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공판과정에 활용되었고 영화 촬영 현장의 특수성은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각종 현상을 동일하게 겪었던 피해자로서의 제 상황도 무시되었습니다. 영화계의 특수성 등 '다름'을 재판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제가 다른 피해자들과 '같음'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강제추행 및 피고인의 보복성 고소로 인한 고통에, 허위기사로 인한 추가피해까지 겹쳐지면서 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울면서, 넘어지면서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항소심이 시작된 이후 공판과정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제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여자'인지, 피해자의 자격이 있는지를 여전히 묻는 피고인 측의 공격에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저는 연대자들의 조언에 힘입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집중해 대응했습니다. 영화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동일하게 겪는 현상에 대해 알렸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부터 재판부는 '피해와 관련된 사실관계 파악에 집중하겠다'라고 선언하였기에, 저는 고통스럽지만 가해행위가 고스란히 담긴 사고 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다시 분석했습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연대자분들께서 용기를 주셨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3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기에 대한 열망도, 교육자로서의 책임감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습니다. 피해자임에도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울고만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연대자 한 분이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연대자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피해자 "없습니다",
연대자 "그래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오롯이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가해자의 공격논리에 휘말려 '어떤 여자'인지 입증하려 애쓰지 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차분하게 하나씩 다시 입증해가요. 곁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히려 연대자분은 "이렇게 공론화를 시도하고 수년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그 말에 저는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항소심도 10개월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의 금요일,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범죄'라는 재판부의 판단을 직접 들었습니다. 30개월 만에 드디어 같음을 인정받고 다름이 이해되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연기에 몰입하다 발생하는 부수적인 피해나 과실'이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라고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였음이 연기 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자기 분야에서 삭제되거나 쫓겨나는 피해자들에게 저는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제 방식이 될 것입니다. 저는 단단하거나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투사가 되기에는 자질도, 능력도 부족하며 마음도 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싸우고 연대하려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며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숨을 고르며 말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원하지는 않아도, 차분하게 제가 할 수 있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네, 그 첫마디입니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사진 = 마이데일리DB]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